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보급 확산 계기 만든, 영국 10대들의 3세 유아 살인 사건
  • 표창원│경찰대 교수 ()
  • 승인 2012.11.0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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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의 사건 추적

1993년 2월12일, 영국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 리버풀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 엄마와 함께 나들이 나왔던 세 살배기 어린이 제임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혼잡한 정육점에서 고기와 반찬거리를 사느라 잠시 아들의 손을 놓고 있던 엄마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임스!” “제임스!” 미친 사람처럼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위를 다 훑었지만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도,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곧 쇼핑몰 보안요원들이 달려왔고, 무전기를 통해 쇼핑몰 내부 전역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어린 제임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아보호소에도 제임스는 없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쇼핑몰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촬영한 화면들을 녹화한 테이프부터 제출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혼잡한 대형 쇼핑몰 천장에 설치된 CCTV가 촬영한 화면들 속에서 경찰과 제임스의 엄마는 자그마한 제임스의 뒷모습을 찾아냈다.

혼자 길을 잃고 엄마를 찾아 헤매거나 아는 어른의 손에 이끌려갔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CCTV 화면 속의 어린 제임스는 10대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자연스럽게 쇼핑몰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정 폭력과 학대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용의자들

뒷모습만 보인, 제임스를 데려간 소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다시 CCTV 화면들을 검색하던 경찰은 제임스가 실종되었던 의류 매장 부근에 설치된 CCTV에 촬영된 화면 속에서 결국 그 소년과 같은 복장을 한 소년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 소년은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이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상의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건물 천장에 달린 해상도 낮은 CCTV에 찍힌 모습이다 보니 소년들의 정확한 키나 연령은 추정하기 힘들었다. 다시 제임스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과 비교하던 경찰은 그 화면 속에서 전혀 관계없는 행인처럼 보이는, 몇 발짝 앞서가던 검은 옷의 소년이 제임스를 데려간 소년과 친구 내지 동행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곧 흐릿한 CCTV 캡쳐 화면 두 장은 리버풀 지역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고, 비슷한 소년을 알고 있거나 보았다는 제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 날에는 BBC를 포함한 전국의 텔레비전을 통해 제임스의 실종 소식이 두 장의 CCTV 화면과 함께 보도되었다. 어른이 아닌 소년들에 의해 이끌려갔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고, 곧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제임스의 가족과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공유되었다.

실종 이틀 뒤, 연인들이 만나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인 2월14일 일요일, 이런 국민적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실종 장소인 쇼핑몰에서 4km 떨어진 후미진 기찻길 옆에서 무참하게 공격당한 채 숨져 있는 제임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제임스의 사인은 외부 충격에 의한 뇌손상이었다. 시체검안과 부검 소견, 사체 발견 장소 주변 유류물 등을 종합한 결과 범인(들)은 제임스를 시체가 발견된 기찻길로 데려온 뒤 인근에 있던 버려진 페인트통을 주어들고는 제임스의 얼굴에 파란색 페인트를 쏟아붓고 온몸을 벽돌과 쇠파이프로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뒤 기찻길 위에 시신을 올려놓고 마치 열차에 친 사고인 것처럼 위장하려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시체는 계획대로 열차에 치었으나 부검 결과 열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 범행의 잔혹함과 치밀함은 곧 제임스를 데려간 범인이 1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소년의 손에 이끌려간 뒤 길에 방치된 제임스를 어른이 데려가 살해한 것이라는 세간의 추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임스의 시체가 발견된 지 4일이 지난 목요일 아침, 리버풀 지역을 관할하는 머시사이드 경찰청 형사과에 연행되어 온 용의자들은 놀랍게도 막 형사상 미성년자를 벗어난 열 살 동갑내기 친구 존 베나블즈와 로버트 톰슨이었다. 사고 현장 인근 거주 소년 중 결석자 중심으로 수사를 하던 경찰이 CCTV 화면과 유사한 체격과 복장을 지닌 두 소년을 찾아냈고, 이들에 대한 가택 수색 결과 숨진 제임스의 시체에서 발견된 파란색 페인트 흔적 및 제임스 혈액과 DNA가 일치하는 혈흔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 언론 규정에 의해, 어린 용의자들의 이름은 확정 판결 전까지 공개할 수 없었으나 사건의 충격과 파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두 어린 용의자의 이름은 어디가 먼저랄 것 없이 각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고, 흔히 ‘타블로이드’로 불리는 영국의 대중지들은 이 두 열 살 소년들을 서슴없이 ‘악마’(devil)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악마성’ 못지않게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경찰의 수사 내용 역시 충격적이었다.

