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교육’ 프로그램으로 행복한 교실 만든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2.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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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폭력 문제 심각해지면서 ‘해피스쿨 캠페인’ 주목

뇌 교육 중 명상을 하는 엘살바도르 학생들.
집단 폭행과 왕따, 신발과 외투 등 고가 물품 갈취, 자살 방조…. 최근 10대 청소년들이 저지르고 있는 학원 폭력의 수위가 성인 범죄자의 그것을 넘어서며 맹독을 뿜어내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폭력에 중독되게 했을까. 정부는 정부대로, 시민 사회는 시민 사회대로,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원인균’을 찾아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나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10대의 폭력성과 일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호르몬의 작용으로 어른의 몸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벌어지는 이 현상에 대해 관계 당국은 그때그때 만화나 드라마, 가요를 희생양으로 잡았고, 요즘에는 게임이나 웹툰이 ‘순수한 영혼을 오염시키는 악의 발진 기지’로 지목당하고 있다. 게임이나 웹툰, 에로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킨 10대 청소년은 양처럼 순해져서 모범 시민이 될 수 있을까. 격리가 답이 아니라는 것은 20세기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될 것이다. 이런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인간의 뇌 자체를 응시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 2월18일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5층 강당에서 홍익교원연합이 주최한 ‘교사들의 학교 폭력 예방 대안 제시’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현직 교사 100여 명이 참석한 이 세미나에서는 교육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한 학교 폭력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 외교부와 국제뇌교육협회의 협약에 따라 엘살바도르 공립학교에 도입된 한국식 ‘뇌 교육’이 학교 폭력과 약물, 정서 하락 등에 처한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사례가 발표되었다. 또 국내 일선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뇌 교육의 효과에 대한 다양한 사례 발표가 있었다.

국내외 성공 사례에 나타난 ‘뇌 교육’의 효과

이날 세미나에서 ‘엘살바도르 뇌 교육 성공 프로젝트’ 사례를 발표한 장래혁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감정 분출 행동이 일어나는 청소년기의 뇌 특성에 대한 이해이다. 따라서 가정과 교육 환경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의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뇌에서는 유아기 뇌가 성장할 때에 버금가는 변화가 일어난다. NIMH에서는 1991년부터 자기 공명 영상 장치로 청소년의 뇌 발달을 살피기 위해 3세에서 25세에 이르는 실험 대상자 2천여 명의 뇌를 2년마다 촬영해 대뇌피질의 두께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청소년이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성인과 비슷하지만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떨어진다고 나왔다. 즉, 청소년기에는 감정과 본능에 대한 부분이 훨씬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또 뇌의 화학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아지면 폭력적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도 현대 뇌과학의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명상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 감정을 높이며 세로토닌 등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 분비를 향상시킨다는 것은 국내외 뇌과학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서울대학병원과 한국뇌과학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명상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과 일반 건강 그룹을 비교해 명상 그룹이 스트레스 감소와 긍정적인 정서 반응, 스트레스 조절력 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2010년 관련 논문을 <뉴로사이언스레터>라는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지난해 엘살바도르 외교부가 뇌 교육을 공립학교에 도입한 근거가 되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빈곤과 폭력, 약물에 노출된 엘살바도르의 학생들에게 3개월간 뇌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학생들의 결석률 감소, 자신감 향상, 꿈과 희망을 갖게 되는 등 정서 증진 효과가 나타났다.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엘살바도르 뇌 교육 프로젝트는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기간 중 성공 사례로 발표되었다. 2012년 1월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빈곤 퇴치와 복지 실현을 위한 뇌 교육’ 국제회의에서 뇌 교육 확대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국내에도 이미 지난 2007년부터 ‘해피스쿨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내용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 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와 지역 뇌교육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뇌 교육의 원리를 적용해 ‘폭력 없는 학교’ ‘흡연 없는 학교’ ‘뇌를 잘 쓰는 학교’ ‘서로 통하는 학교’ 등 네 가지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해피스쿨 캠페인은 전국 초·중·고 3백84개 학교와 협약을 맺고 진행되고 있다. 협약을 맺은 학교에는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뇌 교육 CD’가 기본 프로그램으로 제공된다. 해피스쿨 뇌 교육 CD는 체조, 명상, 이완과 호흡, 상상과 집중 등 두뇌 상태를 조절하는 체험적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뇌 체조는 간단한 방법이다.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드는 방법만으로 복잡한 생각이 가라앉고 뇌파가 안정되게 된다. 이때 뇌에서는 세로토닌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것이 집중력을 키워주고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준다. 지난 2008년 일본 토호 대학 의학부 통합생리학과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15분간 뇌파 진동을 한 뒤 뇌파 변화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15분간 뇌파 진동(뇌 체조)을 하면 세라토닌이 증가하고 뇌 혈류량이 증가하는 한편, 알파파2가 증가해 대뇌 상태가 쾌적한 각성 상태로 변한다고 밝혔다.

서울 신학초등학교에서는 해피스쿨 프로그램을 6학년 전체에 적용하고 있다. 아침 수업 시작을 뇌 체조, 단전 치기, 뇌파 진동 명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학교의 김진희 교사는 “흔히 말하는 자신감은 남과 비교하면서 얻는 상대적인 자신감이다. 하지만 뇌 교육에서 얻는 자신감은 자신을 믿음으로써 생기는 자신감이다. 문제가 있던 아이들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의 덕산중학교에서는 해피스쿨을 추진하면서 인사말부터 “사랑합니다”로 바꾸었다. 교장과 교사가 참여하는 교직원 회의와 수업 시간에 구성원들이 먼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특히 수업 시간에 서서 인사하기를 통해 교사와 학생 간에 예의를 갖추게 되고 무례한 행동이 줄어들며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울산의 명덕여중에서는 2008년부터 학교 중점 특색 사업으로 해피스쿨 캠페인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아침 시간 10분을 할애해 뇌 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그 밖에 특별활동 시간에도 뇌 교육을 실시하고 성적 부진아나 학교 폭력 예방 교육에도 뇌 교육을 활용했다. 그 결과 울산 동구 학력 최우수학교에 선정되고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 제로’ 학교로도 뽑혔다.

소극적인 인성 교육의 대안으로 떠올라

유엔 초청 뇌 교육 강연의 모습.
지난 2월18일 ‘교사들의 학교 폭력 예방 대안 제시’ 세미나에 참석한 미양중학교 이정임 교사는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활 지도나 훈화 또는 특정 교과 특정 교사의 지도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인성 교육을 넘어서 모든 교육 활동에서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인성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의 인성 교육이 교사가 학생에게 ‘이러이러해야 좋은 사람이 된다’는 ‘정보 전달’ 수준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아직도 두뇌의 기능이 성장 중에 있는 사춘기 학생들이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 공감하는 기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음을 고려해 교사들은 학생의 부정적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학생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몸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간단한 뇌 체조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뇌파가 안정되어 생각과 마음이 밝아질 수 있다고 했다. 뇌 체조와 명상을 통해 행복 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의 분비도 도울 수 있기에 정서 조절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인성 교육이 결국은 “밝고 따뜻한 학급 분위기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감정은 주변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학생들이 오래 머무르는 학급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명상과 뇌 체조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같은 작은 치유의 말이 모여서 따뜻한 교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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