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떠나는 의원들 후원금, 막판에 막 쓴다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5.13 00: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임기가 끝나고 물러나면 의원실이 보유하고 있는 정치후원금은 어떻게 처리할까.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임기를 마치거나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신이 거둬들인 정치후원금을 소속 정당이나 공익법인·사회복지시설 등예 인계하거나 국고에 귀속해야 한다. 이 법이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 이미 사퇴해 정치자금 지출 신고를 한 18대 의원 10여 명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확보해 분석했다. 18대 현역 의원들은 임기가 아직 남아 있는 탓에 대다수 의원이 중앙선관위에 지출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이다.

ⓒ 시사저널 유장훈

18대 국회의 임기는 5월31일로 끝난다. 이미 국회의사당 내 의원회관에서는 18대를 끝으로 국회에서 나가는 의원들의 짐이 속속 빠져 나가고 있다. 정부의 경우, 한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모든 정책의 승계를 협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라 살림, 즉 국고도 자연스럽게 인수·인계된다. 지방 정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의원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임기가 끝나고 물러나면 의원실이 보유하고 있는 공식적인 정치자금(정치후원금)은 어떻게 처리될까.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정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후원금 같은 정치자금이 어떻게 거둬들여지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을 갖지만, 막상 그 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답은 그 돈을 자신이 임의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21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임기가 끝나거나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신이 후원회를 통해 거둬들인 정치후원금을 소속 정당이나 공익법인·사회복지시설(무소속일 경우)에 인계하거나, 국고에 귀속해야 한다. 과연 이런 법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18대 국회 여야 의원들의 정치후원금 사용 실태를 검증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치자금(정치후원금) 수입·지출’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에 따라 지난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내각 또는 청와대 입성 등의 사유로 의원직을 이미 사퇴(의원면직)해 정치자금 지출 신고를 한 18대 의원 10여 명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시사저널>은 중앙선관위를 통해 위에 해당하는 국회의원들이 2011년 1월1일부터 같은 해 회계보고 기한 내에 지출한 것으로 신고한 ‘정치자금(정치후원금) 수입·지출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일부 의원은 의원직을 물러나기 직전 짧은 기간에 정치후원금을 집중적으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그 용도를 보면 순수한 의미에서 정치 활동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가 무척 모호하거나 지출처가 불명확해 논란이 예상되는 벼락치기 지출을 한 사례도 있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벌어지는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 벼락치기 지출 관행’이 드러난 셈이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장관으로 임명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김금래 장관측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김장관은 지난해 9월19일 자신의 정치후원금 중에서 여야 국회의원 39명에게 1인당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총 9백40만원을 나눠준 것으로 드러났다. 후원금 명목이었다.

확인 결과, 당시 김장관에게 후원금을 전달받은 의원 중 세 명(60만원 상당)만 당일 또는 그 직후 반환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장관이 자신의 정치후원금 중 일부를 동료 의원들에게 나눠준 날은 자신이 여성부장관으로 임명(9월16일)된 지 사흘 만이고, 장관 청문회(14일)가 열린 지 닷새째 되는 날이다. 김장관측은 여성가족위 청문위원 15명(2명 반환)의 후원회에도 10만~30만원씩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금래 여성가족부장관. ⓒ 시사저널 유장훈

동료 의원들이나 의원실 직원에 나눠주기도

당시 김장관의 정치자금 회계를 담당했던 직원은 “김장관이 의원직을 그만두면서 남은 정치자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동료 의원에게 기부해도 좋다는 선관위의 의견을 들어서 한 일이다. 같은 상임위에서 일한 동료 의원들을 위해 좋은 일에 쓰라는 취지로 기부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직원은 또 “특정 의원에게 쏠리지 않고 여야 의원에게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노력했다. 기부를 하고도 남은 정치자금 5백여 만원은 중앙당에 인계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황영민 간사는 “국회의원이 후원회를 통해 유권자에게 받는 정치후원금은 의정 활동을 위해 쓰라는 취지의 돈이다. 그런 돈을 동료 의원에게 기부한 행위를 과연 정당한 정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비슷한 논란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둘러싸고도 일어났다. 임 전 실장도 2010년 7월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청와대로 입성할 당시, 자신의 정치후원금 잔액으로 동료 의원들에게 수백만 원씩 후원하거나 스포츠·문화 관련 단체에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회비를 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판결을 받은 현경병 전 의원이 신고한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에서는 사용처의 진위 여부가 일부 애매한 부분이 드러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 전 의원측은 의원직 상실에 따른 대법원 판결을 받은 사흘 뒤인 2011년 6월13일 건설업체로 등록된 A업체에 ‘지역 사무실 공사비’로 1천6백여 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직 상실로 지역 사무실을 폐쇄하는 상황에서 1천만원 이상의 거액을 공사비로 지출한 것도 의문이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당시 공사를 담당한 업체의 실체를 놓고도 의혹이 제기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에 명시되어 있는 A업체의 주소지는 ‘노원구 월계동 411-○○번지 S빌딩 20X호’로 나와 있다. 그런데 기자가 현장을 확인한 결과, S빌딩의 외벽에 A업체의 간판은 걸려 있었지만, 실제 20X호는 스포츠마사지실로 운영되고 있었다. S빌딩에서 영업 중인 한 관계자는 “20X호에서 마시지실이 언제부터 영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 1년 이상은 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 현 전 의원측이 공사비를 지출하면서 증빙 서류로 제출한 A업체의 견적서에 나타난 또 다른 주소지(월계4동 287-△△ P빌딩 40X호)를 기자가 직접 확인한 결과, A업체의 사무실이 아닌 복싱 연습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현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인 박 아무개씨는 “당시 국회에 근무하면서 지역 사무실 관계자가 공사비 지출 서류를 보내서 지출을 하게 되었다”라면서 “정치자금 데이터베이스에서 A업체의 주소지를 그대로 복사해 쓰면서 착오가 발생한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A업체 황 아무개 대표는 “공사를 했으니깐 당연히 공사비를 받은 것 아니냐”라면서 “(P빌딩에는) 3개월 전까지도 사무실이 있었지만 업체 사정상 사무실을 옮겼고, 주소 이전이 늦어졌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적극적 자료 제출과 일상적 공개 필요”

