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공포에 포위된 전쟁터 미군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3.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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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파견 군인 5명 중 1명이 정신질환 앓아…현지에서 민가 총기 난사까지 벌여

일요일인 3월11일 새벽 3시,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미군 기지에서 미군 선임하사가 홀로 부대를 무단 이탈했다. 소총을 휴대한 그는 곧장 부대 인근 빈민가로 갔다. 세 집을 차례로 뒤져 안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16명이 죽었다. 아홉 명은 여자이고 세 명은 어린이였다. 미친 짓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지난 2월에는 미군 병사들이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쓰레기장에서 불태웠다. 또 1월에는 미군들이 탈레반 반군의 시체에 오줌을 누는 광경을 담은 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미군의 철수 전략을 뒤흔드는 비극 잇따라

미국은 2012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에서 전투 병력을 대부분 철수하고, 2014년까지는 모든 치안 책임을 인계하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긴 채 아프간 전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프간 철수를 순조롭게 마감하려던 오바마 행정부의 일정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 문제는 마침 선거의 해를 맞은 미국에서 즉각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간 것은 9·11 테러의 발원지인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10여 년간의 전쟁에서 이 목적은 거의 달성되었다. 탈레반과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알카에다는 거의 궤멸되었다.

그런데 마치 신의 저주인 양 아프간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비극이 지난 3개월간 연달아 터졌다. 온 세계가 이 기구한 사건들 앞에 넋을 잃은 표정이다.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선임하사는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 이라크전에 세 번 참전하고 아프간에는 처음 배치된 군인이다. 그는 베테랑 용사였다. 그는 살인을 한 뒤 부대로 돌아와 태연하게 범행을 신고하고  자수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의 개요이다. 가해자의 신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범행 동기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마침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3월12일 미군들이 왜 이런 광기를 벌이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뉴스를 전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 해병대원의 20%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일련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아프간에서는 정신질환에 의한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전쟁은 감당하기 어려운 중압감을 준다. 이 중압감은 바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프간 주둔 미군들 사이에 일어나는 심리적 문제는 올 들어 최근 5년 만에 최고조에 달했다. 조사를 받은 해병대의 20%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전투에 연속적으로 투입될수록 정신 건강상의 문제는 많이 발생한다. 3번 또는 4번 전투에 배치되는 병사들은 단 한 번 실전에 참가한 병사들보다 정신질환 발병률이 14% 높다.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병사들이 전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드러났다. 미군 공중보건사령부는 군인들의 정신질환 외에도 자살률도 최근에 부쩍 증가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미군 장교는 최근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미군이 상당히 많다는 얘기이다. 지난해에 탈레반 포로의 머리를 쏴 사살한 육군 일등병은 정신분열증 환자로 판명되었다. 부모가 아들의 정신과 치료를 건의했으나 묵살되었다.

지난 3월12일 미국 조지아 주 포트 스튜어트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미군 병사가 가족들과 만나 부대를 나서고 있다. ⓒ EPA 연합
미군 범죄가 아프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서해안에 위치한 워싱턴 주 인근에는 거대한 미군 기지 루이스맥코드가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되는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곳이다. 지난 2년간 이 기지에서는 자살·살인·폭력 사건이 빈발했다. 6만명이 수용된 이 기지에서는 2002년 이후 62명이, 지난해에만 12명이 자살했다. 전쟁에 대한 스트레스와 정서적 문제가 반드시 루이스맥코드 기지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육군 공중보건사령부는 얼마 전 2004년부터 2008년 사이 군인들의 자살률이 80%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4분의 1은 전투와 관련되었다. 이 기지 말고도 다른 수용 부대에서도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올 초 24세의 이라크 참전 용사는 한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이유 없이 주차관리원을 사살했다. 루이스맥코드 기지의 한 병사는 시애틀 교외에서 19세의 여성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어느 상사는 아내를 라이터 불로 지졌다. 또 다른 군인은 아내를 죽이고 사체를 차고에 숨겼다.

칸다하르 기지에서 일어난 미군 범죄 중 가장 잔혹한 사례는 이른바 ‘살인 팀(kill team)’이 관련된 사건이다. 일부 미군들이 만든 살인 팀은 자신들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시나리오를 만들고 공격자를 사살하는 ‘스포츠’를 즐겼다. 이런 살인 팀의 존재는 제2 보병사단 제5 여단에 실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팀의 조장 캘빈 깁스 선임하사는 자신들이 사살한 아프간 민간인들의 손가락을 잘라 보관하고 남은 시체는 토막을 내 훼손했다. 이들은 군사재판에서 종신 또는 장기 징역형을 받았다.

“일부 병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

루이스맥코드 기지 인근에서 반전 활동을 하는 재향군인 그룹 ‘GI 소리(GI Voice)’는 이 기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를 촉구했다. 참전 용사로 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지 곤잘레스는 성명에서 10년에 걸친 두 전쟁이 자살 신드롬, 살인 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군 교도소의 인권 유린, 자녀 학대, 성 범죄, 민간인 학살, 마약 복용 같은 비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건들이 단지 일부 빗나간 병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기지 내의 시스템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루이스맥코드 기지를 포함해 신병을 훈련시키는 많은 부대에서 강인한 군인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군인과 민간인을 모두 ‘비인간화(dehumanization)’시키는 훈련이 실시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에서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상대를 죽이는 군인은 이미 인간이 아니며, 그가 죽이는 사람 또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사격의 목표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비인간화 훈련으로 인한 군인 범죄는 점령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발생한다. 그는 즉각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기막힌 일이 터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작전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 ⓒ EPA 연합

현재 아프간에는 9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 가운데 2만2천명은 올가을에 철수하고 2013년까지는 잔류 병력 수준을 2만명, 혹은 가능하다면 그 이하로 줄이게 되어 있다. 2014년 이후 얼마의 미군을 잔류시킬지에 대해서는 아프간 정부와 협상 중이다. 이와 함께 탈레반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이들을 아프간 합법 정부에 참여시키는 것이 오바마의 계획이다. 이 모든 과정의 최종 목표는 아프간이 다시는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 기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사건의 신속한 조사와 관련자의 엄벌 그리고 병영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하면서 칸다하르의 비극을 ‘전율’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사건은 이라크와 아프간 두 전쟁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준다. 어쩌면 오바마 자신도 정신적으로 PTSD를 앓는 형국이 되었고, 그래서 그의 고민은 전쟁의 수렁만큼이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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