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은 '공정 사회' 코드를 맞출 수 있을까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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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 지상 검증 시리즈-제3편┃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년 만에 다시 대권 도전에 나섰다. 그는 당시 대선에서 약속을 깨고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를 한 ‘안 좋은 추억’도 가지고 있다. 지금 그의 행보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하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는 현대전자 주가 조작 연루 의혹 등 걸림돌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철옹성을 깨뜨릴 만한 무기도 크게 보이지 않는다. 대권 주자로서 정몽준의 가능성과 아킬레스건을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현충일을 맞아 군부대 안보 시찰 및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6월6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방문하고 있다. ⓒ 뉴시스

꼭 10년 만이다. 지난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했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18대 대선을 향한 도전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16대 대선 이후 그의 정치적 행보에는 ‘고독’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후보 단일화 합의를 극적으로 성사시켰지만 여론조사 경선에서 간발의 차로 패했고, 또 그마저도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지지를 철회하는 무리수를 던진 탓이다. 이후 한쪽에서는 ‘가벼운 처신의 변절자’라는 멍에를 얻어야 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좌파 대통령을 당선시킨 공로자’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그런 그가 10년이라는 긴 잠행에 마침표를 찍고 대권 재도전에 나선 것이다.

정 전 대표에게 2012년 대권을 향한 행보는 화려했던 1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지난 6월3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42쪽 기사 참조)에서 “(2002년 당시는) 준비가 없어 잘 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반면 대중의 지지도 역시 당시와는 온도 차가 크다. 2002년 6월 월드컵 개최 이후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때 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30%를 웃돌았지만, 지금은 약 2% 안팎에 머문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 만한 소재도 좀체 찾기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재벌 2세로 승승장구해온 그의 인생 궤적을 대하는 대중의 시선은 따뜻한 편이 아니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강한 지금의 시대적인 요구에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뒤따른다.

■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 의혹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함께 공동 유세를 하던 정몽준 전 대표. ⓒ 연합뉴스
2002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의 10년 동안 정몽준 전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 가운데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이다. 이에 대해 정 전 대표는 자신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이미 사법적인 판단이 끝났다”라며 연루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그가 당시 주가 조작에 연루된 현대중공업의 고문이자 대주주의 한 명인 데다, 주가 조작 당시 정 전 대표도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법적인 문제를 떠나 도덕적 책임에서마저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대법원 판결(징역 2년·집행유예 3년)까지 받았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지난 3월 <시사저널>(제1167호, 2012년 3월6일자)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 전 대표와 현대가(家) 2세들의 개입설을 거듭 주장하면서 논란의 불을 지피고 있다(35쪽 상자 기사 참조).

실제 최근 기자와 접촉한 이 전 회장측 인사는 “주가 조작으로 인해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한 이는 처벌을 받고, 주가 조작으로 시세 차익을 얻은 이는 면죄부를 받은 꼴이다”라며 여전히 당시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이 전 회장측의 주장처럼 당시 현대그룹 일가는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도해 상당한 시세 차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12월 이 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이익치 및 현대증권에 의한 현대전자 주식의 시세 조종 기간 중 및 그 다음 해 초에 걸쳐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등 정씨 일가, 그리고 현대 계열사들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전자 주식의 상당 부분인 3천8백만주 이상을 고가에 처분한 사실이 엿보이기는 한다’고 적시했다.

