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처럼 펼쳐진 비밀의 삼각관계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5.2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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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송원 대표-김찬경 미래저축 회장-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그림 거래 둘러싼 의혹 불거져

검찰은 ‘김찬경-김승유-홍송원(왼쪽부터)’ 사이의 ‘그림 커넥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구속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저축은행 비리가 연일 새로운 의혹을 낳고 있다. 최근 사정 당국은 김찬경 회장 주변에서 고가의 그림을 매개로 한 ‘커넥션’의 정황을 발견하고 수사에 나섰다. 여기에 연루된 주요 인사로는 김찬경 회장을 비롯해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등이 지목되고 있다.

김승유 전 회장은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힌다. 고려대 경영대학 동기인 이명박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이며, 이 때문에 하나금융그룹 회장 재임 시절 잦은 특혜 논란을 불러온 인물이다. 한편 홍송원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활동해온 미술계의 거물급 인사이다. 현재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이 밝힌 바를 종합하면, ‘그림’을 둘러싼 커넥션에는 화랑(서미갤러리), 금융사(하나캐피탈), 최근 퇴출된 두 저축은행(미래저축은행, 솔로몬저축은행) 등을 포함해 총 4개 업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아래 그림 참조).

그림 담보로 자금 대출받은 것이 발단

사건의 발단은 서미갤러리가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은 것이었다. 과거 서미갤러리는 자기네가 소유하고 있던 그림을 담보로 미래저축은행에서 2백85억원을 대출받았다. 담보로 잡힌 그림은 미국의 유명 작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볼세나(Bolsena)>, 박수근의 <두 여인과 아이>

<노상의 여인들> <노상의 사람들>, 김환기의 <무제> 등 총 다섯 점이었다. 그런데 계속 자금난에 시달리던 서미갤러리는 대출한 돈을 끝내 갚지 못했다. 서미갤러리측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담보로 잡힌 그림들은 미래저축은행으로 귀속되어야 했다.

그러나 김찬경 회장은 이를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사용했다. 지난해 10월, 이 그림 다섯 점 등을 담보로 하나캐피탈로부터 1백45억원을 출자받은 것이다. 이때 서미갤러리는 문제의 그림 다섯 점이 실제로 김찬경 회장의 것인지 묻는 하나캐피탈측의 질의에 ‘그것이 맞다’라는 취지로 확인을 해주었다고 전해진다. 미래저축은행의 불법적인 증자에 홍송원 대표가 관여되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이다.

또 합수단은, 김찬경 회장이 하나캐피탈로부터 1백45억원을 출자받는 과정에 김승유 전 회장도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합수단은 김찬경 회장이 거액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승유 전 회장과의 ‘깊은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관해 김찬경 회장은 검찰에 “김승유 전 회장이 같은 대학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부탁을 받고 퇴출 위기에 직면한 미래저축은행의 유상 증자에 참여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합수단은 지난 5월23일, 하나캐피탈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조만간 김 전 회장이 소환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현재 김 전 회장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이다.

의혹의 핵심에 놓인 ‘저축은행-서미갤러리-하나캐피탈’ 3자 간 거래는 서미갤러리가 거액의 대출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왜 서미갤러리는 2백85억원이라는 큰돈을 대출받아야 했을까.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현재 서미갤러리는 소유 건물 중 일부를 외부에 임대해야 할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잠재성이 있는 작품은 구입 대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미리 선점하는 미술계 특유의 거래 관행과 서미갤러리의 특수한 상황이 겹치면서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0년 12월 서미갤러리가 솔로몬저축은행에 30억원 규모로 증자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홍송원 대표는 이 과정에서 1주당 2천3백원에 불과했던 주식을 액면가 5천원에 매입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수백억 원 단위의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서미갤러리가 왜 증자에 나선 것인지, 더구나 그 과정에서 왜 ‘손해’가 나는 거래를 한 것인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서미갤러리가 미래저축은행과 솔로몬저축은행의 불법 교차 대출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미갤러리가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한 돈 2백85억원 중 일부인 30억원으로 솔로몬저축은행에 증자를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두 은행이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이기 위해 각각 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 교차 대출을 한 사실을 적발한 상태이다.

현재 이들의 거래를 둘러싼 혐의 중 상당 부분은 검찰이 홍송원 대표를 조사한 후 그 진위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홍대표가 검찰 조사를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홍대표가 퇴출 대상 저축은행이 발표되기 전날인 지난 5월5일 돌연 해외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대표측은 업무 때문에 사전에 계획된 출국이었다고 말한다.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홍대표는 지난 5월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제기되는 관련 의혹은) 정말 말도 안 된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 (진실이) 모두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홍대표는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음 주(5월21일 현재 기준) 중 귀국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에 응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검찰 조사를 통해 모든 의혹을 해명하겠다는 뜻이다.

김찬경이 은닉한 그림, 얼마나 더 있나

실제로 홍대표는 지난 5월16일부터 20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를 참관하기로 하는 등 예정된 해외 스케줄이 있었다. 당초 홍대표는 지인을 통해 “저축은행 의혹과 관련해 인터뷰를 통해 진실을 말하겠다”라며 기자와 접촉한 바 있다. <시사저널>은 홍대표가 아트페어에 참석하고 난 직후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진행하던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는 이유로 홍대표가 홍콩에 오지 못하면서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다. 홍대표는 당시 통화에서 “김찬경 회장은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다”라며 최근 불거지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시사저널>은 서미갤러리가 그림 다섯 점을 김찬경 회장의 소유물로 확인해 준 이유, 솔로몬저축은행에 대해 30억원 규모의 증자에 참가한 이유 등을 질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미갤러리측은 “검찰에 언론을 통해 대응하려는 모양새로 비쳐 자칫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까 우려스럽다. 지금으로서는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한편 미래저축은행과 솔로몬저축은행 사이의 부적절한 유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정황도 있다. 김찬경 회장이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에게 수십억 원의 현금과 3억6천만원 상당의 금괴 그리고 수억 원 가치의 그림을 건네면서 “금감원 고위 간부에게 영업정지를 피하게 해달라”라며 청탁했다는 것이다. 또 김회장이 임회장의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미술품 9점과 동생 명의의 건물을 담보로 4백50억원의 대출을 받은 정황도 포착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청탁 및 대출 과정에는 어김없이 미술품이 끼어 있다.

현재 합수단은 김회장이 은닉한 미술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소 김회장이 저축은행 건물 본관 2층에 미술관을 만들어놓고, 방문한 귀빈들에게 소장품을 자랑하곤 했다는 정황 때문이다. 향후 저축은행의 ‘그림 커넥션’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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