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미끼로 시민단체 길들이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6.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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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은 물론 ‘불법 시위 참여하지 않겠다’ 확인서도 강요…“이럴 바엔 차라리 반환하겠다”

지난해 6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과 시민단체 등이 참가해 열린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 집회’. ⓒ 시사저널 유장훈

한 시민단체(비영리 민간 단체)의 전 아무개 대표는 지난 5월1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실시된 행정안전부(행안부)의 2012년도 비영리 민간 단체 회계 교육에 다녀온 후 울분을 토했다. 전대표는 “정부가 보조금 몇 푼을 쥐어주면서 온갖 간섭을 다 한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보조금을 반환하고 말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대표는 지난 1999년 이 시민단체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에 맞춰 비영리 민간 단체로 등록했다. 재정이 열악한 여느 시민단체처럼 전대표도 정부 보조금이 절실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올해 보조금 총액을 약 1백50억원까지 늘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전대표가 대표로 있는 시민단체가 속하는 사업 유형도 신설되었다. 그러나 이 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현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과 크게 연관이 없다. 전대표는 “현 정부 들어 정부와 코드가 맞는 단체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단체 사업과 무관한 ‘학교 폭력 예방’ 사업을 끼워 넣었다”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보조금 지원 포기하는 단체도 속출

전대표는 이 덕분에 올해 처음으로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원했던 사업에는 보조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대표는 “행안부가 보조금 사용 내역에 대해 심할 정도로 간섭을 한다. 사업계획서에 학교 폭력 예방은 부차적인 사업이라고 분명히 명기했지만, 보조금의 대부분을 이 사업에 투입하게 되었다. 보조금을 받는 대신 정부의 꼭두각시가 된 느낌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애초부터 정부 보조금을 포기하는 단체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진보 성향 단체들은, 행안부가 보조금 지원 대상으로 설정한 사업 유형이 공익보다 정부 정책의 홍보에 맞춰져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보조금을 미끼로 시민단체를 길들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불법·폭력 시위에 참여한 단체에 보조금을 제한하는 것이다. 지난 2007년 기획재정부는 불법 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기로 했고, 행안부는 이에 발맞춰 2009년 보조금 선정 때 이를 처음으로 시행했다. 심지어 정부는 ‘불법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취지의 확인서를 시민단체에 강요하기도 했다. ‘한국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정부가) 촛불 시위를 전후해서 ‘불법 시위에 참여하거나 주도하지 않으며, 보조금을 불법 시위에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보조금을 줄 수 없다고도 했다. 불법 시위 단체로 규정하는 기준도 불명확한데, 이런 확인서를 쓰게 되면 칼자루를 정부에 넘겨주는 꼴이라 제출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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