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오는 아카데미 후보작들, 명성만큼 대박 날까
  • 이지강│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2.07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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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부문 오른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 주목 / 감독·규모만으로 눈길 끄는 <워 호스> <휴고>도 기대


2월 극장가는 전통적인 비수기이다. 대규모 관객을 노리는 블록버스터 작품은 이 시기에 개봉하는 것을 피한다. 따라서 스크린을 가득 메운 스펙터클한 화면을 감상하기는 힘들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규모는 작지만 속이 알찬 다양한 작품을 만나기에는 더 좋은 시기이다. 다양한 작품 가운데서 어느 것을 골라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아카데미영화제가 선택한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2월26일 발표되는 수상작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은 대부분 ‘볼만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2월에 국내에서 선보이는 아카데미 후보작은 대부분 수상작 발표 이전에 개봉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워 호스> <아티스트> <디센던트> <철의 여인>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등이 그것이다. 유일하게 <휴고>가 발표일 이후인 2월29일 개봉한다. 

‘아카데미 후보작’이라는 타이틀이 영화적 재미나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 들어서는 대다수 아카데미 수상작의 국내 흥행 결과가 신통치 않다. 다만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100만 관객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블랙스완>(1백62만)과 <킹스 스피치>(80만)가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올리면서 아카데미 티켓파워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올라가고 있다.

2월에 개봉하는 2012 아카데미상 후보작을 최근 몇 년 동안 아카데미 특수를 누렸던 작품과 비교해보면서 흥행 가능성을 미리 점쳐보았다.

2012 아카데미상 후보작 중 가장 주목할 작품으로 꼽히는 <아티스트>는 낯선 배우가 등장하고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변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닮아 있다. 무성영화계 최고 스타였던 남자 배우와 유성영화 시대를 맞아 새롭게 스타로 떠오른 여배우의 사랑을 그린 <아티스트>는 3D 영화가 난무하는 시기에 흑백 무성영화라는 아주 낡은 형식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 점이 장르에 대한 신선한 변주로 새롭고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평이다. <아티스트>는 작품상·감독상 등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면서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블랙스완>과 닮아 있는 작품은 <디센던트>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라는 천재 감독과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스타 배우의 조합으로 흥행에 성공한 <블랙스완>처럼 <디센던트>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역시 작품성과 티켓파워의 만남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디센던트>는 아내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바람 난 아내의 진실을 알게 된 가장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이 연출을 맡고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첩보 스릴러이다.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게리 올드먼을 비롯해 콜린 퍼스, 영국 TV 시리즈 <셜록>으로 이름을 알린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연기파 남자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 <렛미인>으로 국내에서 작은 영화 돌풍을 일으켰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연출력도 기대되는 작품이다.

지난해 예상 밖의 성공을 이루어낸 <킹스 스피치>의 뒤를 잇는 작품은 <철의 여인>과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다. 실존 인물인 영국 왕 조지 6세의 이야기를 다룬 <킹스 스피치>와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이야기를 다룬 <철의 여인>은 이란성 쌍둥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촬영차 영국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가 조연출과 나눈 일주일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전 많은 스캔들에 휘말렸던 마릴린 먼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로맨스라는 점에서 흥미를 유발한다.

<워 호스>와 <휴고>는 아카데미 특수와 별개로 감독과 작품의 규모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워 호스>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장으로 차출되며 헤어진 말과 한 소년과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첫 번째 판타지 3D 작품이다. 1930년대 파리 기차역에서 시계 관리를 하며 살아가는 고아 소년이 아버지가 남긴 로봇 인형을 수리하며 거대한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11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최다 후보작으로 등극했다. 미국 개봉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아카데미 수상을 무기로 국내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첩보 기관 내에 암약하는 이중 첩자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부다페스트로 간 스파이가 살해당한다. 우중충한 도시의 풍경 위로 남자의 핏물이 겹치면 영화가 시작된다. <렛미인>으로 놀라운 첫인상을 남긴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신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다.  

영화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영국의 첩보 기관 ‘서커스’를 둘러싼 이중 첩자 색출 작전을 그린다. 부다페스트의 실패 이후 조직에서 밀려났던 스마일리(게리 올드먼)는 바로 그 이중 첩자를 색출해내라는 지시를 받고 돌아와 내사를 시작한다. 조력자가 나서고, 수사가 본격화되면 이야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첩자는 누구이며, 누구를 믿을 것인가?

카프카의 소설 속 풍경처럼 삭막한 공간에서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흐릿한 날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중 첩자 색출 작전은 차갑고도 모호하다. 영화는 007이 탄생했던 때와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공유하지만, 희한한 신무기도, 화려한 총격전도 없다. 숨 가쁜 추격전도, 변변한 격투 장면도 없다. 그러나 1백27분의 러닝타임 전체를 감싸는 은근한 긴장감은 그 어떤 첩보스릴러도 부럽지 않다.

영화는 스마일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교차되고,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동안 카메라는 춤을 추듯 인물과 사건 사이를 떠돈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제 호흡을 놓치는 법은 없다. 감독은 냉정한 묘사 뒤에 뜨겁고도 격렬한 감정을 감춤으로써 냉전 시대의 공기를 화면 위에 우아하게 되살렸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게리 올드먼, 존 허트,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톰 하디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이어지는 꼼꼼한 앙상블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즐기는 또 다른 관람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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