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체 투자가 효자 노릇 하고 있다”
  • 이철현 기자·정리│윤고현 인턴기자 ()
  • 승인 2012.10.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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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시사저널 임준선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세계 금융 시장에서 ‘스터프(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HSBC를 방문하면 더글라스 플린트 HSBC 회장이 1층 현관 앞까지 마중 나온다. 골드만삭스 본사를 방문하면 태극기가 게양된다. 투자 고객이 골드만삭스 본사를 방문한다고 해당 국가 국기를 게양한 것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전이사장은 전 세계 유명 연·기금 최고경영자들과 세계 경제나 투자 환경에 대해 수시로 논의한다. 세계 4위 연·기금의 최고경영자에 걸맞은 위상이다. 지난 9월17일 창립 25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이제 자산 3백80조원을 보유한 세계 4대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올해 말 임기를 마치는 전이사장은 지난 3년 재임 기간 국민연금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맞서 싸웠다. 기금 운용 실적도 탁월했다.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 거둔 성과치고는 훌륭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아직 연임 여부는 불확실하다. <시사저널>은 지난 9월25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실에서 전광우 이사장을 만났다.    

올해 말에 임기가 끝난다. 내년에 연임할 뜻이 있는가?

(연임)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공직을 수행하면서 임기를 큰 과오 없이 마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본인, 국가, 조직을 위해서 잘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국민공단 역사상 임기를 무난하게 채우고 마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무난하게 치른 정도가 아니다. 운용 실적이 아주 좋다.

좋게 봐줘서 고맙다. 국민연금에 대해 그동안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으나 재임 기간 중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국민적 신뢰를 회복한 것이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가입자가 많아지고 기금 규모나 운영 실적이 몇 년 사이 부쩍 커졌다. 올해 운용 실적도 6% 수익률을 냈다.

미국 경기 재침체(더블딥), 중국 경착륙, 유로존 재정 위기 탓에 투자 환경이 녹록지 않다. 내년 투자 환경은 어떻게 보나?

상당히 어렵다. 거시경제적 불확실성과 금융 시장 변동성이 워낙 커서 투자 환경이 만만치 않다. 연·기금은 구조적 특성상 안정성을 최우선하다 보니 기금 상당액을 채권에 투자한다. 그동안 줄인다고 했으나 아직도 자산 3백80조원 중 3분의 2가량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은 초저금리 시대이다. 채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얼마나 되겠나? 나머지 투자 영역에서 연평균 수익률 5~6%는 올려야 장기적으로 수익이 맞다. 수익률이 좋은 해도 있고 안 좋은 해도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워낙 채권 금리가 낮아 자금 운용이 어렵다. 연·기금이나 국부 펀드는 상당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좋은 투자 대상에는 투자자들끼리 경쟁이 심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취임 이후 집중적으로 확대한 해외 대체 투자 부문의 성과가 상당히 좋다는 점이다.

대체 투자 비중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체 투자 실적에 상당히 기여했나 보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해외 대체 투자(주식·채권 투자 외 투자) 금액은 전체 자산의 4%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3~4년 사이에 투자한 것이다. 2008년 말 국민연금이 해외 대체 투자 상품에 집어넣은 금액이 1조원 남짓이었으나 지난해 말에 11조원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수익률이 12%가 넘는다. 국민연금이 대체 투자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려졌다. 국제 시장에서 우리가 좋은 투자처를 정하면 투자자 경쟁도 심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히 가격이 높아지고 기대수익률이 낮아진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유로존 재정 위기로 인해 좋은 매물이 추가로 나올 소지가 있다.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재정 위기가 장기화할 소지가 있어 서두르지는 않는다.

싱가포르 국부 펀드 테마섹이 스탠더드차타드를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형 금융기관을 매입할 뜻이 없나?

올해 초 테마섹 최고경영자 호 칭(리콴유 전 총리의 며느리이자 현 싱가포르 총리의 부인)을 만났다. 금융 부문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하더라. 대충 감은 잡았다. 테마섹은 이미 스탠더드차타드의 1대 주주가 아닌가. 혹시 내가 거기에 관심 있냐고 묻는 것이라면 즉답은 어렵다.(웃음)

스탠더드차타드가 아니더라도 메릴린치나 골드만삭스 같은 곳도 있지 않은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현 시점에서는 당분간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 부문의 투자 전망이 만만치 않다. 일단 실물 경제 환경이 좋지 않으니 부실 자산이 늘어날 소지가 크다. 게다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세계 조류는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많이 간다. 또 자기 자본을 강화하기 위해 돈을 묶어두어야 하다 보니 자본 효율성은 떨어지고 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는 은행주 같은 곳의 단기적 성장 전망은 별로이다. 장기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 

해외 투자나 위탁 투자 비중이 커질수록 세계 금융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위상이 더 올라갈 듯하다. 앞으로 해외 유명 투자은행과 어떤 식으로 협업할 계획인가?

