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심으로 중국인이 몰려온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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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쇼핑’에 빠진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명동 등 번화가에는 한국 상품을 사가려는 중국인들이 넘쳐난다. 중국인 관광객은 과거에 다수를 차지했던 일본인 관광객 수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의 씀씀이도 일본인 관광객을 앞서 있다. 중국인들의 한국 진출은 쇼핑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부를 위해, 또는 한국에 살림터를 만들기 위해 오는 중국인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 속으로 파고드는 중국인들의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일러스트 권오환
지난 9월30일 저녁 8시 서울 명동 밤거리. 추석 당일임에도 상점의 70% 이상이 문을 열었다. 몇몇 가게 앞은 식사를 하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유니클로 명동점은 쇼핑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커피숍에서도 자리를 잡고 앉기가 힘들다. 한 명이 주문을 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은 자리를 맡아놓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추석임에도 명동은 평소와 다른 점이 거의 없다. 차이가 있다면 명동을 채운 사람들의 국적이다. 상당수가 외국인 관광객, 그중에서도 중국인이 대다수이다. 길거리 화장품 브랜드숍 호객꾼들도 중국말을 하느라 바쁘다. 한국인들이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동안 명동은 중국인들의 차지였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아온 중국인 관광객은 2백22만여 명에 이른다. 3백20만명에 달하는 일본인 관광객에 비하면 100만여 명이 적다. 그러나 증가세는 일본을 압도한다. 일본인 관광객은 2009년에 3백만명을 돌파한 뒤 2011년까지 20만명이 늘어나는 데에 그쳤다. 사실상 정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인은 같은 기간 동안 1백30만명에서 2백20만명으로 70%나 늘어났다. 지난 7월부터는 순수 방문객 숫자에서도 일본인을 앞서고 있다. 한화준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당초 올해 중국인 관광객 유치 목표는 2백60만명이었는데 목표를 조정하고 있다. 이미 8월까지 1백88만명을 돌파했다. 이대로 가면 2백80만명은 무난하고, 잘하면 3백만명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월26일 서울 명동 거리를 걷고 있는 중국 관광객들.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에는 중·일 분쟁 반사 효과도 작용

중국인 관광객 수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중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다. 빠른 경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인구층이 늘어났다. 두 번째는 지리적 이점이다.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가깝다는 점이 한국을 매력적인 여행지로 느끼게 했다. 한화준 팀장은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가까운 한국을 찾기 시작한 것이 중국 관광객이 늘어난 주요 이유이다. 한국과 가까우면서 경제 상황도 좋은 동부 연안 도시들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다. 중·일 간 분쟁으로 인한 반사 효과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전했다.

정부는 중국인 관광객 잡기에 여념이 없다. 법무부는 지난 8월1일부터 복수비자 발급 대상을 확대했다. 기존 의사·대학 강사 등에게 실시해왔던 중국인 복수비자 제도를 의료 관광객에까지 확대 적용했다. 비자 신청 절차도 간소화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중국 은련카드사와 함께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은련카드로 10만원 이상 구매한 관광객들에게 호텔 숙박권이나 항공권을 추첨해 제공하는 행사이다. 한국관광공사가 특정 국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쇼핑 프로모션 행사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귀화해 정착하는 중국인도 계속 늘어나

정부가 이토록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국인 관광객은 씀씀이가 크다. 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1년 외래 관광객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행 중 중국인 1인당 총 지출 경비는 1천9백49달러이다. 1천75달러인 일본인에 비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주요 쇼핑 품목도 일본인은 식료품(58.7%)인 반면 중국인은 이보다 고가인 향수나 화장품(67.8%)이다. 일본인은 주로 명동에서 쇼핑을 하지만 중국인들은 명동뿐 아니라 공항 면세점도 많이 이용한다. 지출 경비로 단순 비교하면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이 다른 나라 관광객 두 명만큼의 경제 효과를 갖는다. 한화준 팀장은 “중국인 관광객은 일본인과 달리 ‘한번 왔을 때 많이 사자’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더해져 중국인들의 씀씀이를 늘렸다”라고 설명했다.