정 전 대표 역시 현대전자 주가 조작 당시 상당량의 주식을 매각해 시세 차익을 남겼다. <시사저널>이 지난 1999년 2월27일자 국회 공보에 개재된 국회의원 재산 신고 내역을 확인해본 결과, 정 전 대표는 현대전자 주식 6만5천7백14주를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실매각가로 16억9천3백91만원(1주당 약 2만5천7백원)을 신고했다. 국회의원 재산 신고 내역이 국회 공보에 개재된 최초의 시점인 1993년 당시 정 전 대표가 신고한 내역을 보면, 현대전자 주식 6만5천7백14주의 가액은 3억2천8백57만원(액면가 기준)으로 당시와 비교하면 13억원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또, 1999년 국회의원 재산 신고 당시 정 전 대표가 매각한 현대전자 주식(6만5천7백14주)은 실제 매각한 주식(8만5백44주)보다 적게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현대전자의 1998년 사업 연도(51기) 사업보고서를 확인해본 결과, 정 전 대표는 당시 정씨 일가와 함께 현대전자의 증자에 참여해 1만4천8백30주를 추가로 사들였고, 따라서 총 8만5백44주를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 신고 때 1주당 실매각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0억6천9백만원으로, 재산 신고 매각가보다 3억7천여 만원 정도 더 많은 셈이다.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 당시 일부 언론 보도에서도 정 전 대표는 1998년 9~10월 현대전자 주식 8만주를 처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정 전 대표는 당시 현대전자 주식을 포함해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등 현대 계열사 주식을 전부 매도하고 매각 대금 일부에 상응하는 현대중공업 주식 20만6천3백30주를 사들였다. 일각에서는 현대전자 주가 조작 당시 현대중공업의 1천8백억원대 주식 매입을 전후로 당시 정 전 대표가 현대중공업 고문을 맡고 있었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이어 2대 주주(1999년 기준 8.06%)였다는 점을 들어 정 전 대표의 연루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몽준 전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2003년 이익치 전 회장과 참여연대 등이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자신과 회사 관계자 등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2005년 검찰은 공소권 없음이나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지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 전 대표측은 지난 3월 <시사저널>의 이 전 회장 인터뷰에 대한 반론을 통해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은 국민투자신탁 인수 등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실화된 현대증권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이 전 회장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다. 16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27일에도 이 전 회장은 ‘정 전 대표가 주가 조작에 개입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라며 이 전 회장 발언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했다.

■ 현대중공업 선거 동원 의혹

지난 5월5일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부인 김영명씨와 함께 울산정책포럼 개소식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정몽준 전 대표의 이미지는 ‘서민’적인 것과는 배치되는 재벌 2세의 모습이다. 그 자신이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위상을 다지고 대권 주자로까지 등극하는 데에는 현대중공업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5월 현대중공업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정 전 대표는 현대중공업의 주식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지만 공식적으로 현대중공업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그나마 맡고 있던 현대중공업 고문직도 현재는 그만둔 상태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오너나 재벌 2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정치인 정몽준’과 거리를 두기가 힘들다. 자산 2조원대(2012년 재산 신고 기준)로,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 때마다 각 언론에서 전체 의원들의 평균 재산을 말할 때 정 전 대표 재산은 아예 빼놓고 하는 것이 관례화되다시피 했다. 그만큼 그의 재산은 독보적이다.

현대중공업의 이미지 광고 지원 의혹과 자서전 사재기 논란 등도 계속 따라다니는 구설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4월11일 총선 당시 정 전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 을에 출마했던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은 정 전 대표와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공직선거법상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와 유사 기관 설치 금지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선거를 전후로 TV 방송에서 나온 현대중공업의 이미지 광고가 화근이었다. 결국 이 전 의원이 선거 후 고발을 취하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올해 40주년을 맞아 이어질 현대중공업의 TV 광고가 연말 대선에서도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정 전 대표가 발간한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사재기 논란도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전 대표측은, 현대중공업의 TV 광고 의혹에 대해서는 ‘회사 창립 40주년을 맞은 광고’라고, 자서전 사재기 논란은 ‘과장 보도’라고 해명했다.