국제 시장에서 비중과 위상이 커지고 높아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슈퍼 갑’ 소리가 나올 때마다 굉장한 부담과 책임 의식을 느낀다. 간부들과 대화할 때 종종 ‘갑이 실력이 없으면 밥이 된다’고 말한다. 대충해도 괜찮은 상대가 되면 상대로부터 제대로 된 서비스도 못 받을 것이고 그들이 좋은 투자처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실력과 투자 판단력이 만만치 않다는 인식을 줄 수 있도록 스스로 내공을 쌓아나가야 한다. 일전에 세계적인 사모 펀드인 콜버그그레비스로버츠(KKR)의 설립자 헨리 크래비스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내가 강남에 단골로 가는 일식집이 있다. 내가 그 집에 가면 좋은 생선과 부위를 알아서 낸다. 생선이 안 좋은 날은 내가 약속이 있어도 전화로 ‘오늘은 생선이 안 좋으니 안 오시는 게 좋겠다’고 한다.” 최우량 고객(VVIP)에게는 투자 대상에 대해서 솔직히 말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크레비스 회장이 다른 사람에게도 했다고 하더라. 세계 유명 최고경영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만나기 전에 많이 공부한다. 상대 이야기를 듣고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대한 통찰력을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평가받는다. 헤어질 때 한두 마디라도 ‘만만치 않다’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계와 시장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 대화 중에 건질 것이 있어야 (그 사람이 속한) 조직에 대한 존경도 생기는 것이다.

해외·대체·주식 투자가 늘어나면서 리스크도 아울러 커지고 있다.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리스크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4~5년 전 통계를 보면 채권 비중이 90%가 넘었다. 현재는 채권보다 리스크가 큰 주식, 환리스크도 포함되는 해외 투자 등 투자가 훨씬 다변화되었다. 금융 환경도 어느 때보다 나쁘다. 이로 인해 우리가 과거에 비해 기능 면에서 강화해나가야 할 부분이 리스크 관리이다. 지난해부터 종합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 보강에 힘쓰고 있다. 2013년 늘어나는 인력의 20% 이상이 리스크 관리 전문가이다. 또 선진 연·기금이나 기관들과 제휴해 그들의 운용 비결을 접목하고자 한다.

경제 민주화 논쟁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기업의 지분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해 총수 일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의결권 행사 여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국민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투자 기업의 가치가 커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의무가 있다. 그런 방향으로 주주권이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투명·윤리 경영을 촉진해서 주주 가치를 장기적 관점에서 올리는 방향으로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촉매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의결권 행사의 역기능으로 지적되는 부분도 있다. 주주권 행사가 불필요한 경영 간섭이나 개입으로 작용해서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면 손해는 국민연금이 보게 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양날의 칼이다. 순기능도 기대할 수 있으나 역기능도 우려된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제·재무적 관점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행사한다는 전제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정책·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어 오히려 국민연금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민연금은 자산 운영의 안정성이 중시되다 보니 채권을 사도 우량 채권, 주식을 사도 우량 주식을 매입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대기업의 자금 창구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총 투자액에서 대기업 증권에 투자하는 비중은 40%가량이다. 이른바 블루칩(우량 기업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채권 또한 신용 리스크를 감안하면 정크본드에 투자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대기업에 투자하게 된다. 기금 운영의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과 수익성이다. 안정성·수익성과 아울러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투자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나, 그 두 가지를 훼손하면서까지 공공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다만 제한된 범위나 전체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의 감내할 만한 수준에서 벤처 투자도 하고 있다. 최근 기업과의 공동 투자 프로그램도 확대해서 중견·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2060년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크게 두 가지로 풀어야 한다. 하나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다.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거나 소득 대체율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도 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들이다. 다른 하나는 기금 운영 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수익률을 높이면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다. 통계적으로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고갈 시기를 9년 늦출 수 있다. 수익률을 2%포인트 높이면 현 시스템을 지속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높이는 것이 쉽지 않다. 기금 운영 성과가 그만큼 중요하다. 현 보험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앞으로 노후 준비의 중요성이 커지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을 잘 반영해서 보험료도 적정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민연금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재 평균 소득(1백78만원) 기준으로 볼 때 수익비가 1.8배인 구조이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이다. 보험료를 인상하는 데에는 물론 사회적 저항이 존재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에 대한 설득과 소통이 중요하다. 정치적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임기 후 계획은 무엇인가?

나이와 관계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젊은 사람처럼 새로운 도전은 계속할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늙어도 청춘이다’라는 시 구절을 좋아한다. 새뮤얼 울먼의 <청춘>이라는 시이다. 울먼은 70대에 이 시를 썼다. 100세 시대에 70대는 청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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