‘참사’ 상처 오히려 후벼 파는 세상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1.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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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용산 철거민에 지급된 보험 급여 환수 움직임…“철거민 두 번 죽이는 일” 분통

2009년 1월20일 ‘용산 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던 남일당 건물터. ⓒ 시사저널 임준선

1월20일은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용산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용산 철거민 중 상당수가 신체·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 철거민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철거민들의 후유증은 피부병, 시력 감퇴, 만성 근육통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이나 고문, 사고 등을 겪은 사람이 사건 후에도 재경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는 증상이다. 용산 철거민 중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남편이 현재 구속 중에 있는 정숙자씨(가명·40세)에게는 조울증 증세가 나타났다. 용산 참사 진상 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위원회의 이원호 사무국장은 “김씨의 경우 한동안 괜찮다가도 발작처럼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지곤 했다. 더 큰 문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에게도 실어증 증세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위원회에서 이들을 설득해 김씨는 물론 아이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다”라고 밝혔다.

참사 이후 경찰 조사받던 철거민 두 명 사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매우 심각한 질병이다. 심할 경우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병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사태 당시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바로 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용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최소 두 명의 철거민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첫 번째 희생자는 지난 2010년 1월24일 사망한 정 아무개씨(당시 53세)이다. 정씨는 2009년 1월20일 용산 4구역 망루 농성에 참여했던 철거민이다. 사망 당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정씨는 당시 거주지를 철거당하고 수원시 신동지구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홀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아침나절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이사무국장은 “정씨가 사망한 당시는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끝나고 경찰의 본격적인 소환 조사가 이루어지던 시점이었다. 평생 경찰서 구경 한번 못 해봤던 정씨는 경찰서를 들락거리면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다. 정씨는 50대 초반으로 건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성 심장마비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연이어 두 번째 희생자도 발생했다. 용산 철거민 구속자 중 한 명인 천 아무개씨의 매형인 김 아무개씨(당시 55세)가 2010년 3월께 똑같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이때 김씨 역시 경찰의 조사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는데, 사망 전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다고 한다. 김씨의 여동생은 “당시 오빠는 하루 종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밖에서 자동차 소리만 나도 ‘경찰이 나를 잡으러 왔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다. 어느 날 오빠 집에 가보니 문은 열려 있는데 불이 켜져 있었다.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경찰이 오빠를 죽인 것이다”라고 울먹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은 “문제 될 것 없다”

2009년 1월20일 ‘용산 참사’ 당시 불타는 건물. ⓒ 뉴시스
문제는 사망자들이 용산 참사 당시의 충격보다 당국의 수사 과정에서 느낀 스트레스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사무국장은 “무차별적인 소환과 기소를 남발하며 철거민은 물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반 시민까지 압박하고 있다. 한 사례로 철거민 유가족 중 한 명은 2년 전에 치러진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난해 11월 서부지검에 소환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용산과 관련해 벌금형을 받은 사람은 100여 명이 넘으며, 벌금액도 5천만원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용산 철거민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들어 용산 참사 당시 부상당한 철거민들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를 환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 아무개씨(42세)의 경우 용산 참사 당시 망루에서 추락하며 큰 부상을 입었다. 지금까지 수술한 횟수만도 11번에, 수술비도 수천만 원 상당이다. 몸도 성치 않은 마당에 수술비를 충당할 수 있었던 것은 위원회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나마 건강보험 급여가 없었다면 수술은 꿈도 못 꾸었을 일이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이 최근 지씨에게 보험 급여와 관련해서 상의할 일이 있으니 지역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라고 통보했다. 이와 관련해 이사무국장은 “건강보험공단이 본격적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환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가기도 힘든 철거민들에게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철거민들은 용산 참사의 최대 피해자인데 오히려 가해자로 낙인찍혀 빚더미에 올라앉을 판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쌍용차 농성 노동자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급여를 환수하려다가 법원의 환수 부당 판결로 실패한 적이 있다. 우리 역시 법적으로 적극 대응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1항에 따르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 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보험 사고를 발생시킨 경우 이에 대한 보험 급여를 제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용산 참사와 관련한 철거민들이 이 항목에 해당하는지 법률 자문을 해놓은 상태이다. 일부 용산 철거민의 경우 형사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보험 급여를 환수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이해 지난 1월12일자로 일반 형사범 9백55명에게 특별사면·감형·복권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들 중 용산 참사와 관련해 구속된 철거민들은 없었다. “용산 철거민의 경우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 중대 범죄에 해당되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라는 것이 법무부측의 설명이다. “이번 설은 가족과 보내게 해주세요”라는 용산 철거민 가족들의 안타까운 외침은 올해에도 메아리 없이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용산 참사 당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 ⓒ 시사저널 자료사진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용산 철거민들의 분노는 현재 극에 달해 있다. 김 전 청장은 용산 참사 당시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하다 여섯 명의 사상자를 낸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 ‘보은 인사’라는 비판 속에 오사카 총영사에 임명되었고, 그마저도 취임 8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지난해 12월 경주 지역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를 놓고 용산 철거민들은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책임자 처벌이다. 김 전 청장의 경우 표의 심판이 아닌 사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철거민들은 낙선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용산 참사 진상 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김 전 청장이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지역구에 용산 유가족 중 한 명을 후보로 등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유세 기간이 되면 위원회 사무실을 경주로 옮겨 본격적으로 낙선 운동을 펼칠 것이다. 한나라당에도 용산 철거민들의 뜻을 강력하게 전달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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