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향한 북한의 몸부림 피부로 깊이 느껴진다”
  • 중국 단둥·옌볜·김영윤│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 ()
  • 승인 2012.07.1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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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 지역에서 만난 다수의 교역 관련자가 증언 / 신압록강대교 건설 한창…완공되면 북·중 교역과 투자 크게 늘어날 듯

중국이 개발하기로 한 압록강 황금평 지역. 현재 본격적인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개발 계획이 무산된 것은 아니다. ⓒ 김영윤 제공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변화 조짐이 여기저기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 정책에서 개혁·개방의 분위기로 전환될 수 있을지가 주목되기도 했다. 실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 6개월의 집권 기간 동안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탁아소나 놀이공원, 아파트 공사 현장 등을 시찰하는가 하면,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식량·살림집·땔감 그리고 인민 소비품 문제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기 직전에 아들 김정은과 상의해 중국식 경제 개혁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전언도 들려온다. 실제 김정은은 이후 경제 재건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으며, 농업의 제한적인 탈집단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상당한 수준의 경제 개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 조선족들도 최근 개방에 대한 북한 관리들의 기대감을 전달하고 있다. 김정은이 어린 시절 유럽 유학 생활을 통해 서구 선진국의 발전된 자본주의 경제를 직접 목도하고 고민한 결과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이다.

황금평 개발 늦어지는 이유 따로 있어

필자는 이와 같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 경제 개혁·개방 움직임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사)남북물류포럼(회장 김영윤) 관계자들과 함께 지난 6월14일부터 19일까지 5박6일 동안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단둥(丹東)과 옌볜(延邊) 등을 직접 다녀왔다. 다롄(大連)에서 시작해서 단둥, 퉁화(通化)를 거쳐 옌지(延吉)까지 접경 지역을 따라 가는 길을 택했다. 지난해 6월 중국 혼춘(琿春)에서 ‘이제는 혼춘이다’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한 날은 북한이 중국과 나진·선봉 및 위화도·황금평 경제특구 개발을 위한 착공식을 치르는 시기와 겹쳤는데, 이번에 한국의 학계와 연구소, 법조계, 언론계 및 업계에 몸담고 있는 32명이 단둥을 찾아 학술회의를 연 날은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6월15일과 같은 날이었다. 

학술회의에서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나온 중국 동항개발구해운유한공사 총경리가 한 말이 생생하다. 그는 “최근 들어 변화를 향한 북한의 몸부림이 어느 정도인지 여기에 있는 우리는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 단둥 지역에서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가 2만명이 넘습니다. 정치 관계에 상관없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북·중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며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건 가운데 남한산 제품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그는 “지금은 음성적으로 중국 회사를 경유해 원부자재와 가전제품, 주방용품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5·24 조치(이명박 정부의 대북 제재 정책) 이전에는 남한 제품의 상표가 지워지지 않고 들어간다고도 했다. 오히려 지우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이제는 완전히 지워야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 이상을 소화해내는 지역이다. 남한 제품이 밀무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주 통로이기도 하다. 단둥에 있는 중국 사람들은 이미 1일 통행증을 발급받아 비자 없이 북한을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든지 원하는 때에 방문해 생산 지시를 내리고 생산된 제품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북한과 연계된 단둥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압록강대교 건설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 가교가 완전히 부설되고 교각이 세워지고 있는 거대한 건설 현장으로 변해 있다. ‘건설 중단’설과 ‘북·중 관계 이상’설까지 나왔지만, 필자가 직접 확인한 바로는 다소 더디지만 착실하게 건설되고 있었다. 다리가 완공될 즈음에 이루어질 북한과 중국과의 교역·투자가 어느 정도로 증대될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황금평·위화도 개발도 마찬가지다. 국내 언론에서는 ‘왜 아무런 진전도 없느냐’며 연일 의구심을 나타냈다. 중국이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빌미로 황금평 개발을 무산시켰다, 경제적 가치가 없어 그렇게 했다는 둥 해외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전하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학술회의 다음 날 우리 일행은 황금평을 둘러보았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중국이 황금평 개발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금평은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도 3분의 1 정도가 더 크다. 지난해 북한이 중국에 100년 동안 개발을 위탁한 땅이다. 중국은 앞으로 100년 동안 언제든지 개발·사용이 가능하다. 이제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이다. 압록강 하구의 섬은 홍수에 취약하다. 단둥을 둘러본 사람들이라면 단둥 시가 압록강 범람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알 수 있다. 홍수 때 물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수방벽이 쳐져 있다. 황금평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먼저 그런 시설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둥 지역 자체도 아직 개발할 곳이 많은데 중국이 구태여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황금평부터 서둘러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단둥 지역 개발이 포화 상태가 되면 그때 가서 황금평을 개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금 북한의 노동력을 단둥으로 불러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중국으로서는 답답할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남한은 안달이다. 중국이 나진·선봉에만 잔뜩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만 이야기한다. 현재 황금평은 평온하지만 물밑 작업도 벌어지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중국의 단독 투자가 아닌 외부에서의 투자도 겨냥하고 있는데, 타이완 기업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진·선봉의 미래 열쇠를 쥔 ‘4T’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평양 창전거리에 새로 건설된 살림집을 시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옌지(延吉)에서는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을 활발히 오가며 북한 나진·선봉에서 대북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관계자로부터 그동안 많이 들어왔던 ‘원정-나진 간 도로’(중국의 나진 진출의 주 통로)의 보수(2차선 아스팔트 포장)가 7월 말쯤 완료되며, 그 이후 나진을 통해 동해로 나갈 중국 물동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필자에게 뜻밖의 이야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나진·선봉의 개방을 강하게 채근한 적이 있으며, 개방이 늦어지는 것이 현지에 있는 군대 때문이라면 ‘군 부대를 완전히 이동시키라’는 지시까지 내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장마당(시장)을 가면 깜짝 놀랄 정도로 없는 것이 없는데, 그 대부분이 중국산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소고기만은 장마당에서 팔지 않는다”라고 한다. 농사일에 사용하는 소를 절대로 허가 없이 잡을 수 없다는 당의 지침 때문이다. 그는 “북한의 시장화가 실제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라고도 했다. 장마당에서 ‘좋은 물건을 달라’고 하면 내놓는 것이 예외 없이 남한 물건이며, ‘숨겨놓고 팔고 있다’고 한다.

단둥에서도 확인된 이야기이지만 좋은 물건은 남한의 물건이라는 인식이 북한 내부에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대다수 주민은 여전히 기아 선상에서 헤매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기아율이 낮다고 하는 나진·선봉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 호텔 뒤 쓰레기터에 앉아 무엇인가 파먹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진·선봉 지역 어린이들은 많은 수가 간·췌장 관련 질병을 앓고 있으며, 주민의 3분의 1이 결핵 양성 반응을 보이고 있어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라고도 했다.

옌볜 시 정부 상무국 처장으로부터 북한과 인접한 중국 동북 3성, 그중에서도 지린 성(吉林省)의 ‘창·지·투(창춘-지란-투먼)’ 개발이 중국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중국은 창·지·투를 4대 경제특구로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동북 지역의 자원을 북한을 경유해 중국 남방으로 운송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했다. 현룔운 옌볜 국제R&D센터 회장은 나진·선봉의 미래를 ‘4T’로 설명하기도 했다. 교역(Trade), 관광(Tourism), 물류(Transfer), 통신(Telecommunication)에 가능성을 두고 북한의 변화를 점쳤다. 또 현재는 인프라가 미비하지만, 올해 말쯤이면 나진·선봉 지역 전기 사정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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