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정신’으로 고객의 마음 잡다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2.10.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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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여성 갑부’ 1위 선정된 ‘포에버21’ 공동 창업자 장진숙씨의 성공 노하우

일러스트 정찬동 ⓒ 시사저널 박은숙
아메리칸 드림, 이민자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한국인이 있다. 미국의 젊은 여성들과 어머니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의류업체 포에버21(Forever 21)의 창업자 장진숙씨이다. 그녀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이 지난해 뽑은 ‘파워 여성 100인’에 선정된 데 이어 최근에는 ‘자수성가한 최고의 여성 갑부’로도 뽑혔다. 장씨는 누구일까. 

그의 자산은 무려 45억 달러나 된다. 오프라 윈프리보다 더 부자이다. 장진숙씨 다음으로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여성 갑부들 중에는 의료기기 업체 ‘쿡’ 그룹을 설립한 게일 쿡 여사(78)가 37억 달러로 2위로 꼽혔다.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의 자산은 27억 달러,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를 이끌었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도 도전했던 멕 휘트먼이 17억 달러로 뒤를 잇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의 80~90%는 장진숙이 누구인지 모른다. 반면 그가 창업한 포에버21에 대해서는 80~90%가 잘 알고 있다.

포에버21, 대형 쇼핑몰마다 정중앙 차지

2010년 4월29일 포에버21 일본 도쿄점 개점식에 참석한 장진숙씨(맨 왼쪽). ⓒ AP 연합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근교인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카운티는 부자 동네이고 학군 좋기로 소문나 있다. 맥클린 부근 타이슨스 코너 쇼핑몰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페어옥스 몰에 가보면 한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포에버21 매장이 두 개층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서 가구점이 문을 닫은 자리에 포에버21이 매장을 두 배로 늘려 차지한 것이다. 한국에서 워싱턴에 오면 반드시 들른다는 포토맥 밀 아울렛 몰에도 포에버21의 넓은 매장이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은 중학생까지는 에버크롬비를 선호하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포에버21로 갈아탄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포에버21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패스트 패션은 제조업자가 제조, 유통, 판매를 한꺼번에 맡아 중저가 상품들을 2~3주에 한 번씩 빠르게 공급하는 형태이다. 포에버21은 2011년 현재 4백80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직원 3만4천명에, 한 해 매출이 3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진숙씨는 올해 49세로 남편인 장도원 회장(57)과 함께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창업했다. 장진숙씨의 결혼 전 성은 김씨이다. 남편이자 사업 파트너인 장도원 회장의 성을 따서 장진숙씨가 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김진숙씨는 원래 미용사였고, 장도원씨와는 그가 커피와 주스 배달을 하던 노동자 시절에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 미국으로 이민 온 장도원·김진숙 부부는 가진 돈도 없고 사업 기반도 없어 이민 초기에는 청소와 미용사 보조 등 궂은일부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부부는 빠른 시일 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기에 악착같이 일해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의류업체 사장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고 의류업에 뛰어들었다. 1984년 4월 억척같이 모은 돈으로 LA 한인타운 하이랜드파크에 있는 9백 평방피트(84㎡) 규모의 작은 매장을 렌트했다. 가게 이름은 ‘Fashion21’이라고 지었다. 남편은 원단을 구해오고 아내는 재봉틀로 셔츠를 만들었다. 이들 부부는 유행 바람을 타는 의류업계 속성을 읽고 한 발짝 빨리 뛰어 유행을 선도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판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자 금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부부는 6개월마다 새 매장을 연다는 무모하리 만큼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창업 첫해에 3만5천 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은 이듬해 70만 달러로 급성장했다. 2001년 연매출 3억 달러를 돌파했고, 현재는 5백여 개 매장에서 연매출 30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초대형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 매장당 평균 크기는 9천 평방피트(8백40㎡)로 개업 초에 비해 10배로 커졌다. 2010년 1월에는 평균 규모보다 10배나 되는 8만5천 평방피트짜리 2층 건물에 포에버21의 깃발이 걸린 초대형 매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신속성 + 유행을 한 곳에 + 중저가 전략

포에버21의 성공 신화에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유행의 흐름과 소비자들의 바람을 누구보다 빨리 간파하고 한 발짝 앞서 뛰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옷을 만들어냈다. 억만장자·여성 갑부의 주인공 장진숙씨는 미용사 출신이면서도 의류 디자인에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소비자들이 어떤 흐름을 타면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재빨리 포착해내 즉각 신상품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앞서 유행을 이끌어가는 결과를 일구어냈다. 유행을 선도하며 물건을 팔다가 인기가 시들어질 조짐을 보이면 또 다른 유행을 창조해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하나, 포에버21의 성공 신화에는 모든 유행을 한 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마케팅 전략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포에버21 매장에 들어가 보면 최신 유행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의류들이 한 곳에 진열되어 있다.

에버크롬비와 같은 미국 제품들은 다양성에서 뒤떨어져 고등학생만 되더라도 방문을 꺼리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의 고교생들은 같은 상표, 같은 모양의 옷을 다른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숙녀가 되면서 다양성이 부족한 에버크롬비에서 종류가 다채로운 포에버21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포에버21은 대부분 중저가 제품이어서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부담 없이 찾게 만들고 있다. 포에버21이 판매하고 있는 의류들은 대체로 10~20달러대이기 때문에 학생들이나 그 부모들도 부담 없이 구입하고 있다.

무일푼에서 억만장자가 된 장진숙씨는 그러나 베일 속 인물로 불리고 있다. 미국 사회는 물론 미주 한인사회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남편 장도원 회장은 페이스북도 하고 비즈니스 업계의 모    딸 린다(29)와 에스더(24)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장진숙씨는 ‘파워 있는 여성 100인’에 이어 ‘자수성가한 여성 갑부 1위’에 선정되었음에도 인터뷰한 적은 없다. 그의 가족사진을 보더라도 남편 장도원 회장과 두 딸의 모습만 눈에 띌 뿐 장진숙씨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장진숙씨는 남편과 두 딸이 가는 새 매장 개장식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최근 장도원-장진숙 부부의 파경설까지 나돌기도 했다. 그래도 장진숙씨는 침묵을 지킨 채 독실한 크리스천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경설을 일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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