2008년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현경병 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
정치후원금을 이용해 정책개발비나 격려금 및 퇴직위로금 등의 명목으로 자신의 보좌관이나 의원실 직원들에게 지급한 사례도 발견되었다. 김금래 장관은 지난해 9월 의원직 사퇴 직후인 같은 달 19일자로 ‘의원면직 직원 위로 격려금’ 명목으로 일곱 명의 의원 사무실 직원들에게 1인당 1백50만원씩 나눠준 것을 포함해 총 1천5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도지사 선거에 나서기 전인 지난해 3월 초 의원실 직원 일곱 명에게 1인당 80만~1백20만원씩 총 6백7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관행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김장관의 전 회계 책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회에서 직원들이 급여를 받지만 특별한 업무가 있을 때는 격려 차원에서 의원님이 따로 격려금을 주기도 한다. 의원면직에 따른 직원 위로·격려금의 경우도 의원 사무실 직원들이 별도의 퇴직금이 없는 만큼 배려 차원에서 주신 돈으로,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은 지난해 9월14일 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김후보자가 지난해(2010년) 2월과 7월, 9월 총 3차례에 걸쳐 정치후원금으로 자신의 보좌진에게 30만원씩 상여금을 준 사실이 있다”라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을 감시하는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정치자금 지출에 대한 적극적인 자료 제출과 일상적인 공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자금투명성연대회의(정투연)는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정치후원금 불법 사용 실태를 고발하면서 “2002년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개정된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권의 부패에 대한 의혹을 잠재우는 데 미진한 면이 있다”라며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황영민 간사는 “국회의원들이 정치자금을 지출하고 신고하는 내역이 허술한 경우가 많다. 정치후원금 지출 내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정치후원금의 지출에 따른 투명성 제고에 대한 필요성은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공론화의 장은 부족한 셈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정치후원금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치 활동 범주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필요하다. 검은돈의 유입을 막는다는 취지로 정치후원금 조성에 집중되어 있는 시각을, 정치후원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검증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개선하는 데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법, 정치 활동 규정 모호하고 내역 두루뭉술해도 ‘OK’ 

‘정치후원금 벼락치기 지출’ 논란은 정치자금법 등 현행 법·제도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에 정치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범주를 ‘정치 활동’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규정하다 보니 여러 가지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사적 이용’과 ‘정치 활동’이라는 두 가지 개념의 의미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통상적으로 국회의원 후원금 지출을 모든 정치 활동에 포함시키는 관행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또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 지출과 관련한 정보 공개가 허술하다는 점 역시 제도적 한계로 꼽힌다. 통상적으로 국회의원들은 임기 만료나 의원직 상실 때를 포함해 해마다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를 통해 지출 내역을 중앙선관위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출 내역의 명시가 없어 실질적으로 ‘정치 활동’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의원직을 사퇴한 여당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지난해 3월 중순 7백만원을 의정 보고서 제작 비용으로 지출하고, 이어 두 달 만인 5월 중순에 의정 보고서 제작 비용으로 5백만원을 또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의정 보고서 제작’만으로 명시되어 두 보고서의 차이나 지출 필요성 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의정 보고서 제작뿐만 아니라 지출 보고서 내역에는 ‘차량 주유’ ‘식대’ ‘간담회 식사’ ‘격려금’ 등으로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고, 게다가 지급받는 사람이 개인일 경우 개인정보 보호에 따라 성(姓)만 공개하고 있어 사후 검증이 어렵다는 지적도 받는다. 실제 선관위 차원에서도 정치후원금 지출 내역 신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 지역 한 선관위 관계자는 “현행 규정대로 되어 있는 정치자금 수입·지출부 내역만으로는 의원들이 정치 활동에 부합하도록 썼는지 여부를 면밀히 확인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관련 업무를 보는 담당자로서도 어려움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