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의 정치공학
  • 성병욱 | 현 인터넷신문 심의위원장 ()
  • 승인 2012.11.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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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이후 후보 단일화가 선두 후보를 꺾는 핵심 전술로 고착화하고 있다. 1997년의 DJP 연합,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 이어 이번 18대 대선에서도 야권은 어김없이 후보 단일화에 목을 맨다. 여당 후보를 꺾을 수도 있는 오직 단 한 가지 방책이라도 되는 것 같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는 후보의 경력·비전·공약·신뢰성 등 인물 됨됨이와 정당의 정강 정책·노선·실적 등을 두루 살피고 투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2, 3위 후보가 단일화되면 유권자는 이성적 투표가 아닌 감성적 ‘묻지 마 투표’에 몰리게 된다. 때문에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1971년 대선까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유력 후보들이 단일화를 하거나 담합하거나 사퇴하는 일은 없었다.

1987년 직선제가 부활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해온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대해 처음으로 후보 단일화 요구가 있었다. 군부 독재 종식이라는 국민적 여망이 그 시대적 배경이었다. 두 김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구나 군부 독재가 끝나 민주화가 정착된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는 이미 국민적 여망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을 이용해 선두 후보를 꺾고 선거에 이기려는 세력 및 후보의 정치공학적 선거 책략이 깔려 있을 뿐이다. DJP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그러했다.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과 권력 분점 약속에 기반을 두었다. 특히 집권 전반기에 내각제 개헌을 단행해 후반기에는 내각제 총리를 김종필이 맡는다는 것이다. 권력에 참여할 뿐 아니라 권력의 핵심까지 전·후반기로 나눠 맡는다는 얘기이다. 처음부터 과연 진짜로 권력을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내각제 개헌은 빈말이었을 뿐, 개헌 시도조차 없이 두 세력은 한때의 권력 분점 후 결국 결별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결말은 더 허무했다. 노선에서도 상당히 편차가 있던 두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맞서기 위해 마지못해 권력 분점과 정책 공조를 약속하고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뤘으나 대선 직전 파탄을 맞았다. 대선 전날 합동 유세에서 노후보가 차기 지도자로 정동영·추미애 의원을 거론해 파트너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 것과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는 말린다고 한 것이 대북한 정책 공조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정몽준이 지지 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단일화는 깨졌으나 단일화 여파로 노무현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번에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논란이 한 달 반 정도를 남긴 18대 대선의 모든 이슈를 압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위협을 더하는 남북한 관계 등 동북아 정세 속에서 차기 지도자의 능력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한데, 국민들이 후보들의 리더십과 비전 역량을 가늠할 기회가 단일화 격랑에 휩쓸려갈 것 같아 걱정이다. 

단일화를 추진하는 세력들은 오직 승리만을 위한 정치적 담합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연대를 중시하는 가치 통합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진정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단일화의 책략과 진정성을 꿰뚫어볼 국민들의 안목이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시절이다.

*일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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