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민족 문화 ‘쓸어 담기’ 나선 중국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2.06.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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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길이 억지 연장 사업 벌이는 내막 / ‘중화민족’ 내세워 소수 민족의 유·무형 유산 삼킬 태세

한때 달에서도 보이는 인공 구조물로 유명했던 만리장성. 중국은 만리장성 확장 공정을 통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구현하고 있다. ⓒ 모종혁 제공

중국 허베이(河北) 성 친황다오(秦皇島) 시에서 동북으로 15㎞ 떨어진 해변에는 견고한 성문과 성벽이 버티고 서 있다. 중국에서 ‘천하제일관’이라고 불리는 산하이관(山海關)이다. 산하이관은 1381년 명나라 홍무제 때 세워진 군사 요새이다. 오랫동안 중국인에게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각인되어져왔다. 본래 명나라는 산하이관을 쌓아 여진족을 방비했다. 이름부터 만리장성 동쪽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관문이라는 의미로, 중원과 만주를 구분하는 기점이었다.

만리장성의 기원은 중국의 첫 통일 제국인 진나라 때이다. 진시황은 전국 시대부터 여러 제후국이 쌓은 성곽을 정비하고 연결해 북방 유목 민족인 흉노의 침입에 대비했다. 명나라가 만리장성을 중건한 이유도 같았다. 몽골 고원으로 쫓겨난 몽골족과 만주의 여진족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정부가 유네스코에 제출하며 정의한 만리장성은 산하이관에서 간쑤(甘肅) 성 자위관에 이르는 총 연장 2천7백㎞의 성곽이다. 중간에 갈라져나온 성벽을 포함해 5천3백㎞에 이르는 방대한 인공 구조물이다.

지금 만리장성은 끝없이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월5일 퉁밍캉(童明康) 중국 국가문물국 부국장은 베이징 인근 쥐융관(居庸關)에서 “중국 역대 장성의 총 길이가 2만1천1백96㎞에 달한다”라고 선포했다. 그는 2007년부터 국가문물국이 국가측량국과 함께 진한대부터 명대까지의 장성 자원을 조사한 결과, 15개 성·시에서 4만3천7백21곳의 관련 유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길이보다 무려 네 배나 늘어난 수치이다.

고구려 유적에 성문·성벽 신축해 역사 왜곡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만리장성 늘리기 사업을 벌여왔다. 2006년 중국 국무원은 ‘만리장성 보호조례’를 제정했다. 이를 통해 만리장성 보호 사업을 중국의 중요문화재 보호 사업 가운데 하나로 지정해 2014년까지 추진토록 했다. 2009년 4월, 그 첫 성과물이 나왔다. 국가문물국은 만리장성의 길이가 기존보다 2천5백여 ㎞ 더 긴 8천8백51.8㎞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압록강변인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의 후산(虎山) 성이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선언했다.

본래 후산에는 박작성(泊灼城)으로 추정되는 성곽이 있었다. 박작성은 당 태종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은 대표적인 고구려 성이다. 지방 정부도 후산 곳곳에 산재한 성벽과 우물 터 등에 고구려 유적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2004년 후산성을 증축하고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면서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삭제되었다. 2009년 9월, 국가문물국은 후산에 산하이관과 유사한 성문과 성벽을 신축하고 만리장성 동단이라는 기념 표지석까지 세웠다.

중국 재정부와 국가문물국의 지원을 받아 지린 성 정부가 벌인 사업은 더욱 광범위했다. 2007년부터 1백20개팀, 5백43명의 만리장성 자원조사단이 투입되었다. 2009년 조사단은 퉁화(通化) 현에서 진한대 만리장성 유적을 발굴했다. 퉁화 현은 인근 지안(集安)과 더불어 고구려의 발흥지이다. 2006년에는 고구려 초기로 추정되는 무덤 50여 기가 몰려 있는 고분군 두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지 고고학계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이 랴오닝 성 환런(桓仁) 현이 아닌 퉁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0년에는 창춘(長春)·옌볜(延邊) 등지에서 진한대와 동하(東夏) 시기 만리장성 유적이 발견되었다. 당시 옌볜 조선족자치주 정부는 “허룽(和龍)·룽징(龍井)·옌지(延吉)·투먼(圖們)·훈춘(琿春) 일대에서 1백14㎞의 장성 유적을 발견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조사단은 최종 보고회를 열어 총 1백22개 단락, 4백14㎞에 이르는 장성 유적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퉁 부국장의 발표는 각 지방 정부가 벌여왔던 조사 결과를 모두 취합한 것이다. 관련 사업비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억 위안(약 9백25억원)을 투입했다.

퉁 부국장의 발표에서 주목되는 점은 헤이룽장(黑龍江) 성과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에서 만리장성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두 지역에서는 장성 관련 유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고구려가 요동 지방에 쌓은 천리장성이 남아 있는 랴오닝이나 지린과 달리 헤이룽장에는 발해와 금나라가 세운 성곽밖에 없다. 신장에도 과거 서역 국가가 쌓은 성곽은 존재하나 장성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헤이룽장 성·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신장 자치구를 횡으로 이어 지금의 중국 국경선처럼 만들어버렸다.

