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선봉에 서고 문학·스포츠도 ‘활활’
  • 이춘삼│편집위원 ()
  • 승인 2012.09.18 09: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희대학교②

경희대학교 ⓒ 시사저널 박은숙
경희대는 한의대 덕에 가장 확실한 명성을 얻었다. 1970년대 말 경희대는 몇몇 과의 입시 성적이 전통 있는 명문 사립대를 앞지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의대는 특히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인기 학과로 급부상했다.

1965년 3월 한의학과가 있는 동양의과대학을 인수한 경희대는 의과대학 인가를 받았고, 1966년 40명 정원의 한의학과 신입생을 처음 선발했다. 의대부속병원, 치대부속병원, 한의대부속병원을 종합적으로 갖춘 경희의료원이 1971년 10월5일 개원함으로써 동서 의학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대학으로서 확고히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한의학과는 1973년 12월15일 국내 최초로 한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74년 한의학 박사 과정이 대학원에 설치되었다. 경희대 한의대 출신들은 국내 한의학계의 큰 물줄기를 이루고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변정환 전 대구한의대 총장(한의)은 요즘은 일반화되었지만 당대에는 없던 한방종합병원을 만들었고, 한의대를 설립해 총장을 지냈다. 그의 집안은 3대째 한의학을 다뤄오고 있다.

쟁쟁한 문인들 가득한 ‘경희 문단’의 힘

30여 년 전만 해도 한(韓)의학은 한(漢)의학이었다. 그는 1980년 <한의의 맥박>을 통해 이를 뒤집었고, 이것이 1986년 의료법 개정 때 반영되었다. 지금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신동의보감> 집필이다.

21, 22대 경희대 총동문회장을 지낸 박상동 동서한방병원장(한의 58)은 1992년 총동문회 ‘경희인상’을 비롯해 2002년에는 모교의 ‘대학장(大學章; 대학에서 주는 최고 훈장)’을 받았다.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총동문회 사무총장 6년,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4년, 총동문회장 4년을 역임한 그의 모교에 대한 사랑과 봉사는 남다르다. 창덕궁의 돈화문이 바라다보이는 서울 종로구 권농동의 동문회관을 건립하는 데는 그의 숨은 공이 컸다.

손만 닿아도 환자의 병이 낫는 ‘골드 핑거’. 이란 왕실에서 18년간 주치의를 지냈던 이영림 영림한방병원 원장(한의 68)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졸업 후 1976년 당시 서울 을지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이원장은 이란 국왕의 책 <백색혁명>을 번역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란을 방문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두통으로 고생하던 보사부 차관을 우연한 계기로 치료해주었다.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한의 66)은 40년간의 오랜 임상 연구 끝에 ‘편강탕’을 개발해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탠튼 대학과 손잡고 한의과대학 부속 편강한방병원을 설립하는 등 우리나라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경희대 의대와 치의대 역시 후발 주자에 속하는 편이다. 1972년은 경희대 의대생들이 첫 국가고시를 치르는 해였다. 첫 단추를 잘 끼우자는 일념으로 학생과 교수들은 시험 전 일주일 동안 합숙하면서 마무리 점검을 했다. 결과는 40명 전원 100% 합격. 신설 학과의 한계를 뛰어넘는 쾌거였다. 의학과, 치의학과, 한의학과, 약학과, 간호학과를 망라한 경희대 의약학 분야 졸업생들은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국문과를 중심으로 ‘경희 문단’은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소설가로 전상국·조해일·조세희·고원정 씨 등이 필명을 날리고 있다. 이들은 1957년부터 1980년까지 재직한 고 황순원 교수로부터 정확하고 정갈한 문장 수업을 받았다. 김광섭·주요섭·윤영춘·박이도·서정범 교수도 강단에서 이들을 지도했다.

시인으로는 정호승·류시화 씨가 있고, 드라마 작가로는 <조선왕조 오백년> <한명회> 등을 집필한 신봉승씨, <전원일기>의 김정숙씨, <아들과 딸>의 박진숙씨가 있다.

조세희 작가(국문 63)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그는 1999년 모교 교육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2000년 3월까지 ‘문학과 지성사’에서 통산 4판 1백34쇄까지 발행되었으며, 2000년 7월 ‘이성과 힘’으로 판권을 넘겨 66쇄를 추가로 발행했고 2005년 2백쇄를 기록하기까지 9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한수산 작가(영문)는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77년 물질 만능의 세태와 뿌리 뽑힌 삶의 모습을 그린 〈부초〉로 제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197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81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중 내용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과 군사 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았다는 혐의로 ‘한수산 필화 사건’에 휘말렸다.

