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부끄러운 경선 부정
  • 성병욱 | 인터넷신문 윤리위원장 ()
  • 승인 2012.05.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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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반세기 전의 낡은 레코드를 다시 듣는 것 같다. 통합진보당(통진당)의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저질러진 온갖 부정·부실 논란이 그렇다. 4·19를 촉발한 1960년 3·15, 1967년 6·8 부정 선거가 연상될 정도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과 세력이 변명과 꼼수, 반격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도 비슷하다.

3·15 때에는 노쇠한 대통령의 유고 시 정권을 야당에 내줄 수 없다는 자유당 정권의 권력 집착이, 6·8 때에는 대통령의 3선을 위한 개헌 의석 확보 욕심이 부정 선거를 불렀다. 부정 선거를 통해 얻으려던 목표를 박정희 정권은 이루었지만, 자유당 정권은 몰락했다.

그렇다면 온갖 무리를 해가며 통진당의 당권파가 얻으려던 목표는 무엇일까. 오랜 사상 투쟁을 하며 막후에 머무르던 실세들이 국회의원으로 정치 전면에 나서 당권을 장악하려는 것일 수 있다. 이들과 ‘주사파’ 활동을 같이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이제는 지하당 전술이 안 통하니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으려는 쪽으로 전술이 바뀐 것이 아니냐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자유로운 정치 활동이 가능한 국회의원직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 조직 심부(深部)의 결정이 있었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대명천지에 온갖 부정·무리수를 동원하고, 또 당내외의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뻔뻔하달 정도로 버티는 속내를 설명하기 어렵다.

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 진상 조사보고서에 나타난 부정·부실의 유형은 그야말로 백화점 수준이다. 오프라인 현장 투표자 수가 투표 마감 당시와 최종 발표일 사흘 새에 12.4%나 늘었다. 12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2~6장까지 일련번호 순으로 붙은 채 발견되었다. 대리 투표, 무더기 투표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선관위원장 직인·투표관리자 서명이 없는 투표용지, 복수 후보 기표, 기표 도구 아닌 볼펜 등으로 기표, 투표관리자나 투표자의 서명 없는 선거인 명부, 투표소의 선거인 수와 투표용지 수가 다른 경우 등 무효 처리되어야 할 표가 무려 24.2%에 이른다고 한다. 온라인 투표에서는 한 PC(동일 IP) 중복 투표가 개별 IP 투표를 압도할 정도였다. 중복 투표 중에는 투표자들의 주소가 전국 각지인 데다 투표자 이름은 다른데 주민번호 뒷자리 숫자가 일치하는 등의 대리 투표, 주민번호 도용·조작이 의심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특히 투표 도중 소스코드가 네 차례 열렸는데 그 시점에서 특정 후보의 투표율이 수직 상승하는 이해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투표율이 100%가 넘는 곳도 있다.

그런데도 당권파는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모습은 고사하고 보수 언론에 먹잇감을 던져줬느니, 당을 개판으로 만들었느니 하며 진상조사위를 헐뜯고, 후속 특위를 만드는 등 상황 반전에만 정신을 쏟는다.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 오죽하면 원로 원탁회의 그룹을 비롯한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을 쏟아내겠는가.

이제 통합진보당도 국회 의석 10석이 넘는 제3당이 되었으니 민주 국가의 공당으로 변신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고 법치를 존중하며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국민을 절망케 한 부정 경선 사태를 해결하는 길은 뻔하지 않은가. 공동대표들의 인책 사퇴에 더해 부정 경선의 결과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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