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빛나는 눈’
  • 소종섭 편집국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2.03.0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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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일찍이 민족 시인 신동엽이 읊었던 <빛나는 눈동자>입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는 시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인파가 출렁이는 거리에서, 봉사 활동의 현장에서 저는 그 ‘빛나는 눈’을 봅니다. 그것은 올곧은 정신, 인류애, 크나큰 사랑입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영원한 깃발입니다.

2008년 9월, 북한을 5일 동안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양을 떠나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저는 ‘빛나는 눈’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빛나는 눈’이었습니다. 삼지연공항을 출발한 버스가 낙엽송 군락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백두산으로 내달릴 때 만났던 여인과 어린 두 아이. 길지 않은 만남, 달리는 버스와 서 있는 사람의 스침이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또렷한 것은 그 여인과 아이들의 ‘빛나는 눈’ 때문입니다. 꾀죄죄한 화전민 같은 옷차림, 헝클어진 머리, 한 달은 세수를 안 했을 것 같은 얼굴. 엄마가 이럴진대 두 아이의 행색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가슴속에서 절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주했던 그 여인의 ‘빛나는 눈’, 검은 얼굴 속에서 눈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슬픔, 애절함, 절규였습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구원에의 손짓이었습니다.

최근 중국이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반대하는 흐름이 거세게 이는 것을 보면서 북한 방문길에 만난 그 여인과 아이들의 눈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탈북했다가 북송되는 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식량난에 생활고가 겹쳐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등장하면서 탈북자들에 대해 발포와 사살을 허용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미 여러 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단순한 엄포만은 아닌 듯합니다. 감시와 처벌이 강화되면 일시적으로 탈북 행렬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흐름을 막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는 것에 반대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36~37쪽 기사 참조) “중국은 탈북자들에 대한 강제 북송 행위를 잠시 멈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탈북자들을 색출해 체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외의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다른 어떤 일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 살리는 것에 이념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북한 동포들을 돕는 시민단체들을 따라 북한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북한 동포들을 돕는 것과 탈북 동포들을 돕는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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