지난 6월12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홍승현 숙명여대 강사는 “중국이 장성 선을 국경선처럼 인식하는 현실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1994년부터 중국 학계는 만리장성을 선이 아닌 수많은 점의 연결로 보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치 논리가 더해지면서 장성은 국경선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다. 만리장성의 확장 지역이 대부분 소수 민족 거주지라는 점도 주목된다. 여기에는 한족의 상징인 장성을 늘려서 만주의 조선족과 만주족, 네이멍구의 몽골인, 신장의 위구르인 등 소수 민족을 ‘중화민족’의 기치 아래 가두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 정부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은 오늘날 중국 내 모든 민족의 유형 유산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역사적 기원과 배경이 다른 민족의 전통문화도 중화민족 울타리 속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소수 민족 무형 문화유산 정책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2004년부터 전통문화의 보호와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법제화해왔다. 2006년 국무원은 각 성·시에서 신청한 지방 무형 문화유산을 심의해 첫 번째 국가 무형 문화유산 목록 5백18건을 발표했다. 2008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5백10건, 1백91건의 목록을 등재해, 총 1천2백19건을 지정했다.

55개 소수 민족의 전통문화 등록에 ‘심혈’

무엇보다 중국 내 55개 소수 민족의 전통문화 등록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족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국가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족 전통문화는 지난해 5월 등재된 △<아리랑> △가야금 예술 △판소리 △농악무 △널뛰기·그네타기(이상 1차) △장구춤 △학춤 △퉁소 음악 △삼노인(만담) △전통 혼례 △회갑 잔치 △전통 복식(이상 2차) 등 12건에 달한다. 옌볜 조선족자치주가 속한 지린 성과 인접 랴오닝 성 정부가 신청한 무형 문화유산이다.

중국 정부의 조치는 소멸 위기에 처한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옌볜 자치주는 조선족 인구의 급감으로 지난 수년간 자치주 해제 위기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952년 자치구로 출발했던 옌볜은 당시 전체 인구의 62%가 조선족이었다. 하지만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 떠나거나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이 늘어나면서 1996년부터 인구 수는 급속히 감소했다. 2009년 말 현재 조선족 인구 비율은 36.7%, 약 80만명에 불과해 자치주 설립 요건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조선족의 문화예술도 중국 전통문화로 편입

우루무치 국제 바자르의 한 전문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위구르 젊은이들의 무캄 무곡(위). 아래는 무캄을 연주하는 위구르 예술인들.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는 왼쪽부터 러와프, 두타르, 세타르, 다프, 아이젝이다. ⓒ 모종혁 제공
중국은 ‘모국인 남북한과의 문화적 동질성을 잘 간직했다’며 조선족의 문화예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모국인 남북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족이 유지해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는 남북한에 원형 그대로 살아 있다. 56개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의 현실을 고려해볼 때 자국 내에 다양한 소수 민족의 문화예술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여타 소수 민족과 달리 국권 상실 시기에 만주로 집단 이주한 조선족에게 획일적으로 적용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중국이 조선족의 문화예술을 자국의 전통문화로 내세워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시켜 대내외에 알리는 현실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구전 또는 무형 유산은 2001년 19개 유산을 시작으로 2011년 말 현재 84개국, 2백32건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지난해 줄타기, 택견, 한산 모시 짜기 등 14건을 등재시켰다. 중국은 그 두 배에 달하는 29건을 등록했다. 그중에는 조선족 농악무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리랑>을 등재시킬 의사까지 내비쳤다. 지난 5월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뉴스 사이트 ‘런민왕’은 무형 문화유산 관계자의 입을 빌어, “중국은 <아리랑>을 주변국과 공동으로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신청하기를 바란다”라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유네스코는 기원이 동일한 무형 문화유산의 공동 신청을 장려한다”라며 중국과 몽골이 공동 등재한 장조 민요를 예로 들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나라가 단독 신청한 <정선아리랑>을 견제하고 북한과 아리랑을 공동 신청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재한 인류 무형 문화유산 목록을 보면 의혹이 더욱 깊어진다. 동족 대가를 제외하면 조선족·몽골인·키르기즈인 등 모국이 존재하거나 분리 독립 성향이 강한 티베트인·위구르인 등의 소수 민족 무형 문화유산이다. 몽골은 중국의 강요로 장조 민요를 공동 등재하고 후미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키르키즈스탄의 영웅인 마나스와 그의 후손 8대에 걸친 이야기인 마나스 서사시를 먼저 등재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마나스 서사시는 키르기즈인의 역사와 문화,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와 같은 작품이다.

본래 지닌 전통문화의 혼과 정신을 거세한 채 형식과 기술만 발전시키는 정책에 휘둘리는 예술도 있다. 위구르인의 무캄이 대표적이다. 무캄은 우리의 판소리처럼 민중의 애환과 지배 계급 및 이민족에 대한 비판을 노래·음악·춤으로 표현하는 종합예술이다. 2009년 6월 신장 자치구 투르판과 카슈가르에서 만난 무캄 예술인들은 “위구르의 찬란한 역사를 노래하는 신화나 전설, 이슬람 교리나 알라를 찬양하는 노래는 정부의 간섭으로 공연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은, 과거나 현재 중국 땅에 존재했던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이라는 황당한 이론과 논리를 내세운다. 이를 통해 중국은 만리장성을 확장해 우리 민족의 역사 유적 현장을 빼앗을 수 있다. 자기네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등재해 전세계에 공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 이후를 내다본 장기적인 포석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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