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핵 가진 북한과 평화 공존 가능한가”
  • 이승욱 기자·정리│최은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6.12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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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전 대표 인터뷰 / “산업화 위해 유신 불가피했다는 주장은 국민에 대한 모독”

ⓒ 시사저널 이종현

인터뷰이(취재원)이든, 인터뷰어(기자)이든 일요일은 인터뷰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날이다. 10년 만에 대권 도전을 선언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시사저널>의 인터뷰는 일요일인 지난 6월3일 오후 4시에 시작되었다. 주중에는 전국 투어를 하는 정 전 대표의 바쁜 일정 탓에 어렵사리 잡은 인터뷰 스케줄은 이런저런 악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인터뷰 장소에 나선 정 전 대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는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인터뷰’라는 기자의 취지 설명에 “사실에 맞는 질문을 공평하게 해달라”라면서도 “검증은 언론의 당연하고 기본적인 역할이다”라며 말하는 품새를 다듬었다.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가진 이날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발언한 핵무장화 등 ‘대북 강경론’의 배경을 비롯해서,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현대중공업과의 관계 등 다양한 검증 질문에 답했다.

그러나 기자의 날 선 질문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 전 대표 역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다소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일부 질문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며 서면 답변으로 대신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방 순회 중이라 일정이 매우 바쁘다고 들었다. 성과는 있는가?

지방 순회를 다섯 주 했다. 그리고 계속할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것보다 배우는 게 많다. 특히 농사짓는 분들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농촌에는 연세 든 분들밖에 없어서 데모를 하고 싶어도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농업은 경제 논리만으로 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데, 농촌을 가보니 실감이 나더라.

오늘 북핵 해법으로 남한의 핵무장화를 주장했다. 대북 발언 수위가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두 번 했는데 핵실험이 무슨 뜻인지, 북한이 헌법에 핵 관련 명시를 했다는데 그것이 또 무슨 뜻인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외면하며 산다. 왜냐하면 당장 손쉬운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장 큰 현안이 남북 관계이고 그중 제일 큰 것이 핵문제이다. 우리가 모두 다 그 당사자이다. 누구도 해결해줄 사람이 없다. 북한 핵문제는 제일 중요한 문제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역대 정부에서부터 현 정부가 제일 많다.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피상적으로 무책임하게 발언하기 쉽다. 왜냐하면 (핵문제)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면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현대전자 주가 조작 의혹에는 예민한 반응

남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이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미국의 핵 우산에 의존한다. 핵 우산은 필요하지만 북한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협상 수단은 될 수 없다. 핵무기라는 것은 재래식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절대 무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북한과 우리가 평화적으로 공존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대국일수록 서로 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남북 관계는 최악의 사태로 보아야 한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두려움이 기본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두려워하면서도 경멸했다. 지금 북한이 군사적으로 우리를 두려워하겠나. 두려움이 없다. 대북 관계에서 더는 위선적으로 (상대를) 대하거나 (상황을) 호도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왔다.

대북 강경 발언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만 정 전 대표를 떠올리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떠오른다. 소 떼를 몰고 방북한 역사적 사건은 햇볕 정책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북 강경 발언이라고 하는데, 원칙적인 발언이라고 표현해달라. (소 떼를 몰고 북으로 간 것은) 아버님 입장에서는 당연했던 것이다. 북에서 오신 분이니 고향을 돕기 위해 그러신 것이고. 그렇지만 아버님도 김정일이 변하기를 바란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 북에 다녀오셨다고 해서 찾아뵈니 아버님 표정이 굉장히 어두웠다. ‘뭐가 잘 안 되느냐’고 하니 ‘김정일이 생각을 안 바꾸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좀 전에 북한과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고 말했는데, 북을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는가?

북한 앞에 ‘핵무기를 가진’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한다.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우리와 평화 공존이 가능하겠는가.