정 전 대표는 지난해 범(汎)현대가(家)의 아산나눔재단 5천억원 출연에 맞춰 2천억원(국회의원 재산 신고 내역상은 1천8백억여 원 출연)을 출연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당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사재 출연과 비교해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전 대표는 “안원장과 비교해서 (일각에서) 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버지(정주영 전 명예회장)를 기리는 뜻있는 일을 하자는 의미에서 한 것이지 남이 알아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벌 2세라는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연평도에서 꽃게 따기 작업에 손수 나서거나 전국 민생 경청 투어를 떠나는 등 최대한 몸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노무현 지지 철회·대북 자세 

정몽준 전 대표의 과거 행적 가운데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 후보에 대한 갑작스런 지지 철회 발표는 지금도 정치적 멍에와 같은 굴레로 남아 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정치인으로서 대국민 약속을 파기하고 정치적 신의를 저버리는 오점으로 남았다. 유권자가 마치 꼬리표처럼 (정 전 대표를) 신뢰하기 어려운 정치인이라고 떠올리는 것은 10년이 지난 아직도 멍에처럼 자리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정 전 대표의 대북·안보 정책에 대한 시각을 불안정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지난 6월3일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남한의 핵무장화는 보수 지지층을 겨냥한 ‘표몰이용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 전 대표의 남한 핵무장화론은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정 전 대표는 자신의 대북·안보 분야 시각에 대해 ‘강경’이 아닌 ‘원칙’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역사적으로도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 폐기에 성공한 사례는 한 번도 없고, 미국과 소련도 핵 협상은 핵 감축 협상일 뿐이었다”라면서 “(정 전 대표의 주장은) 핵 무장으로 미국의 핵 위협을 제거해 ‘조선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북한의 궤변과 너무나 닮은꼴이다”라고 지적했다.

19대 국회의 최다선 의원을 자랑하는 정몽준 전 대표에 대한 의정 활동 평가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일단 18대 국회의원 활동만 놓고 보아도, ‘부실하다’라는 것이 의정 모니터 단체의 지적이다. 14년째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감시·검증하고 있는 법률소비자연맹 국회의정모니터단의 자료에 따르면, 정 전 대표는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본회의 출석률이 88.11%로 나타나 전체 평균인 90.78%를 밑돌았다. 정 전 대표의 상임위 출석률은 45.97%, 대정부 질문 참여율(재석률)은 7.462%, 의안 표결 투표율은 40.01%로 각각 나타났다. 세 항목의 전체 의원 평균은 각각 81.86%, 28.92%, 68.71%이다. 특히 2008년부터 2010년 국정감사에서는 불출석 횟수가 각각 3회, 6회, 5회로 참여가 저조했다.

법률소비자연맹 홍금애 기획실장은 “정 전 대표의 경우 17대 때 의정 활동과 관련해 우수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8대 들어서 의안 표결 투표율이 평균 68%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국감 불출석 역시 다른 의원들은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듦에도 정 전 대표는 횟수가 잦아 나쁜 평가를 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은?

지난 1999년 초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그룹이 연루된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이 터져 나왔다. 금융감독원이 같은 해 4월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등 2개 법인과 현대그룹 관계자 2명을 증권거래법 위반 (시세조정)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증권선물위원회의 검찰 고발 내용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각각 1천8백80여 억원과 2백5여 억원 등 총 2천100여 억원을 동원해, 1998년 5월26일부터 같은 해 11월12일까지 현대전자 주식(현대중공업의 경우 시중 거래량의 23.9%, 현대상선의 경우는 20.6%)을 매수하면서 고가 매수 주문 방식 등을 통해 주가를 상승시켰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 주가를 최저 1만4천8백원에서 최고 3만2천원까지 1백16.2%를, 현대상선은 최저 2만4천2백원에서 최고 2만9천9백원까지 23.5%를 올렸다. 당시 현대전자 주가 조작에 연루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등은 현대전자 주식 매입이 “주가 조작이 아닌 정상적인 투자이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현대그룹 계열사의 주가 조작에 대규모 자금이 쏟아지고 주가 조작 시기를 즈음해 정(鄭)씨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전자 주식이 대규모로 매각되면서 사건 배후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 그러나 금감원의 고발로 진행된 검찰의 수사 결과, 기존 피고발인(현대중공업·현대상선과 관계자)이 아닌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박 아무개 상무가 주가 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기소되었고, 결국 2003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지면서 현대증권 차원의 주가 조작 사안으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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