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잃어가는 종편, 날자마자 추락 위기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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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이 심각한 위기에 휩싸여 있다. 초반부터 1% 밑을 맴돌았던 시청률은 좀처럼 치고 올라갈 기세를 보이지 않고, 1천억원대의 적자를 예상하는 보고서까지 나와 시름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출구 전략’을 찾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호기롭게 출발했던 종편이 왜 이런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 것일까.

지난해 12월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종편 개국 기념 쇼에서 유재홍 채널A 사장(왼쪽)과 연기자 손태영씨가 방송국 소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소 성급한 판단일까. 아니면 예상된 결과였을까. 출범한 지 불과 100여 일 만에 ‘종합편성 채널(종편)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종편 탄생에 동원된 온갖 미사여구와 화려한 ‘개국 축하 쇼’의 기억이 채 잊히지도 않은 지금, 종편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방송 시장에 ‘새로운 경쟁 구도를 구축해 방송 선진화를 꾀하고, 시청자에게 질 높은 방송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종편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종편이 이명박 정부 최대의 스캔들이 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종편 도입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를 애써 강조하던 정부 기관도 난감한 입장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종편 관련 모니터를 진행했던 한 정부 기관의 관계자는 “(종편의 성적이 좋지 못한) 지금은 종편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종편과 관련해 예민한 부분을 언론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라며 몸을 사렸다.

종편의 운명은 종편을 걸머쥔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의 미래와도 궤를 같이한다. 종편이 스러지면 종편을 보유한 신문도 휘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종편 매각설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종편을 탐하던 이들이 종편을 버리려 하는 이른바 ‘종편 출구 전략’이 정치·언론계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종편 출구 전략은 태어난 지 100일을 갓 넘긴 종편에 걸맞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공멸할 수는 없다”라는 종편 내부의 절박한 상황 인식이 진원지라는 점은 분명하다.

“종편의 적자 행진은 상당 기간 불가피”

신용평가 전문 기관인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2월 중순께 전망 보고서를 냈다. ‘종편 개국과 방송 시장의 변화’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한국신용평가는 “종편 4개사(MBN·채널A·TV조선·JTBC)의 평균 운영 적자가 1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의 계산법은 이렇다. 대표적인 민영방송인 SBS의 2010~11년 평균 광고 매출은 약 5천1백37억원으로, 약 5~6%의 방송 시청률로 환산하면 시청률 1%당 약 1천억원 내외의 광고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종편 시청률을 0.5~1.0%로 가정하면 최소 2천억~4천억원(종편 4사 합산)의 연간 광고 수입이 추정된다. 하지만 종편이 방송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 광고 수입은 1천억원 미만이다. 결국 종편의 연간 추정 운영비를 SBS의 50%인 2천억원으로 추정하면, 적자 규모는 연간 1천억원 이상에 달한다.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정민수 연구위원은 “신생 종편 PP는 초기 매출의 상당 부분을 광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거기다 시청률도 상당히 저조한 상황에서 초기 대규모 투자에도 종편 PP의 적자는 상당 기간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종편 평균 연간 1천억원의 적자는 단순 계산법으로 나온 수치이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종편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의 이야기이다.

종편사의 한 외부 관계자는 “한 종편의 경우, 올 1~2월 매출액이 월평균 20억원대였다. 이 종편뿐만 아니라 다른 종편 3사 모두 비슷한 수준이다. 통상 1~2월이 방송 광고 시장의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매출액은 4백50억~5백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 종편의 연간 제작비가 1천3백억~1천5백억원인데, 여기에 인건비와 운영비를 합하면 연간 2천억원가량의 비용이 발생한다. 어림잡아도 적자가 1천5백억원에 이른다”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말 종편 개국 후, 시간이 갈수록 ‘개국 효과’가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편의 수입 감소와 적자 증가는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누적되는 천문학적인 운영 적자는 자본 잠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종편 납입 자본금은 JTBC(최대 주주 중앙미디어네트워크 25.0%)가 4천2백20억원으로 가장 많고, 채널A(동아일보사 29.32%) 4천76억원, MBN(매일경제신문 12.63%) 3천9백50억원, TV조선(조선일보사 20%) 3천100억원 순이다(아래 표 참조).

‘질 저하→시청률 제자리→수입 저조’ 악순환

종편의 우울한 미래는 종편 방송 자체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차적으로는 방송 콘텐츠의 질 문제이다. 차별화되고 질 높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 수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던 종편 PP와 정부의 공언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개국 초기부터 비난을 받은 잇단 방송 사고는 차치하더라도, 재방송(재방) 남발 등 부실한 방송 편성은 갈수록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일부 미디어 전문가들은 “종편 PP가 개국에 초점을 맞춰 서두르다, 결국 방송의 핵심인 프로그램의 질 문제는 놓쳤다”라고 혀를 찼다. 

