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처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 이지선 │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3.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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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서툴렀기에 더 아름다웠던 첫사랑의 기억 떠올리게 해…사랑을 건축에 빗대어 표현해 ‘눈길’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 학교에 가던 날, 처음 친구를 만나던 날, 처음 무언가를 해냈던 날. 서툴고 실수가 많기에 더욱 설레고 가슴 두근거리던 ‘처음’의 기억들. 사람들은 그래서 삶의 수많은 순간 중 유독 처음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첫사랑이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예민한 공포 영화 <불신지옥>으로 인상적 데뷔를 한 이용주 감독의 신작 <건축학개론>은 바로 그 첫사랑 이야기이다. 같은 수업을 들으며 사랑에 빠졌던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은 15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난다. 긴 세월 후 건축주(한가인)와 설계사(엄태웅)가 되어 만난 이들은 한 채의 집을 지으며 설레고 두근거렸으나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지난 감정을 차근차근 되짚는다. 그들은 삶의 국면을 전환시킬 듯 황홀하다가도 결국 지리멸렬한 얼굴을 드러내고 마는 첫사랑의 아릿한 기억을 쌓아올리며 현재의 여지를 탐색한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건축 전공자였던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듯이 보이는 영화는 사랑을 건축에 빗대어 표현한다. 벽돌을 올리듯 차곡차곡 쌓여 가는 감정은 영화 <건축학개론>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100만 가지 의미를 부여했던 첫사랑의 떨림, 세월에 갈고 닦여 예민해진 내면을 덤덤함으로 감춘 미완의 사랑이 주는 안타까움. 만나고 설레고 두근거리다가 마침내 오해하고 돌아서는 남녀의 감정은 나란히 진행되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속에 순차적으로 드러난다.

지나치게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다소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관객 개개인이 품은 첫사랑의 기억을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넘치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하며, 생활의 궁상을 연기할 때조차 멜로가 묻어나는 이제훈의 눈빛, 등장하는 장면마다 제 몫을 톡톡히 한 조정석의 코미디 감각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영화의 장점이다.

들어가보지 못한 누군가의 마음이 못내 아쉬웠던 관객이라면, 서툰 사랑의 송가로 쓰인 노래 <기억의 습작>과 함께 영화 <건축학개론>이 반가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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