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보수 성향 단체에 보조금 팍팍 밀어줬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6.2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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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비영리 민간 단체 지원법’에 의해 시민단체들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이 그동안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치우쳐서 지원되고 있다는 세간의 지적이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행정안전부에 정보 공개를 신청해 단독 입수한 자료를 통해, 현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급격히 늘어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참가한 단체 등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시민단체(비영리 민간 단체)는 우리 사회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2000년 ‘비영리 민간 단체 지원법’을 제정해, 한 해에 최소 3천만원에서 최대 1억원(행정안전부 2012년 기준)을 지원하고 있다. 이 법의 목적은 시민단체의 자발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건전한 민간 단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시민단체의 공익 활동 증진과 민주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 특히 후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성상, 정부 보조금은 시민단체 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보조금이 정권의 성향이나 입맛에 맞는 단체들에 치우쳐 지원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이런 지적이 과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행정안전부(행안부)에 정보 공개를 신청했다. 이를 통해 단독 입수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행안부의 ‘비영리 민간 단체 공익 사업 지원 대상 선정 내역’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노무현 정권 때는 진보 성향 시민단체에(아래 상자 기사 참조), 이명박 정권 때는 보수 성향 시민단체에 지원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국민 세금인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현 정부에서는 보조금을 받는 보수 성향 단체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보수 성향 단체로 분류한 기준은 △지난 1월, 보수 성향 단체가 연합해 출범한 ‘범시민사회단체연합’에 속해 있는 단체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단체 △친(親)정부·보수 성향 인사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 등이다. 정부 지원 대상인 이들 보수 성향 단체는 2008년 10개에서 2012년 73개로 무려 일곱 배 이상 늘어났다. 보수 성향 단체에 지급된 보조금 역시 2008년 4억7천2백만원에서 2012년 37억7천7백만원으로, 여덟 배 가까이 뛰었다.

보수 단체 지원 늘리기 배후 조종 있었다?

이들 중에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던 단체도 있다. 한국미래포럼, 희망코리아, 63동지회, 선진화운동중앙회, 뉴라이트안보연합, 한국미래포럼 등이 이에 속한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은 비영리 민간 단체(시민단체)의 요건으로 ‘특정 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에 대한 지지·지원이나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규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친정부·보수 성향 인사가 대표로 있는 단체도 눈에 띈다. 전국자전거길잇기국민연합의 이상원 대표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냈다.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은 조갑제씨와 더불어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혐의로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회의 박희도 회장은 12·12 쿠데타의 핵심 인물이다.

보수 성향 단체는 2009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 현 정부가 공익 활동 지원 사업 유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면서 보수·관변 단체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2009년 지원 사업 유형은 △100대 국정 과제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 통합과 선진화를 지향하는 신국민운동 △일자리 창출 및 4대강 살리기 △관계 법률에 의해 권장 또는 허용하는 사업 등이다. 즉,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정책을 공익 사업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 정부가 진보 성향 단체를 배척하고 보수 성향 단체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배후에서 조정한 의혹이 있다는 데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2009년 제도 개선 대장’의 2월24일자에는 ‘행정안전부에서 비영리 민간 단체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보수 단체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 강구’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것이 상징적이다.

반면 진보 성향 단체는 사실상 현 정부 내에서 보조금을 거의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경찰이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속한 1천8백여 개 단체를 ‘불법 폭력 시위 단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번 불법 폭력 시위 단체로 규정되면 3년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2010년이 되면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보수 성향 단체는 절정에 이른다. 전체 1백53개 단체(1백58개 사업) 중 보수 성향 단체는 64개 단체(66개 사업)에 이른다. 전체의 41%를 넘어선다. 나머지 80여 개 단체는 이념적 성향으로 구분하기 힘든 순수 시민단체들이라는 점에서, 진보 성향 단체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금액으로 따져보았을 때도 보수 성향 단체는 전체 49억원 중 43%에 달하는 21억3천6백만원을 지급받았다.

보수 성향 단체에 대한 ‘묻지 마’ 식 지원이 이루어진 정황도 포착되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0 회계 연도 결산 부처별 분석 -비영리 민간 단체 지원’ 보고서에서 ‘행안부가 2010년 동(同) 사업의 중간 평가 사업 추진과 회계 처리가 미흡하다고 평가된 단체에 대해서 2차 교부에서도 (보조금을) 당초 예정대로 교부했다’라고 지적했다. 행안부가 일부 보수 성향 단체에서 결격 사유가 발견되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행안부는 이들 단체의 2011년 예산을 증액해 편성하기도 했다.

