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대리전’에 신음하는 양민들
  • 조홍래│한편집위원 ()
  • 승인 2012.03.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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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유혈 사태, 주변국 이해관계 얽히면서 더 심각해질 조짐…국제 사회 중재 노력도 안 먹혀

시리아의 반정부 봉기는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그동안 9천5백여 명이 죽었다. 이 전대미문의 반인륜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한 국제 사회의 수많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건재하다. 이제 시리아 사태는 아사드의 진퇴 여부를 넘어 중동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전란으로 비화되었다. 이 나라에 이해관계가 걸린 강대국들은 대리전까지 벌인다. 마치 냉전 시대가 재현된 양상이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보다 못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인류 사상 가장 길고 참혹한 유혈 사태가 될 것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다. 아난은 최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아사드를 만나 폭력 종식을 중재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에 방문 결과를 보고하면서,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사태가 온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비극이 끝날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랍의 심장부’임을 자처하는 시리아는 서서히 거대한 재앙의 심장부로 다가가고 있다.

지난 3월11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시리아 반군들이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 AP연합

첨예한 지정학적 갈등의 복합체

문제의 심각성은 시리아 사태가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첨예한 지정학적 갈등의 복합체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가장 잔혹한 분쟁으로 확대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아메리카 대학의 중동 전문가 라미 쿠리는 시리아가 내부·지역·국제 3개 차원의 분쟁임을 지적했다. 이 복잡한 상황이 주는 파장은 동맹국과 적대국 그리고 종족 간 대결을 잉태하고 있다. 이 상황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40년째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아사드는 시아파 이슬람의 분파인 소수 알라위계 부족이고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군은 다수 수니파 무슬림이다. 이 나라의 2천3백만 인구는 이 두 종족을 주축으로 종교와 인종적으로 뒤얽혀 있다. 게다가 이 나라는 터키·이라크·요르단·이스라엘·레바논 5개국과 접경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들 5개국 간 이해관계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것도 모자라 시아파가 통치하는 이란과 수니파가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끼어들어 서로 대치하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를 아랍의 최대 동맹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간주한다. 시리아 사태의 주역은 또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는 데 반해 러시아와 중국은 한사코 아사드를 돕는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의 개입으로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시나리오가 반복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의 시리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도 러시아와 보조를 같이한다. 두 나라는 아사드 이후에 서방이 중동 패권을 독식하는 것을 싫어한다. 워싱턴의 입장은 그와 정반대이다. 안보리 결의안이 부결되었을 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러시아와 중국의 비토권 행사를 ‘비열한 행위’라고 비난한 대목에서 워싱턴의 심기를 읽을 수 있다. 

터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이다. 시리아와 8백㎞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터키로서는 시리아의 정정 불안이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누구의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 레바논과 이라크는 시리아 사태가 자국 내 종족 분쟁을 고무할까 두렵다. 그래서 어떤 형식이든 시리아 사태가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란다.

강대국들이 리비아식으로 시리아에 개입하는 것도 어렵다. 리비아는 인구 6백만명의 단일 종족으로 구성되었으나 시리아의 사정은 다르다. 마침 존 맥케인·조 리버먼·린제이 그레이엄 등 세 명의 미국 상원의원은 오바마 행정부에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선도하도록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비행 금지 구역을 즉각 설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국방부의 반응은 냉랭하다. 중동에 대한 군사 개입은 리비아 하나로 족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의 생각도 같다. 흙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시리아 사태는 지역 세력과 강대국들의 이해가 중첩되면서 어느새 21세기의 대리전 혹은 냉전의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가뜩이나 복잡한 상황에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난데없는 변수로 등장했다. 이스라엘은 아사드 이후의 시리아 정권이 이득이 될지 해가 될지를 가늠하고 있다. 아사드는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지원해왔다. 그래도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치명적인 해코지를 한 적은 없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 국경은 아사드 재임 기간 비교적 평온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은 오랫동안 조용했다. 헤브라이 대학의 시리아 전문가인 모세 마오즈 교수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아사드의 잔류를 바라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사드는 예측 가능하고 때로는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할 인물이 누가 되든 아사드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인식이 일부 이스라엘 지도자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마오즈 교수는 분석했다.

아사드 이후의 시리아 정부가 이스라엘에 더 적대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광범위한 전략적 관점에서는 아사드의 붕괴가 이스라엘에 보너스를 줄 수도 있다. 이란에 치명타를 주기 때문이다. 이란과 사생결단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에 해로운 일은 이스라엘에 이로운 일이 된다는 계산이다. 이란은 ‘아랍의 봄’을 원칙적으로는 지지한다면서 아사드 정권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지원을 다짐한다. 아사드를 통해 이스라엘을 견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란은 또한 미군 철수 이후의 이라크 정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역시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시리아가 비축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도 이스라엘로서는 신경이 쓰인다. 특히 화학무기가 골칫거리이다. 이란이 시리아에 공급하는 무기들, 특히 로켓 발사기들이 레바논의 헤즈볼라 수중에 들어가면 이스라엘로서는 낭패이다. 레바논의 또 다른 무장 그룹 하마드는 이미 아사드를 포기했으나 헤즈볼라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대리전 공간 될 수도

지난 3월14일 터키 국경 지역 레이한리에 설치된 철조망 앞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국경을 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AP연합
결국 아사드의 운명은 이스라엘에 빛과 그림자와 같다. 그가 건재해도 걱정이고 몰락해도 걱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의 붕괴를 바란다. 그가 사라지면 중동 패권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사드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반군을 돕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란이 시리아의 맹방으로 존속하는 한 시리아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리전 공간이 될 수 있다. 요르단의 정치 분석가 라비브 캄하위는 중동의 패권자 역할을 해온 시리아를 누가 승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3월19일 다마스쿠스의 부유층 지역에서 반군과 정부군 간에 전례 없는 총격전이 벌어져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지역은 대체로 아사드에 충성하는 부자들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아사드의 지지 기반에 드디어 균열이 생겼다는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이 조짐을 시리아 사태를 반전시키는 신호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반적으로 시리아 반군은 요즘 정부군에 밀리는 추세이다. 주변국들은 서로 갈등하고 국제 사회는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아사드는 건재를 과시하고 양민들은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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