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 속에 ‘앵그리버드’ 날린 뜻은?
  • 광주·대구-이규대 기자 ()
  • 승인 2012.04.10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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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의 광주·대구 강연 현장 취재 / 정치적 함의 담긴 발언 잇달아 내놓아 ‘주목’

안철수 원장이 4월3일 광주 전남대 대강당에서 열린 ‘광주의 미래, 청년의 미래’ 강연을 위해 대강당에 들어서고 있다. 오른쪽은 참석자들의 사진 촬영 모습. ⓒ 시사저널 유장훈

총선을 불과 일주일 남겨둔 지난 4월3일과 4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광주와 대구를 잇달아 방문했다. 전남대와 경북대에서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3월27일 서울대 강연에서 대권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안원장의 ‘정치 행보’가 본격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안원장을 쫓아 광주와 대구를 오가며 강연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등장부터 파격이었다. 4월3일 오전 11시께, 안원장이 전남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연이 예정된 오후 2시보다 세 시간이나 앞서 도착한 것이었다. 안원장은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등 학생들과 폭넓고 자연스럽게 만났다. 다음 날 경북대 강연을 앞두고도 똑같은 ‘게릴라성’ 행보를 보였다.

안원장은 강연이 시작되기 한 시간 반 전인 오후 12시께 경북대 복지관에 있는 학생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예고 없이 등장한 안원장 주변으로 수많은 학생이 모여들었다. 학생들로 둘러싸인 안원장은 시종일관 표정이 밝았다. 사진 촬영 및 사인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안원장이 학교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는 사실은 학생들 사이에서 큰 화제로 떠올랐다.

강연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지역 대학생 및 주민, 취재진 등이 대거 모인 탓이다. 지난 4월3일 <시사저널> 취재진이 전남대 대강당에 도착했을 때, 강연이 약 1시간 정도 남았는데도 1천5백석 규모의 강연장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복도에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는 바람에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더는 사람을 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학교측에서는 청중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대강당 입구에는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주최측이 뒤얽히며 아수라장이 연출되었다. 결국 많은 사람이 강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경북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북대 강연의 경우 김형기 경제통상학과 교수가 자신의 수업에 안원장을 초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강연은 매주 김교수의 수업이 열리는 3백50석 규모의 강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전에 변변한 홍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 2시간 전부터 강의실은 이미 몰려든 학생들로 가득 찼다. 강연 1시간 전인 오후 12시30분쯤에는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학교측이 2시에 대강당에서 예정되어 있던 행사를 중강당으로 옮기고, 안원장이 대강당에서 강연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에 따라 학생 및 지역 주민 그리고 취재진들이 떼 지어 대강당으로 움직이는 ‘대이동’까지 빚어졌다.

이런 모습들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타고 빠르게 화제가 되었다. 학생들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안원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경북대 생명과학부 박인경씨(20)는 “친구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안원장 강연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가고 있다. ‘안철수 파워’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안원장 강연의 여파는 참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까지도 미쳤다. 강연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마주친 한 남학생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강연에 가지 않았지만 SNS를 통해 강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강연 내용에서부터, 지금 강연장 안에서 누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까지 SNS에 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이 4월4일 대구 경북대 대강당에서 열린 ‘안철수 교수가 본 한국 경제’ 강연회 중 질문한 학생에게 앵그리버드 캐릭터 인형을 던져주고 있다(오른쪽). ⓒ 시사저널 유장훈

“(정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안원장은 전남대 강연에서 ‘지역 격차 문제’ ‘청년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우리가 지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놓친 것은 균형이다. 사회·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지역 간 발전도 균형이 깨진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안원장은 19대 총선에서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당보다 인물을 보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 기준으로는 ‘진영 논리 및 정파 이익에 급급하지 않는 인물’ ‘과거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인물’ ‘인격이 성숙한 인물’을 꼽았다.

다음 날 경북대 강연에서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나왔다. 안원장은 한국 경제의 핵심 과제로 ‘일자리 창출’ ‘실업률 문제 해결’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등을 들었다. 각각에 대해 실질적인 정책화 부분까지 깊게 고민한 흔적을 드러냈다. 다소 원론적인 수준에서 사회 문제를 언급해온 그간의 모습에 비하면 구체적인 ‘각론’ 수준까지 발언 영역이 확장된 모습이었다.

‘정치적 행보’라는 정치권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안원장은 취재진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영상 및 사진 촬영을 강연 시작 후 10분씩으로 제한했다. 전남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연사(안원장)측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질문 기회 또한 제한했다. 전남대에서는 참석자들로부터 미리 받아둔 질문 중 안원장이 골라서 답변했다. 현장에서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경북대에는 청중으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았지만, 안원장이 자신의 입으로 “학생들만!”이라고 제한을 두었다. 취재진에게는 끝내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정치 참여에 대한 집요한 질문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안원장의 정치 참여에 대한 궁금증은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북대의 한 학생이 “대선 출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안원장은 “이제 질문 그만 받아야 할 때가 됐나 보다”라며 너털웃음을 짓더니, 곧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는 “서울대 강연에서 얘기했던 것 그대로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무엇을 얻는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의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될지를 보고 움직인다. (정치 참여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답했다.

두 차례의 강연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안원장이 ‘앵그리버드’를 쏘아 올리는 대목이었다. 안원장은 강연 말미에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학생들에게 인기 모바일게임인 ‘앵그리버드’의 캐릭터 인형을 선물했다. 안원장은 강의장에서 인형을 꺼내들 때마다 거듭 ‘상징성’을 강조했다. “착한 새들의 알을 돼지들이 훔쳐간다. 그리고 성으로 들어가서 견고한 기득권을 가진다. 그러자 착하고 순한 새들이 거기에 온몸을 부딪쳐 싸운다. 굉장히 상징적이다”라는 것이다.

‘앵그리버드’ 이벤트는 안원장측에서 공들여 기획한 ‘작품’으로 보였다. 안원장이 그 상징성을 거듭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연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앵그리버드가 되어달라고 촉구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안원장 자신이 앵그리버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일까. 안원장이 쏘아 올린 앵그리버드에는 정치 참여를 향한 그의 모호한 화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번 두 차례 강연에서 안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그 의미를 두고 여러 추측을 낳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저 평범한 대중 강연이라고 하기에는, 안원장의 행동과 발언은 ‘정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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