얼마 전에 세계 석학과의 대담을 담은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와의 소통>이라는 책을 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덜 하버드 대학 교수와의 대담이 눈길을 끌었다. 정 전 대표는 서른 살에 현대중공업 사장이 되었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주제와 걸맞지는 않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한 경쟁에 맞지 않다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아버님이 기회를 준 것이니깐. 만약 내가 (사장으로 있어서) 회사가 나빠졌거나 부정이 있었다면 그런 주장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더 잘되고 기반을 닦았다고 하면, 서른 살에 하버드 법대 학장을 한 것이나 현대중공업 사장을 한 것이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비판을 하려고만 하지 말고 (현대중공업의) 실정을 보고 칭찬도 해야 하지 않겠나. (책 한 권을 주면서) 이 책은 내가 1982년 MIT 석사 논문으로 쓴 책이다. 아버님이 노벨상 받아도 되겠다고 하셨다. 노벨상 받아도 될 정도의 사람인데 현대중공업 사장 해도 되지 않았겠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현대전자 주가 조작에서 현대가(家) 2세가 시세 차익을 남겼고, 그 과정에서 정 전 대표도 관여했다는 주장을 여전히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 사람(이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이미 법원과 검찰에서 다 내렸다. 그 질문 꼭 안 해도 되지 않겠나.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당시 검찰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박 아무개 전 현대증권 상무가 주가 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2003년 12월 이 전 회장과 박 전 상무에 대해 각각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과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과 2년을 확정 판결했다. 이보다 앞서 이 전 회장은 2003년 2월 정 전 대표 등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정 전 대표 등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지난 3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주영 회장의 부탁으로 정회장과 그 2세들의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의) 짐을 모두 짊어지기로 했다”라며 현대가 2세들의 사건 연루설을 주장했다.

그래도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시사저널>이나 이기자가 우리의 법 체계를 우선 이해하면 그런 질문은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이 계속 (사실과 맞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나와는) 관련도 없는 일을, 했다고 (내게 답을 요구)하면 어떻게 하나. 그것도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법 집행 기관인 검찰과 법원에서 이미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을) 심사하지 않았나. 거기서 (이미 판결)한 사건을 자꾸 (질문)하면 ‘이 사람이 사회 전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내 대답은) 이 정도이다.

현재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이야기를 안 물을 수 없다. 총선 전후로 기업 광고가 늘어난 것을 두고도 논란이 되었다.

나도 궁금해서 (현대중공업에) 물어보았다. 올해 상반기에 한 것이 지난해 절반도 안 된다고 했다. 올해는 40주년이다. 올 상반기에 한 것만큼 하반기에 해도 지난해보다는 덜 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소비재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광고를 안 하는 회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포스코 같은 회사는 광고를 많이 한다. 오히려 현대중공업은 광고를 좀 더 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본격적인 대선 구도로 가면 현대중공업이 논란의 선상에 또다시 오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어쩔 수 없이 정 전 대표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기자가 현대중공업 사장이나 대표이사라면 법에 어긋나게 경영하겠나. 회사 임원들이 상식에 맞게 하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다. 무리하게 도우면 오히려 나를 돕는 것이 아니다.

“경선준비위 안 된다는 것은 답답한 이야기”

지난해 일부 언론에서 현대중공업 임직원의 자서전 사재기 의혹을 보도한 바도 있다. 사실은 어땠나?

사실과 다른 과장 보도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회사에는 매년 수억 원의 문화 관련 예산이 있는데 그중에서 몇백만 원 정도 책을 구매했다고 하더라. 책 판매 실적을 올리려면 수억 원을 다 쏟아부어도 어렵다. 나중에 출판협회에서 조사했는데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난 것으로 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입장을 듣고 싶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 대통령 선거에 출마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등이었다. 그때 내가 4선 의원이었다. 4선 의원인데 준비가 없어서 ‘나는 출마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출마를 (강행)했다. 준비가 없어 잘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까지 간 것은 내가 준비 없이 갔으니 안 되었을 뿐이다. (그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지금은 준비를 많이 하고 있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 준비 많이 했다. 한 10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각오도 남다르겠다.

평상시 생각했던 대로 하는 것이다.

현재 박근혜 전 위원장이 여론조사에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여권에서는 김문수·이재오 후보 쪽과 경선준비위원회의 조기 구성을 공동으로 촉구하고 나섰는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당헌에는 경선준비위와 같은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2007년 사례를 보면 (정식 경선관리위원회 구성 전에) 그런 기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헌에 없다고 해서 못 한다는 것은 답답한 이야기이다. 당헌에 그런 것 못 한다는 규정은 없지 않나. 그런 것을 소화하기 위해 대표가 있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은 정 전 대표 등 ‘비박(非朴)’ 진영의 경선준비위 구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6월11일 경선관리위를 출범하기로 했다.)

박근혜 체제로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전제하에 경선준비위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는데.

좋은 것치고 쉬운 게 어디 있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세론’으로) 벌써 쉽다는 인상을 주면 그 자체로 (대선에는) 마이너스가 아닐까.

자서전을 보니 고 정주영 전 회장이 박정희 유신 체제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고 하던데.

반감이라고 쓴 적은 없다. 다만 아주 답답해하셨다. 유신 체제 (당시를 지내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지 않나.

유신 체제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박 전 대통령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신 체제 이후) 경제가 군사 독재 도구로 전락하면서 경제 발전 자체가 자랑거리가 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유신 체제가 지속되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도 후진국 평가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산업화를 위해 유신이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산업화를 이루어낸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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