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수술 거부 부른 포괄수가제가 뭐길래…
  • 석유선│헬스팀장 ()
  • 승인 2012.06.2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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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의료 질 저하” 경고…복지부, “의사·환자 모두 이득” 반박

오는 7월1일부터 모든 병·의원(종합병원 제외)에서 확대 시행되는 ‘포괄수가제’를 놓고 의료계와 정부 간 신경전이 대단하다. 의료계는 시행 첫날부터 1주일간 제왕절개와 맹장 등 응급 수술을 제외한 수술을 거부하겠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지만, 보건 당국은 “진료 거부는 명백한 불법이다”라며 시행 철회는 없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포괄수가제(包括酬價制·DRG; Diagnosis Related Group Payment System)는 각 질환에 대한 검사와 처치, 수술비를 비롯한 입원진료비 등을 정부가 미리 정해 그 한도 내에서 지불하는 제도로, 쉽게 말해 ‘진료비 정찰제’라고 보면 된다. 이것은 한 번 검사에 얼마, 한 번 수술에 얼마 하는 식으로 의사의 진료 행위별로 따로 돈을 내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반대 개념이다.

즉,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이런 방식이 하나의 진료 행위(수술)로 묶여서 지불되는 것이다. 7월1일부터 수정체(백내장), 편도, 탈장, 충수 절제, 항문, 자궁, 제왕절개 분만 등 일곱 개 질환에 적용되며, 종합병원을 제외한 전국 병·의원에서 모두 의무적으로 시행된다. 현재는 희망하는 병·의원에만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의원은 전체의 83.5%, 병원은 40.5%가 참여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포괄수가제는 사실 시행된 지 15년이 넘은 제도이다. 1997년 첫 시범 실시 이후 2002년부터 희망하는 의료기관이 선택적으로 시행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71.5%인 2천3백47개 기관이 이를 적용했고, 그동안 큰 문제가 없었던 만큼 이번에 일곱 개 질환에 대해 모든 병·의원으로 확대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진료비 한정하면 최선의 진료 못 할 수도”

포괄수가제를 의료계가 진료 거부까지 내세우며 반대하는 이유는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기자를 상대로 “취재비 50만원을 주고, 한 달 동안 취재를 하라고 하면 그 한도 내에서만 취재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의사들도 진료비가 한정되면, 의학적 판단에 따른 최선의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낮은 수가(의사들이 건강보험으로부터 받는 실제 비용)’에 대한 불만도 한몫한다. 포괄수가제 안에서 진료비가 한번 정해지면, 쉽게 다시 바꿀 수 없고 한도액을 넘기지 않으려면 치료 재료나 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실제 안과 병·의원의 99.9%(9백48개 중 9백42개)가 포괄수가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안과의사회가 오는 7월 전면 시행에 가장 먼저 반대를 나타낸 것도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내장 수술 수가가 당초보다 10% 인하된 것에 대한 불만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료계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포괄수가제 시행 후에도 초과 진료비에 대해 병원이 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열외군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반박한다. 만약 포괄수가제가 100만원으로 제한된 수술이지만 막상 치료하다 중증도가 심해 4백만원의 진료비가 산정되면, 100만원을 초과한 3백만원을 환자에게 모두 받지 못하는 대신 포괄수가제 100만원을 초과한 차액 2백만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한문덕 상임이사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포괄수가제 대상 7개 질환군 진료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행위별 수가제 병원과 포괄수가제 병원의 의료 질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료계의 우려와 달리 백내장 수술의 경우, 비급여(비보험)의 문을 열어놓았다”라고 말했다.

의료 민영화 전초전이다?

포괄수가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진 데는 이른바 ‘민영화 괴담’도 한몫하고 있다. 의료계는 현 정부 들어 영리병원 도입 등으로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포괄수가제 시행은 민간 보험사들의 배만 채울 것이라고 비판한다.

의료계는 포괄수가제로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평균 21% 줄어들면 그만큼 보험사의 부담 금액이 줄어들 것이라며, 보험업계가 현행 건강보험에서 적용되지 않는 부분을 보장하는 실손보험료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 포괄수가제를 부추기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포괄수가제가 확대되면 실손보험 가입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 만큼 포괄수가제를 부추길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보건복지부도 포괄수가제는 환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공보험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로,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고 못 박았다.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의 공방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동안 제도 시행에 중립적 입장을 보였던 환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상임대표는 “단 일주일이라도 진료 거부를 앞세운 의협의 논리는 정당화될 수 없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포괄수가제를 반대한다면서, 진료 거부를 앞세운 것은 자가당착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8개 단체는 6월21일 노환규 의협 회장 및 안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외과 개원의협의회장이 진료 거부를 조직적으로 공모했다며 이들을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노환규 | 대한의사협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
(노환규 회장, 이하 노) 2002년부터 시행했지만, 선택적이었다. 이제는 일곱 개 질환이지만, 모든 병·의원에 적용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선택권 자체를 없앤다는 것이다. 제도 시행 전에 의료의 질 하락 등의 폐해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박민수 과장, 이하 박) 지난 10년간 시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에 시행되는 일곱 개 질환군에 대한 포괄수가제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의료계는 이번에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감에서 진료 거부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와 국민의 신뢰까지 잃게 되었다. 

의료의 질 떨어질까? 과연 누구 말이 옳은가?

(노) 시장경제 논리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의료의 질이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획일화된 가격 안에서 최선의 진료는 힘들다. 포괄수가제에 제한된 가격을 넘기지 않으려면 질 낮은 치료 재료와 장비를 활용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피해는 국민의 건강권 상실로 귀결될 것이다. 정부가 초과된 금액을 보전한다는 ‘열외군 제도’도 믿을 수 없다.

(박) 시장경쟁 논리를 보자. 같은 값인데 질 낮은 서비스를 한다면 환자들은 더는 그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도 자연스럽게 자멸에 이르는 길을 택할 리가 없다. 병·의원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최선의 진료를 할 것이고, 그럼에도 수가가 문제라면 수가 조정 기전을 마련해 정부가 지원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 중이다. 한국만 유별난 의료 환경인가?

(노) 우리나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특히 우리나라 요양 기관의 93%가 민간 의료기관이다. 공공 의료가 거의 100%에 가까운 영국 등의 경우와 절대 비교는 힘들다. 또한 미국은 병원 관리비와 의사 비용이 분리되어 있고 포괄수가제는 병원 관리비에만 적용된다. 반면 우리는 의료비가 둘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큰데, 포괄수가제를 이렇게 전면 시행하는 것은 의료비 왜곡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 보험정책과 과장 ⓒ 시사저널 전영기
(박) 우리나라는 민간 의료 비중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포괄수가제가 더욱 필요하다. 그동안 행위별 수가제로 인해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 등으로 많은 환자가 의료비 부담을 키웠고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되었다. 건강보험 재정이 나빠지면 적정한 수가 보전도 힘들다. 낮은 수가로 인해 의사들은 행위를 추가하고, 건강보험 재정은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진료 거부’에 대한 비난이 크다. 어떻게 보나?

(노) 진료 거부가 아니라 한시적 진료 중지이다. 의약 분업은 진료의 한 부분인 약 조제에 국한된 문제였지만 포괄수가제에는 검사, 진료, 수술, 약제 처방 등 진료 행위 전부가 포함되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의사들이 진료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의료 전문가인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 말을 들을 것인가.

(박) 진료 거부는 재고의 가치가 없는 불법 행위이다. 엄단할 것이다. 진료권은 국가가 면허로 부여한 고유한 권한이다. 의협은 의료 전문가 말을 믿으라고 하는데, 의사는 임상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정책에서도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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