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반 우려 반 ‘김기용 청장 시대’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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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차례” 예상 깨고 경찰 새 수장에 올라 / 국민 신뢰 회복·민생 치안 강화 등 숙제 수두룩

경찰청 청사. © 시사저널 박은숙

김기용 경찰청장 후보자(55)의 인사청문회가 5월1일 실시된다. 김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에 정식 임명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심중에는 원래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이 있었다. 하지만 ‘영포 라인’과 민간인 사찰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을 지낸 것이 끝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서울청장의 임명을 강행하면 야당이 반발할 것이 뻔했고, 국민 정서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결국 장고를 거듭한 끝에 무난한 인물을 골랐다는 후문이다.

충북 제천 출신인 김후보자를 임명한 데에는 지역 정서도 감안했다. 지금까지 충북 출신 경찰청장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었다. 김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최초의 충북 출신 청장이 된다. 김후보자는 검정고시-방송통신대-행정고시를 거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찰에는 1992년 경정 특채로 입문했다.

그런데 경찰 안팎에서는 김후보자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이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후 내년 2월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찰청장도 바뀔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경찰청장은 2년 임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임기를 채운 청장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후 세 명의 청장이 거쳐갔지만 임기를 채운 청장은 한 명도 없었다. 어청수 전 청장(10개월), 강희락 전 청장(15개월), 조현오 청장(20개월)이다. 그만큼 부침이 심했다.

이에 대해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서울청장이 경찰청장으로 가야 하는데, 영포 라인이다 뭐다 해서 제외되었다. 한번 원칙을 정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지금처럼 땜질하듯 바꾸어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8개월 청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러면 경찰 조직의 미래가 어둡고 깜깜하다. 더는 경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경찰은 ‘민주 경찰’ ‘국민을 위한 복지 경찰’ ‘중립 경찰’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기용 후보자는 특별한 경우로 꼽힌다. 그는 올해 초 치안감(경찰청 경무국장)에서 박종준 전 차장이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내자 그 뒤를 이어 차장에 올랐다. 불과 3개월 만에 치안정감에서 치안총감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이것만 보면 ‘관운’을 타고났다고도 할 수 있다.

김후보자는 경찰 내에서도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경찰청장의 필수 코스라고 알려진 경기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을 거치지 않았다. 지방청장도 충남청장을 거친 것이 전부이다. 경기청장이나 서울청장과 같은 큰 조직을 거느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때문에 ‘현장을 모른다’거나 ‘조직 장악력이 약하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위기관리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다.

경찰 내에서는 김후보자를 대체로 ‘조용하고 합리적’이라고 평하고 있다. 서울 용산서장 시절에 강력팀 경사로 일했던 한 경감급 간부는 “직원들의 이름을 많이 기억했다. 한 명 한 명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다. 조용하면서도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 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스형은 아니고 은인자중하는 지도자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김기용 경찰청장 후보자가 충남경찰청장 재임 시절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김후보자는 경찰 내에서는 학연·지연·혈연과 거리가 멀다. 때문에 조직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평소 엄격한 자기관리와 청렴을 강조하고 있고 불법·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응징한다는 입장이다"라고 강조했다.

김후보자가 당장 해야 할 일도 첩첩산중이다. 우선 수원 살인 사건에서 보여준 것처럼 흐트러진 민생 치안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해야 할 것이 조직 기강의 정비이다.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은 “21세기 경찰의 비전은 ‘치안의 질을 높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경찰’이다. 이번 수원 사건은 매뉴얼이 안 되어 있어서 일어난 일이다. 새 청장은 치안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을 쓰면 좋겠다. 그렇게 하려면 현실성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서 직원들의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정보과 형사는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그는 국민이 만족하는 민생 치안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새 청장은 이런 차원에서 조직 관리를 잘 해주기를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하위직 경찰관들은 ‘소통 채널 회복’을 강조했다. 현 정부 들어 경찰 내부 통신망에 쓴소리를 한 경찰관 7명이 파면되었다. 한때 활성화되었던 내부 통신망이나 경찰 커뮤니티도 ‘개점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다. 특히 조현오 청장 시절에 내부 감찰이 강화되면서 경찰관들의 언로가 꽉 막혔었다.

이에 대해 장병준 무궁화클럽 회장(원주경찰서 경무계)은 “신임 청장은 하위직과 소통을 잘 했으면 좋겠다. (김후보자가) 경정 특채로 들어왔기 때문에 하위직의 애환은 잘 모를 것 같다. 소통을 잘 하려면 문호를 개방하고, 대규모의 토론보다는 소규모라도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경찰 조직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지휘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양동열 전 경사는 “당장 경찰 노조가 불가능하다면 경찰직장협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하위직의 권익과 경찰 내부의 부정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직장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청장이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후보자는 ‘검·경 수사권’ 문제에는 적극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수사나 형사 파트의 경험이 별로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권 독립’ 문제에는 신중하자는 견해가 많다.

한 총경급 간부는 “그동안 우리 경찰은 국민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큰 것만 챙겼다. 그중 하나가 수사권 독립이다. 지금 정치권의 화두가 민주화이다. 우리 경찰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국민과 최일선의 접점에 있는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청장은 조직이나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청장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수사·형사 분야의 경찰들은 ‘수사권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경찰대 출신들, 청장은 못 냈지만 역시 ‘막강’ 

‘경찰대 출신 청장 시대’는 조금 미루어지게 되었다. 현재 치안정감 네 자리 중 세 명이 경찰대 출신이다. 이 가운데 서천호 전 경기청장은 수원 살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기용 경찰청장 후보자는 경찰대 출신들과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인 셈이다. 당초 경찰대 출신들은 올해를 ‘경찰대 출신 청장 시대 원년’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강덕 서울청장이 밀려나고, 강경량 경찰대학장마저 낙점을 받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는 사실상 경찰대 출신들이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 본청과 지방청의 요직은 거의 경찰대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16개 지방청장 중 9곳의 청장이 경찰대 출신이다. 경찰의 꽃인 경무관이나 지휘부인 본청 치안감들도 경찰대 출신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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