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배반한 공천
  • 소종섭 편집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2.03.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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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한 공천은 없었다. 지난해 거세게 일었던 ‘안철수 바람’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표출된 것이었다. 말 없는 다수 국민은 이제 우리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헐뜯는 정치, 조직 동원의 정치, 색깔론을 내세우는 정치, 돈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 등등의 행태를 바꾸자는 갈망이다. 여야가 극단적인 갈등보다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 국가 대사를 결정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속 깊은 함성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이른바 ‘안풍’의 바탕이었다.

여야의 공천은 이러한 정치 개혁, 새 정치에 대한 기대의 연장선에서, 그 레일을 타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야는 보란 듯이 그 기대를 저버렸다. 한마디로 국민을 배신했다. 기득권은 강화되었고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골몰했다. 총선을 대선의 전초전으로 만들었다. 애초 시스템 공천, 정체성 공천 등을 내세웠던 여야의 공천 과정은 불투명 그 자체였다. 기준은 일관성이 없었고 친소 관계에 따라 생사가 갈렸다. 당사자가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자료도 공개되지 않았다. 낙천할 만한 이들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울분을 씹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후유증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공천 양태였다.

결과는 공천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강남 갑·을 후보로 공천했던 이영조·박상일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민주통합당은 전혜숙·이화영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논란이 이는 이들이 여럿 더 있기에 부적절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거나 비리·선거법 연루 의혹이 있는 이들의 공천이 취소되는 사태는 앞으로도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공천 행태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고 ‘안풍’으로 상징되는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민초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여야의 공천은 변화를 희구했던 국민의 가슴속에 헛헛함만을 남겼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자조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정치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고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은 부풀대로 부풀어 있다.

모바일 경선·국민 경선이라는 멋진 수사는 또 어떤가. 포장만 그럴듯한 용어일 뿐 내용은 동원 경선으로 변질되었다. 자발적인 참여보다 한 사람이 여러 후보에게 투표하기 바빴다. 한정된 사람을 대상으로 경선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일반 국민의 참여를 늘려 경선 과정을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고 신진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넓힌다는 애초 취지는 사라지고 조직 동원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했다. 민주당의 경우 지역위원장이 경선에서 나선 59곳 가운데 11곳만이 탈락했다.

공천 과정의 비민주성은 곧 정치 행태의 비민주성으로 연결된다. 특정인에 의해 공천을 받은 이는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돈을 써서 조직을 동원해 후보가 된 이는 돈 생각을 하게 된다. 기층 민초들의 뜻보다 상층 유력 인사나 자금 동원 등에 신경을 쓰다 보면 봉사나 헌신하기보다는 ‘누리는’ 정치 행태를 취하기 십상이다. 유력자를 향한 돌격대 정치, 줄서기 정치가 횡행할 위험성이 있다. 국회의원이 진정한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한 공천 제도와 공천 문화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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