‘여행길’뿐 아니라 ‘배움길’에 오른 중국인도 많다. 중국인 유학생 양웬징 씨(29)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역 출신이다. 올해 4월부터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양씨는 “중국 내 경쟁이 치열하니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해서 학위를 따가려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양씨는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 중국에 비해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공부를 마치면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양씨는 “중국에서 한국과 관련 있는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은 취업 시장에서 유리하다”라고 전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유학생은 모두 8만8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중국인은 6만5천여 명으로 70%가 넘는다.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후문은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차이나타운’으로 불린다. 중국 학생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어느 학교를 막론하고 중국 유학생의 비중이 가장 높다. 최근에는 단순히 학위만 따는 것을 넘어 한국에서 취업을 하려는 학생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학생들이 한국 유학을 위해 거치는 절차는 간단한 편이다. 우선 대학교 내 한국어학당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해 입학허가서를 받는다. 이를 영사관에 제출하면 단기 상용(C-3) 비자를 받는다. 단기 상용 비자는 이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수 비자(D-2)나 유학 비자(D-4)로 바꿀 수 있다. 중국인 유학생 양문정 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 연장을 받기 위해 근무 시간 전인 아침 8시40분에 도착했는데도 앞에 1백64명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희망자가 많아 5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라고 전했다. 중국인은 한국 사회의 일부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11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1백39만명에 달한다. 그중 약 절반인 67만여 명이 중국인이다. 두 번째로 많은 미국인 체류자(13만명)의 다섯 배가 넘는다. 청주시 인구만 한 중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국내 체류 중국인은 순수 중국인인 한족과 재중동포인 조선족으로 분류된다. 한족이 약 20만명, 조선족이 47만명 정도이다. 방문 취업 비자(H-2)와 재외동포 비자(F-4) 발급으로 조선족의 한국 유입이 가속화되었다. 이미 결혼해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숫자를 포함하면 국내에 살고 있는 한족 및 조선족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족 출신 짜오 씨(44)는 5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중국에 출장 왔던 한국 남성을 만나 결혼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다. 20세와 7세인 두 아들이 있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고 짜오 씨도 맞벌이로 현장 일을 한다. 아들은 서울 소재 ㄱ대학에 재학하며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학비를 번다. 짜오 씨의 소원은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이다. 여느 평범한 한국 어머니의 소원과 다르지 않다. 짜오 씨는 “한국은 교육 제도가 잘 되어 있고 안전해서 좋다. 몸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사는 맛이 난다”라고 전했다.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인은 단순히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한국을 찾는 다른 국적 체류자와는 다르다. 귀화 및 정착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부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김용선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은 “과거 조선족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가족 단위로 한국에 정착해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서울 시내 조선족 주요 거주지. (왼쪽)서울 대림동의 중국인 거리. ⓒ시사저널 전영기, (오른쪽 위)서울 자양동 중국동포타운 거리. ⓒ 뉴스뱅크이미지, (오른쪽 아래)가리봉종합시장 내 중국 식품 상점. ⓒ 시사저널 박은숙
국내 체류 중국인들 다수가 수도권 거주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 산다. 서울 시내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의 대림동, 광진구 자양동에 밀집해 있다. 서울을 순회하는 지하철 2호선을 따라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대림동 중앙시장 일대는 한족과 조선족을 위한 상권이 있을 정도로 ‘중국화’되어 있다. 상권이 생기다 보니 주변 은행도 변모를 꾀한다.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오면 이색적인 간판을 볼 수 있다. 한자로 적혀 있는 하나은행 간판이다. 하나은행은 올해 초 대림역에 중국인 전용 영업점을 개설했다. 중국인들이 낮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영업한다. 중국인 직원 두 명을 두고 있다. 하나은행 채널기획부 장봉원 과장은 “대림지점의 고객은 80~90% 정도가 중국인이다. 주로 외환 및 송금 업무를 본다. 고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림동에는 ‘서울중국인교회’도 있다. 모든 신도가 중국인이거나 한국으로 귀화한 중국인이다. 특히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30~40대 여성이 많다. 오전에는 조선족, 오후에는 한족을 대상으로 예배를 본다. 서울중국인교회의 최황규 목사는 “우리 교회는 예배만 보는 곳이 아니다. 중국인 및 귀화자들이 한국 생활의 고충을 나누는 곳이다”라고 전했다.

중제조선족이 상당수 정착해 살고 있지만 한국인 이웃과의 소통이나 교류는 많지 않다. 여전히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은 ‘일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 조선족은 “한국 사회와 정부는 조선족들을 그저 3D 인력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전했다. 소통 부족은 오해를 낳는다.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 10월10일은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는 날’이라는 낭설이 돌기도 했다. 최길도 중국동포협회 회장은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지원만큼 사회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이 되어야 화합이 되고 화합이 되어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족과 한족들은 한국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림동에 있는 조선족 노인정은 매일 길거리 청소를 한다. ‘중국 사람은 더럽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다. 대부분 한족으로 이루어진 서울중국인교회 신도들은 1년에 한 번씩 돈을 모은다. 이 돈은 2008년 중국 어부에게 살해당한 고 박경조 해경의 자녀들에게 전달된다. 최황규 목사는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중국과 한국 간 민간 사절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들의 고통을 다독여주고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고 우리 사회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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