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또 덮친 ‘잔인한 4월’의 기억
  • 대전·이규대 기자 · 이하늬 인턴기자 ()
  • 승인 2012.04.2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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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서 이 대학 4학년생이 투신 자살해 충격…1년 전 연쇄 자살 사건 떠올리게 해

지난 4월18일 카이스트 교양분관 앞에 설치된 분향소. ⓒ 시사저널 박은숙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최근 중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지난 4월17일 카이스트에서 또 자살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더했다. 지난해 초, 카이스트에서는 약 한 달 간격으로 네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쇄 사고는 지난해 4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당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강행한 경쟁 위주의 학사 운영이 잇단 죽음을 부른 한 원인으로 거론되면서 비판의 화살이 서총장을 향했다. 학교측이 학사 운영 개선안을 발표하고 나서야 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봄기운이 한껏 무르익은 교정에서, 학생들은 세상을 버린 학우들을 애도했다. 그런데 1년여 만에 다시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이 대학 전산학과 4학년 김 아무개씨(22)는 지난 2월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이었다. 과거 기타 연주 동아리, 학내 밴드, IT 분야 동아리 등에서 활동하며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외향적인 성격 덕에 대인 관계도 좋았다. 성적도 전체 학생들의 평균을 웃돌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다. 김씨가 IT 분야 동아리 회장으로 있던 시절에 함께 활동했던 한 동료 학생은 “우울해하는 조짐을 전혀 못 느꼈다.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왜 목숨을 끊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진로 문제였다. 김씨는 부모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숨지기 전날에는 기숙사 룸메이트에게도 진로 문제에 얽힌 스트레스를 토로했다.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 없었던 것일까. 김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 “전에는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웠는데, 요즘에는 열정을 내보려고 해도 순수성이 사라져서 힘이 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결국 김씨는 지난 4월17일 오전 5시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기숙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30여 분이 지난 후, 그는 기숙사 뒤편 잔디밭을 지나던 한 학생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김씨가 타살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결론 내렸다. 기숙사 폐쇄회로(CCTV) 화면에 기록된 김씨의 행적에서 자살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원인은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교측의 학사 운영에 대한 비판 여론 재점화

지난 4월17일 카이스트 대학생이 투신 자살한 기숙사 입구에 학생상담센터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다. 왼쪽은 투신 현장에 놓인 꽃다발. ⓒ 시사저널 박은숙
카이스트 내에 설치된 학생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의 총 상담 건수는 약 2천건에 달했다. 카이스트의 학생 수가 4천8백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수치이다. 학생들의 상담 사유는 대인 관계(35%), 우울 및 정신 건강(20%), 학업 적응(18%), 적성·진로(15%), 이성 관계(12%) 순이었다. 물론 학업 부분은 개인의 자존심과 관련된 부분이라 상대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카이스트 학생들이 학업 문제 이외에도 다양한 사유 때문에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름의 고민이 있음에도 상담센터를 찾지 않은 학생들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진로 문제로 심리적 갈등을 겪던 김씨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당수의 학생은 김씨의 ‘진로 고민’에 공감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4학년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카이스트라고 하면 진로 고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외부인이 많다. 하지만 주변의 기대가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압박감을 느끼는 친구가 많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카이스트에는 조기 입학해 공부만 해온 학생이 많다. 학교의 특성상 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부분도 강하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학생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전산학과에 재학 중인 4학년 이 아무개씨(20)는 “‘열정이 사라졌다’라는 내용에 공감이 갔다. 전산학은 매 순간 엄청난 속도로 변한다.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스스로 열정이 없다고 느꼈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측의 학사 운영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재점화되는 분위기이다. 지난해 잇따른 자살 연쇄 사고 이후 학교측은 학제 운영 원칙을 일부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큰 변화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생들의 중론이다. 학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전히 경쟁 중심적인 학사 제도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학생이 계속 발생할까 우려하는 시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시사저널>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서남표 총장이 도입한 연차 초과 수업료 추가 징수(정규 학기 이상 학교를 다닌 학생은 수업료를 추가로 내야 하는 것)는 그 수준만 완화되었을 뿐 여전히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영어 강의 역시 일부 교양 과목만 한글 강의로 전환되었을 뿐, 대부분의 기초 과목에서는 영어 강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징벌적 등록금’도 일부 규정이 완화되었을 뿐 존속하고 있었다.

상담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4월 이후 상담센터의 인력은 종전 네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상담을 원하는 학생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신청 후에도 2주 정도 기다리는 것이 통례라고 한다. 당직 상담전화를 통한 24시간 상담 시스템도 심야 시간에는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관련 인프라가 수요에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학업과 진로 부분에 스트레스받는 학생 많아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여전해 보였다. 취재진과 만난 학생들 중에는 학업의 양이나 진로 부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한 이들이 많았다. 학부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김도한씨는 “학교측에서 일부 규정을 완화했지만 기본적인 철학은 그대로이다. 학생들을 무한 경쟁시켜,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우수한 학생들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이다. 잘하기 위한 경쟁보다는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경쟁이라는 느낌이 학생들 사이에 크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죽음 이후 학교측은 시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와 같은 연쇄 사고를 방지하려면 이번 사고로 인해 학내 구성원들이 받은 충격을 서둘러 안정시켜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학생회와의 협의를 통해 전교생 지도교수 면담, 전체 휴강일 지정, 상담센터에 외부 인력 초빙 등 단기 대책을 내놓았다. 추후 중·장기적인 대책을 계속 논의할 예정이다. 학교측 관계자는 “무엇보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중·장기적인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학생들 역시 김씨의 사고를 둘러싼 과열된 관심이 또 다른 학우의 사고로 이어지게 될까 봐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염려이다.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측은 “학교가 더 행복하고 더 민주적인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시간을 갖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저희를 차분하게 지켜봐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지난 4월18일, 김씨가 숨을 거둔 자리에는 국화 한 다발이 놓였다. 꽃다발 안에는 흰 메모지가 함께 있었다. 거기에는 ‘김군에게. 자네를 지키지 못해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깝네.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고 우리 카이스트를 사랑해주게’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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