용의자 존 베나블즈와 로버트 톰슨은 학교에서 장기 무단 결석 상태였음에도 학교나 가족 그 누구도 이들을 보호하거나 선도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었고, 둘 모두 가정 폭력과 학대에 장기간 노출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건 당일 오전에도 베나블즈와 톰슨은 어린아이를 유괴하기로 마음먹고 쇼핑몰에 가서 두 살짜리 유아의 손을 잡아끌고 나오다 뒤늦게 아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엄마에게 들키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어린 제임스가 용의자의 손에 이끌려 쇼핑몰을 나온 뒤 살해 장소인 기찻길로 갈 때까지 용의자들에 의해 머리를 얻어맞고, 발로 차이는 모습을 무려 38명의 어른들이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사실도 충격을 주었다.

대중지 ‘선(SUN)’ 등 일부에서는 베나블즈와 톰슨이 결석하고 놀던 시간에 당시 유행하던 ‘쳐키 시리즈’ 등 폭력적 비디오물을 많이 본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 법에 따라 10세 피고인 베나블즈와 톰슨은 성인 법정에서 성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재판을 받았고, 두 어린 악마를 극형에 처하라는 성난 여론에 밀린 변호사는 아무런 증인도 신청하지 않았다.

더구나 재판이 열린 시점은 서양에서 악마와 귀신들의 날로 정한 ‘할로윈’ 즈음이었다. 배심원단은 두 소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은 최소 8년 동안은 가석방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무기징역’이었다.

분노하는 여론에 밀려 가석방 기한까지 늘려

이후 가석방 가능 기간이 너무 짧다는 여론이 빗발쳤고, 일부 신문은 30만명의 서명을 받아 형량 상향을 요구하는 청원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에서는 ‘공익의 대변자’ 자격으로 항소를 제기했고, 가석방 불가능 기한은 10년으로 늘어났다.

당시 보수당 존 메이저 총리와 마이클 하워드 내무장관은 소년범 무기징역의 가석방 기한을 최저 15년으로 정하는 규칙을 발표했지만, 대법원에 의해 무효 판정을 받게 된다. 유럽인권법원은 당시의 재판이 지나친 여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린이 피고인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 ‘불공정한 재판’이었다며 두 어린이 살인범의 조기 석방을 요청했고, 영국 정부는 8년이 지난 2001년 베나블즈와 톰슨을 가석방함과 동시에 이들에게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부여하면서 영국 언론에 이들의 새로운 이름과 신원 공개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두 소년의 부모들도 거듭되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정부로부터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고 아무도 몰래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지금도 영국 사회에는 제임스의 기일이 되면 시신이 발견된 기찻길에 수십만 송이의 꽃이 쌓이는 등 피살된 어린 천사 ‘제임스 벌저’를 추모하는 열기가 식지 않는 한편, 석방되어 세상에 나온 두 악마 ‘베나블즈’와 ‘톰슨’의 소재와 새 신분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나쁜 씨’를 타고난 악마일까, 아니면 가정과 주변이 오염시킨 ‘손상된 영혼’일까? 한편, 이 사건은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범죄 예방용 CCTV 설치를 급속하게 확산시킨 계기가 된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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