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모텔 방에 무슨 일 있었길래…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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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풀리지 않은 ‘수원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미스터리

수원 여대생 사망 사건의 현장이었던 모텔의 CCTV 복사 사진. ⓒ 경기 경찰청 제공
미용학원 수강료를 벌겠다며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20대 여대생이 뇌사 상태로 발견돼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른바 ‘수원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이다. 사건이 발생 20여 일이 지났지만 사망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아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피해자인 여대생 ㅈ씨(21)의 사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감정 결과, ㅈ씨의 혈액과 소변, 구토액 등에서 약물 투여 흔적 등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을 수사한 수원남부경찰서는 지난 9월12일 술에 취한 ㅈ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업체의 직원인 고 아무개씨(27)와 고씨의 후배 신 아무개씨(23)에 대해 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수준강간죄일 뿐, 여대생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국과수, ‘사인 불명’ 결과 내놓아 의혹 더 커져

수원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에서 가장 큰 의문은 피해자 ㅈ씨의 정확한 사인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경찰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여왔다. 대표적으로 변사 사건에서 흔히 제기되는 뇌사 가능성은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다. 그 밖에도 약물 중독, 과음으로 인한 쇼크사, 성폭행 과정에서 발생한 돌연사 등이다. 하지만 국과수는 지난 9월7일 부검 결과 소견(육안 검시)에서 “(ㅈ씨의 신체에서) 물리적 충격 등 징후가 없고 질식 등 호흡기 계통에 이상이 없다”라며 ‘사인 불명’이라고 밝혔다. 외부 충격에 의했거나 목 졸림 등의 의도적인 살인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나온 셈이다.

당초 경찰은 약물 투여로 인한 뇌사 가능성에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9월11일 ㅈ씨의 소변·혈액·구토액 등을 대상으로 한 국과수 감정 결과에서도 특이 약물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가능성도 작아졌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속칭 ‘물뽕’(GHB·최음제 일종) 등 감정이 어려운 제3의 약물이 투여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도 국과수의 최종 부검 결과에서 약물이 추가 발견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과수 관계자는 “이미 경찰에서 요구한 (약·독물) 성분을 모두 분석해 결과를 보냈다”라고 말해 추가적인 약물 발견 가능성은 낮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현재 가장 유력하게 추정할 수 있는 피해자 ㅈ씨의 사인은 과도한 음주로 인한 쇼크사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많은 의문이 따른다. 경찰에 따르면, ㅈ씨와 고씨 신씨 등 세 명은 사건이 발생한 지난 8월28일 새벽 2시18분부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ㅇ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오른쪽 사건 일지 참조). 이후 약 2시간10분 남짓 동안 일행은 소주 여섯 병과 생맥주 2천㏄를 나눠 마셨다. 피의자들은 당시 ㅈ씨가 마신 음주량을 ‘소주 한 병 정도와 소폭(소주와 맥주 혼합주) 한 잔이 채 안 되는 양’이라고 진술했다. 반면 고씨와 신씨 자신들은 각각 소주 두 병가량을 마셨고, 맥주를 나눠 마셨다고 진술했다.

피의자들의 진술만으로 보면, ㅈ씨의 사건 당일 음주량은 평소 그의 음주량 수준을 고려해볼 때 과다한 양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평소 ㅈ씨와 술자리가 잦았던 그의 지인·동료들은 ㅈ씨의 음주량에 대해 “몸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평소 음주량이 소주 한 병 정도였다”라고 경찰 조사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의들 역시 “평소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셔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마셨다고 해서 갑자기 과음으로 쇼크사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 ㅈ씨가 피의자들이 진술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술을 먹었거나 피의자들이 집중적으로 ㅈ씨에게만 폭음하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이날 일명 ‘지명 게임’을 하면서 술을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지명 게임은 소주병 뚜껑을 거꾸로 돌려서 특정 부분이 가리키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임이기 때문에 자주 걸리는 사람이 폭음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9월12일 기자와 만난 ㅎ모텔 종업원은 “당시 신씨에게서는 술 냄새가 조금 났지만, 고씨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한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실제 “모텔 내부 CCTV 영상만 보더라도 당시 ㅈ씨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수원남부서 남철우 형사과장)라는 설명처럼 ㅈ씨는 실제 피의자의 진술보다 훨씬 더 많은 음주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CCTV 영상을 통해 보면, 신씨와 고씨는 이날 새벽 ㅈ씨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로 한 방에 투숙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씨는 새벽 4시 반경부터 5시 반경까지 방에 있었고, 이 사이 밖에 있었던 고씨는 신씨가 ㅎ모텔 객실을 빠져나온 뒤인 오전 6시16분부터 7시3분까지 ㅎ모텔을 다시 찾아 피해자 ㅈ씨와 한 방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과음으로 인사불성이 된 ㅈ씨가 신체 건장한 두 남성에게 연이어 성폭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충격으로 인한 뇌사에 빠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신씨에 이어 방에 들어간 고씨는 아침 7시경 모텔을 빠져나오면서 종업원에게 “아침에 여자(ㅈ씨)가 모텔을 나가면 전화를 해달라”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업원에게 굳이 이런 부탁을 한 부분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피의자 혐의 부인 …법정 공방 치열해질 듯

현재 경찰은 국과수의 최종 부검 결과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남철우 형사과장은 “섣불리 ‘사인 불명’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늦어도 9월26일 전까지 국과수의 최종 부검 결과가 나오면 어떤 이유에서 ㅈ씨가 사망했는지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과수의 최종 부검 결과에서 ㅈ씨의 사인이 끝내 밝혀지지 않으면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여지도 적지 않다. 경찰은 피의자 고씨와 신씨가 범행 과정에서 공모해 항거 불능 상태로 만취한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적용하고 있지만, 고씨는 강제적인 성폭행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신씨 역시 최초 경찰 조사에서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라고 진술했다가, 정액 등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자 아예 성관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또 사건 당일 피해자 ㅈ씨를 마지막으로 본 ㅎ모텔 종업원은 기자에게 “당시 ㅈ씨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인 채로 부축되어 왔지만, ‘내가 (특정 음식·숙박업소의 요금을 할인해주는 인터넷 사이트인) ○○○의 회원’이라며 횡설수설을 하기도 했다”라고 밝혀 새로운 궁금증을 낳고 있다. 그날 새벽 모텔 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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