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GP 사건’ 김일병, 범행 진실 묻자 ‘울기만…’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0.0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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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위원의 육군교도소 비공개 면담 막후

지난 2005년 8월17일 김동민 일병이 경기도 용인 제3군 보통군사법원에서 첫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민 일병은 육군교도소에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형태 의원(무소속)은 지난 9월13일 오후 2시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에 있는 육군교도소를 찾아갔다. 김동민 일병과 면담하기 위해서다. 김일병은 지난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8사단 530G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당시 GP장을 포함한 장병 여덟 명이 죽고, 네 명이 부상당했다. 군 수사기관은 김일병을 단독범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김일병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고등군사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된 상태이다.

김형태 의원과 김일병은 교도소 내에서 약 30분간 면담했다. 김일병의 육군교도소 수감이 공식 확인된 순간이기도 하다. 희생 장병의 유족들은 그동안 김일병과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육군교도소에 찾아가 면회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민감한 사안’이라며 근황이나 교도소 수감 여부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고 조정웅 병장의 부친인 조두하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2010년 8월7일쯤 육군교도소에 찾아가 면회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실제 교도소에 있는지 CCTV 화면이라도 보여달라고 했으나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라고 말했다. 연천 530GP 사건 유족 대표인 고 박의원 병장의 부친 박영섭씨도 지난 9월5일 면회 신청을 하고 찾아갔으나,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관계자는 “김일병이 면회를 거부해서 안 된 것이다. (수형자에 대해서는) 인권과 연계되기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형태 의원과의 면담 자리에 나온 김일병의 모습은 마른 체형에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복장은 수형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으며, 검은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처음 수감될 당시와 비교해 보면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김의원과 동행했던 보좌관은 “김일병이 내내 울기만 했다”라며 말을 아꼈다. 면담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것이다. 기자가 ‘그런 각서를 쓰지 않았느냐’라고 묻자,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의원은 달랐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일병과의 면담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김의원은 “‘네가 진짜 범인이냐, 아니냐를 솔직하게 말해달라’라고 했더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2008년 5월7일 고등군사재판정에서 말한 것이 지금도 유효하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라고 전했다.

김일병은 2008년 5월7일 고등군사재판장에서 재판장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최후 변론을 통해 “(제가 범인이라는 것은) 말뿐이지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재판장은 “직접 증거는 없지만 주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판결한다”라고 답변했다.

김일병은 김형태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심경 변화를 보였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것에 대해 ‘노코멘트’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증거가 없다’는 것에는 이전의 주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것은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시사저널>은 제939호(2007년 10월23일자)에 ‘530GP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후 지금까지 6년째 유족들과 사건을 추적해왔다. 현재까지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자백’뿐이다. 범행을 목격한 사람도, 직접적인 증거도 아무것도 없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판단 불능’으로 나왔다.

김일병의 변호인들도 그가 범인이라는 것에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국선 변호인이었던 법무법인 창조 이기욱·김학웅 변호사는 고등군사법원에 무죄 추정 근거에 따라 항소했으나 기각되었다. 당시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자백을 뒷받침하기에는 직접 증거들이 없고, 간접 증명력이 부족하므로 무죄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기욱 변호사는 2007년 10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일병이 범인이라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그런데도 김일병이 자신을 범인이라고 자백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민간 아닌 육군교도소 수감’에도 의문

김학웅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2009년 5월 <PD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보면 “피고인은 자백을 하지 않았고, 범행에 사용되었다고 증거로 제시된 총기에서는 피고인의 지문이 나오지도 않았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변호인인 나도, 검찰도, 재판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적었다.

유족들도 김일병에 대해 “동민이는 범인이 아니다. 군이 동민이를 내세워 사건을 조작했다”라고 확신하고 있다. 유족들은 김일병을 살리기 위해 국선 변호인 대신 민선 변호인을 선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동민 일병의 부모는 이상한 태도를 보였다. 유족들이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김일병의 아버지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007년 9월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연천 GP 총기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다. 유족들이 김일병의 집에 찾아가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 우리가 도와주겠다”라고 간청해서 나왔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유족들을 피하고 있다.

기자도 유족들과 함께 경기도 부천으로 찾아가 김일병의 부친을 만났으나, 기자 신분을 밝히자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렇듯 김일병의 부모는 아들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유족들은 “동민이 부모는 자식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동민이의 수사 기록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마치 남의 자식 생각하듯 했다. 같은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김일병이 육군교도소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현행 군 형법상 사병은 6개월 미만의 형을 받으면 각 군 영창에 수감되고, 1년 6개월 이상을 받으면 자동 전역되어 민간 교도소로 이감된다. 원칙적으로 6개월~1년 6개월의 형량을 받은 사병만 육군교도소에 수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군 형법에 따라 사형수는 총살형에 처한다. 민간 교도소는 교수형을 하기 때문에 군 사형수는 민간 교도소로 이감시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국방부에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530GP 사건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군 수사기관에서 원칙적으로 수사해서 종결된 만큼 재조사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해체된 군의문사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심의를 했으나, 2009년 11월에 이의 없다며 기각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생업도 포기한 채 8년째 매달려온 유족들의 시름만 깊어가고 있다.


‘김일병이 범인일 수 없는 이유’ 4가지

유족들이 김일병을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유일한 증거는 자백뿐이다. 김일병이 범행에 사용한 총이나 수류탄 고리에도 지문이 없었다. 사건 정황상으로 보면 김일병의 지문은 총기 곳곳에 묻어 있어야만 했다. 2005년 7월5일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가 낸 감정서에는 ‘범행 증거물(탄창, 수류탄 손잡이)에서 지문이 현출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둘째, 김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군 수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김일병은 GP를 종횡무진하며 총을 쏘고, 내무실에 들어와서는 수류탄을 투척하고, 자동으로 총을 난사했다. 그런데도 소대원 누구도 김일병을 보지 못했다. 생존 사병들도 수류탄 폭음과 총소리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셋째,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판단 불능’으로 나왔다. 검시관의 소견을 보면 더욱 의아하다. 피검사자 조건 적합 여부에는 ‘사건의 파장과 달리 너무나 차분하였고, 마치 타인의 행위를 진술하는 듯하였고, 피검사자의 정신·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 의심의 여지가 있어 본 검사관도 황당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행동 징후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을 때도 전혀 불안해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계호병들과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에서 과연 이번 범행을 저지른 피검사자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검사가 끝나고 검사실을 나서면서도 웃는 등 본 검사관이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넷째, 김일병의 범행 동기도 석연치 않다. 국방부는 “김일병이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 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생존 소대원의 진술서 등에 나타난 소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김동민을 괴롭혔다는 질책 사병들도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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