프로그램의 질 저하는 곧바로 시청률 저조로 이어졌다. 한국신용평가의 ‘종편 주별 평균 시청률 추이 자료’(2011년 12월2일~2012년 1월15일·유료 매체 가입 기준)에 따르면 종편 4사의 주별 평균 시청률은 0.3~0.5%대로 시청률 1%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0%대 시청률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종편 4개 사의 본사 건물. 왼쪽부터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동아일보. ⓒ 시사저널 김미류

방송사의 경영 상황을 판단할 때 시청률을 간과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시청률이 광고 매출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종편은 지상파 방송사 대비 70% 수준의 광고 단가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종편의 시청률이 지상파 시청률(평균 5% 안팎)보다 크게 못 미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광고 단가를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광고 단가가 기대치에 못 미치면 경영상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현 시청률 수준에서 종편의 적정 광고 단가 비율을 지상파의 10~20%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시장 논리와는 위배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 증권사의 미디어 전문 애널리스트는 “종편 시청률보다 높은 인기 케이블TV는 황금 시간대에도 지상파 대비 10% 수준의 광고 단가를 받고 있다. 종편의 시청률이 지상파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상황에서 종편의 광고 단가는 더 낮아지는 것이 시장 논리에 맞다”라고 말했다.

종편의 운명이 개국 100일 만에 위기에 봉착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종편 출범을 강행했던 현 정부로서도 종편이 위기를 맞는다고 해서 지난 2월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금 2년 유예 이외에는 추가적 지원을 해줄 명분이 떨어진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되레 ‘종편 특혜 축소’를 벼르고 있다.

종편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언론계 내·외부에서는 적정 종편 사업자 수를 1개로 전망했다. 신규 종편 사업으로 인한 광고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방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KBS2 방송의 광고 축소 시 발생할 수 있는 예상 잉여 광고 재원의 상당 부분이 종편으로 흘러들어간다 하더라도, 1개 이상을 선정할 경우에는 종편의 광고 재원 부족과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종편의 상황이 악화할수록 종편 PP 내부에서 정부의 무더기 종편 선정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까지 자기네들이 원해서 종편 선정을 해주었는데 이제 와서 사업이 잘 안 된다고 정부를 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미 종편이라는 시장이 열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더 이상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고, 시장의 흐름에 따라 종편업계의 흐름도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거듭된 실패에 매각설 솔솔…“3년만 버티자”

TV조선 홈페이지에 실린 드라마 의 홍보 화면.

결국 가장 답답한 것은 종편 PP와 종편을 소유한 신문사 등 대주주이다. 종편 PP 사업 자체가 위기에 처할 경우 그동안 종편 사업 자체를 위해 전력 투구해온 신문사로까지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종편 PP 매각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종편의 마지막 구세주로 기대를 모았던 TV조선의 <한반도>가 시청률 1% 안팎을 벗어나지 못한 채 조기 종영되는 운명을 맞으면서 종편 PP 매각설의 농도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매각을 타진한 종편 PP사의 이름과 구체적인 금액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많다. 방송통신위원회 오광혁 방송채널정책과장은 “종편 PP 선정 시 3년간 주주 변동 등 지분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했다”라면서 “매각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이다”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종편의 등장으로 오히려 몸값이 급상승해 종편 인수자로 지목받는 CJ E&M의 관계자도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다수 케이블TV PP를 보유한 CJ E&M이 설령 종편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격 흥정을 위해 최대한 느긋한 자세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매각은 더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버티기 전략’은 시장 왜곡시킨다는 우려도

매각설보다 현실성이 큰 종편의 출구 전략은 ‘무작정 버티기’이다. 최대한 적자 폭을 줄이면서도 안정적인 시청률을 회복할 시간을 버는 식이다. 종편의 버티기는 SBS의 경험이 토대가 되고 있다. SBS는 지난 1991년 12월 개국 후 3년간 낮은 시청률에 머무르다 1995년부터 본격적인 성장에 돌입했다(54쪽 표2 참조). 종편의 버티기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보도 프로그램을 위주로 방송을 재편성하는 한편, 재방송 비율을 높여 종편의 명맥만 유지하는 전략이다. 실제 보도 전문 채널이었던 MBN은 기존 인지도가 큰 뉴스·시사 프로그램을 늘리는 한편, 코미디 프로그램을 재방하는 전략으로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

물론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종편 설립 과정에 관여한 한 인사는 “당시 SBS가 정상 궤도에 올라 성장한 것은 <모래시계>라는 걸쭉한 히트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편의 상황이 열악한데 히트 작품이 나오고 시청률이 정상적으로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라고 주장했다. 업계 내부 관계자도 <한반도>의 실패 사례를 상기시키며 “1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투자했는데도 시청률 벽을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을 갖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실망감이 팽배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종편의 버티기 전략이 방송 시장을 더욱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종편을 개국하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A급 인력을 투입한 프로그램이 시청률 저조로 줄줄이 조기에 종영되고 있다. 종편의 시청률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종편 사업 자체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방송 제작 문화를 개선하겠다던 종편이 시청률에 따라 조기 종영하는 횡포를 일삼고 독립제작사에 피해를 주며, 방송 전반의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 뻔하다.” 3월12일 종편 PP의 방송 조기 종영 관행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독립제작사협회 배대식 기획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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