신봉승 작가(국문 57)는 방송 사극의 개척자이다. 1933년 강릉에서 태어나고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6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던 그는 1962년 시나리오 <사랑은 주는 것>이 영화화된 것을 계기로 해마다 대여섯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TV 시대 개막과 함께 방송 드라마에도 진출했다. 그는 말 그대로 한국 방송 드라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테너 가수 엄정행씨(음악 61)는 데뷔한 이래 1백85회의 독창회, 1천회가 넘는 음악회를 열었고 30여 종의 음반을 냈다. 1976년부터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경희대는 체육계에서 알아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 사관학교’ ‘아마 체육의 산실’이 그것이다. 1949년 경희대가 문을 열 때 국내 처음으로 체육학과를 개설한 이래 수많은 체육 인재를 배출해왔다.

체육대학원 역시 엄삼탁 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사망), 유남규 전 남자 탁구 대표팀 코치, 현정화 여자 탁구 대표팀 코치(이상 박사 과정),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최고경영자 과정) 등 체육계 저명 인사들의 지원이 쇄도해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현재 체육계에서 활동 중인 ‘경희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경제 66)와 신박제 대한하키협회 회장(전자 70)이다.

조총재는 10, 11대 경희대 총장을 지냈고 1992년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후 국제태권도아카데미 원장,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거쳐 WTF 사상 첫 경선을 통해 김운용 전 총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조총재는 2009년 10월1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해 4년 더 국제 태권도계를 이끌게 되었다. 신회장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단장직을 맡아 한국의 종합 성적 9위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2000 시드니올림픽 체조 은메달리스트 여홍철씨(체육 90)는 모교 교수로 활약하고 있고, ‘탁구 여왕’ 현정화 국가대표팀 코치는 체육대학원 출신이다.

하일성 KBS 야구 해설위원(체육 67)이 2010년부터 경희대 체육대 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1979년 동양방송(TBC) 야구 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한 하동문은, 구수한 입담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야구 해설자로 자리 잡았고 활발한 방송 활동도 병행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6년 동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문을 든든히 지키고 2010년 대표팀을 은퇴한 ‘거미손’ 이운재 선수(체육 92)가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고 있다. 

양진석 세계태권도연맹(WTF) 사무총장(체육 60)은 태권도 공인 7단으로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으며, 미 공군사관학교 태권도부를 창설해 미국 내 태권도 보급에 힘써왔다.

법대 동문들, ‘양진후원회’ 만들어 후배 지원

경희대 출신 법조인 모임인 경희법조인회가 지난 연초에 강희원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75)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 자리에는 제53회 사법시험 합격자 18명이 함께했다. 경희대 법대 선배들이 후배들의 사법시험 합격을 후원하기 위해 양진후원회를 만들었다. 1993년에 출범한 양진후원회가 모교에 전달한 후원금은 합계 8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회원의 규모도 초창기 40명에서 현재 6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재임 중인 허영 동문(법학 55)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헌법학자이다. 1959년 법학과에 특대생으로 입학해 학업을 마쳤고, 1971년 독일 뮌헨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본 대학·바이로이트 대학 교수를 지내고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연세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법과대학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김주형 법무법인 두레 대표변호사(법학 68)가 지난해 7월 현곡장학재단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현곡장학재단은 법대 동문회장을 지낸 총동문회 윤종근 고문이 모교 법과대학 재학생을 위해 지난 1995년 3억원의 사재를 기부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김동문은 1971년 3학년 재학 중 전국 최연소자로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학교 명예를 드높였다.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법학 64)이 지난해 9월 학교법인 덕성학원 11대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김이사장은 경희대 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부총장을 거쳐 제12대 총장을 지냈다. 평화통일국민포럼 이사장, 제9대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제12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대한민국 ROTC 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조인원 현 경희대 총장(정외 73)은, 1977년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8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제13대 경희대 총장에 선임된 후 14대 총장으로 연임되었으며, 2009년부터는 경희사이버대 총장도 겸하고 있다.

조류학자로 원병오 교수(생물 57)가 ‘새 박사’로 유명하다. 국내 조류학계를 이끄는 학자의 대다수가 그의 제자들이다.

우리나라 우주 로켓 개발의 산증인인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채연석 박사(물리)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71년부터 조선 시대 병기였던 신기전 연구를 시작해 4년 후인 1975년 국내 역사학회에서 신기전이 로켓임을 처음 발표했다.

연예계에서는 통기타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가수 윤형주(의학 67)·김세환(신방 68) 씨가 대표적인 동문이다. 그 밖에 탤런트 김세윤·박용식·김창숙·김청·장서희·정준호 씨와 가수 김태우·손담비·옥주현·정지훈(비) 씨 등이 있다.

 

 

[시사저널 주요 기사]

▶ 문재인 앞에 놓인 세 장의 카드

▶ 안철수 지지 모임, 너무 많아서 탈?

▶ ‘동해’ 홍보 책자에 ‘독도’가 없다니!

▶ 김기덕 감독,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방식으로 전했을 뿐”

▶ 한국 항구에 쌓이는 일본산 석탄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