2011년, 행안부의 전체 보조금은 전년에 비해 1백1% 증가한 98억7천만원에 이른다. 2012년에는 또다시 1백47억8천만까지 치솟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보조금이 세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행안부는 보조금을 늘린 것에 대해 “신청하는 단체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의 경우 심사 대상에 오른 단체는 3백88개로, 49억원이 책정되었던 2008년의 3백83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보수 성향 단체에 보조금을 주기 위해 꼼수를 부린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보조금을 통해 어용 단체가 양산될 수 있다”라며 18대 대선을 2년 앞둔 2005년, 보조금 예산을 절반으로 감축시켰었다.

 

일부는 정부 정책 홍보에 보조금 사용하기도

실제로 일부 단체가 민감한 시기에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데 보조금을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1년 8월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시 전, 보조금을 받은 11개 단체가 무상급식 반대 투표를 주도한 ‘복지 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에 속해 있었다.

2010년에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심녹색성장 4대강살리기 실천연합, 한국수중환경협회, 희망코리아, 한국구조연합회 등이 ‘4대강 살리기’ 명목으로 보조금을 받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일부분 편향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에 따라 지원 사업 유형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 때에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 단체들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에 있다. 따라서 지원 단체를 선정하는 데 좀 더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안부 스스로도 ‘2010년 국가 인권 정책 기본 계획 이행 결과’ 보고서를 통해 시민단체 지원 사업의 심사·선정·평가 과정에서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참여연대 시민감시2팀의 장정욱 팀장은 “복지나 평화 등 기본적인 가치와 관계된 사업은 정권이나 이념에 상관없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보조금을 받는 단체를 결정할 때 전년도 사업 평가를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원래 계획한 목적에 사업 내용이 부합하는지, 실무상 문제점이 없는지를 살펴 미달된 단체는 과감히 솎아낼 필요가 있다. 새롭게 선정된 단체는 단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 급조된 단체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 시민단체가 ‘찬밥’ 신세 

이번에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는 노무현 정부 5년(2003~07년) 동안의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현 정부와 비교해 보기 위해 공개를 요청했던 것들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보조금을 지원받은 보수 성향 시민단체(비영리 민간 단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예로 2007년에는 1백40개 단체(1백55개 사업) 중 대표적인 관변 단체로 손꼽히는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등 6개 단체 정도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었다. 이들 단체가 받은 보조금은 총 1억9천4백만원으로, 전체 4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에 그치고 있다. 6개 보수 성향 단체의 평균 보조금 3천2백만원은 전체 평균액 3천5백만원보다도 적다.

반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진보 성향 단체에 묻지 마 식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004년 말 한나라당은 “총선시민연대를 비롯한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에 편파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며 행안부의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 예산 100억원을 절반으로 축소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2005년 보조금을 받은 진보 성향 단체는 전체 1백58개 단체, 49억원 중 31개 단체, 10억4백만원이다. 이 중에는 총선시민연대에 소속된 환경운동연합, 녹색미래 등도 포함되어 있다.


 

행정안전부의 비영리 민간 단체(시민단체) 보조금은 ‘공익사업선정위원회’가 지원 대상과 금액을 결정한다. 15명으로 이루어진 공익사업선정위원은 국회와 시민단체가 추천한 사람 중에서 행안부장관이 위촉하고 있다. 이 가운데 12명은 시민단체의 몫이다. 지원 사업을 선정할 때 정부의 입김을 줄이고 객관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공익사업선정위원조차 친정부·보수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1년 국정감사에서 최규식 당시 민주당 의원은 “5기(2009년 4월~2011년 4월) 위원을 배출한 추천 단체의 상당수가 친정부·보수 성향 단체이다. 이러한 단체에서 추천받아 위촉된 위원들이 해당 단체와 가치관을 공유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 중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김진홍 상임의장과 한국장애인총연합회 임통일 회장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었다. 국제외교안보포럼의 김현욱 이사장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종교 조직 가톨릭뉴라이트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한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 김준목 회장은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자원봉사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는 “위원 위촉은 추천 인사의 경력과 전문성, 성별 구성 비율 등을 고려해 적격자를 선정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의혹은 공익사업선정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면 자연히 해소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행안부는 “로비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현 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임기가 지난 역대 위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19대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이 마무리되면 반드시 공익사업선정위원회를 조사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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