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한 세상에 갇힐지라도 낙천적인 글을 쓰겠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2.0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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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펴낸 소설가 김연수씨

11월27일 서울 합정동 자음과모음 출판사 사옥 옥상에서 김연수 작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 시사저널 우태윤

11월27일, 김연수 작가를 만났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바람이 맵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이날 김작가는 신작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일을 보았다. 바다의 일이 파도라면, 그의 일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소설가의 일이 글 쓰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고 말하면, 그 말에 상처받거나 섭섭할 것 같은 표정으로, 그는 커피숍의 중앙에 앉아 있었다.

최근 한 시사 주간지가 ‘작가행동1219’에 관한 내용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참을 수 없는 현실로 나선’ 작가들이 모인 사진을 표지에 올렸다. 그 사진에서도 김작가는 중앙에 다소곳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작가행동1219’에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따로 무슨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사나 자리가 있으면 참석하는 것이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모티프로 써나간 작품

‘작가행동1219’는 지난 10월22일 트위터에 ‘사람과 사회와 정치에 대해 특정 후보 지지가 아니라 정치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도록 작가 행동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띄우면서 ‘행동’에 돌입했다. ‘1219’는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일을 가리키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트위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정치적 문장을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남기겠다고 뜻을 모았다. 작가들은 오프라인에서도 ‘행동’했다. 제주 강정마을을 위해 동조 단식도 하고, 북콘서트를 열어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의 말을 경청하기도 했다.   

김연수 작가의 블로그는 ‘읽GO 듣GO 달린다(http://yeonsukim.tumblr.com)’이다. 그는 이미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시사저널>이 해마다 선정하는 ‘한국을 이끌 차세대 리더’의 문학 분야에서 2009년과 올해 두 번 1위에 올랐다. 2009년 그는 <세계의 끝 여자 친구>라는 소설집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고민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당시 책을 본 기자가 ‘용산 참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며 물었더니, 그는 “용산 참사는 나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 또한 사회의 일원이니까 그 일이 그대로 잊혀지지 않도록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도 블로그를 만들어서라도 글을 썼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보는 눈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죽어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변했다는 사실만은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계속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있다. 그는 “한진중공업 사태가 없었다면 이 소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원고지 10장 정도의 내용을 가지고 쓰기 시작했다. 그 분량이니 한진중공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쓰다 보면 소설 내적으로 이야기가 쌓이게 된다. 쓴 이야기에 이야기가 붙어서 이 소설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홍보하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문장을 내세웠다. 그는 “소설 속에서 제목을 정하는 데 참고할 문장을 골랐다. 소설 속 주인공의 엄마가 하는 말이다. 열일곱 살 때 죽은 엄마의 혼이 다 큰 딸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쓴 문장이다. 무엇을 의도해서 쓰거나 딴 의미를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엄마라는 화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해 ‘죽어서 바닷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늘 보는 것이 바다, 파도 이런 것일 터라,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썼던 것이다. 쓰다 보니 이 말이 씌어져 있었고, 고르다 보니 이 말을 골라낸 것이다. 써놓고 지나가 버린 것인데, 나중에 제목을 뽑을 때 이 말이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나는 너를 뜨겁게 생각했다, 그런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의 3부 소제목은 ‘우리’이다. 1인칭으로 시작한 소설은 이 부분에서 3인칭 시점으로 바뀐다. 김작가는 “우리는 1인칭 복수이다. 모두의 시점으로 말을 하게 된다. 후일담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소설에는 2012년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21세기 미국과 한국, 일본, 방글라데시와 1988년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한국 남해안의 소도시 진남을 오가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운동화 갑피를 만드는 부산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미싱을 돌리며 미국 유학 간 아들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업체의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던 끝에 병사한 늙은 여인, 교수가 되어 그런 어머니를 기억하는 여인의 아들,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가 끝내 투신자살한 노동자가 그의 딸을 향해 보낸 ‘HOPE’ 모스 부호, 얼굴도 모르는 생모를 찾아나선 주인공이 어머니와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들은 엇갈린 기억과 증언들로 인해 겪는 불협화음 등….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오가며 서로 끝을 물고 이어진다. 편지와 사진과 라디오 사연과 다큐멘터리 영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다양한 틀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그 시대의 진실로 접근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귀결된다.

‘가장 차가운 땅’에도 희망이 숨어 있었다는…

암울해 보이는 시대 상황이 배경인데, 그의 문장들은 비관적이지 않다. 마지막 장의 소제목은 ‘가장 차가운 땅에서도’인데, 묘지석을 가리키는 인물이 “여기 희망이 숨어 있네요”라고 말한다. 묘지석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희망은 날개 달린 것’이라는 시가 쓰여 있었다. 김작가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사건 속에 외면당한 사람들의 과거가 담긴 파편을 주워담아 ‘희망’까지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로 시작한 소설은 ‘너’를 거쳐 ‘우리’로 서로 맞닿는다. 김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그런 심연을 건너 타인에게 가 닿을 수 있으려면 날개 달린 무엇이 필요할 듯했다”라고 말했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을 인용한 이유이겠다. 희망이란, 타인에게 가 닿는 일, 나와 너의 사이를 이어 우리가 되는 일인 셈이다.

2009년에 “사회가 암담하게 느껴질수록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낙천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말했던 그였다. 이후 펴낸 소설 <원더보이>와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비관이 아니라 낙관이었다. 인터뷰 내내 여러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관되게 낙천적인 생각을 내비쳤다. 이를테면 모바일 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문학이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일장일단이 있다면서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나누게 된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작가가 되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자극적이고 중독성 강한 콘텐츠가 먹히는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도 “야동이 인터넷 시장을 키우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지만 야동이 인터넷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마트 콘텐츠의 미래도 그렇게 되어가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날 저녁 김작가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그곳으로 출발하려는 그에게 강연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글을 쓰다가 알게 되는 것들,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그와 헤어진 뒤 그의 블로그에 무슨 내용이 올라 있을까 궁금했다. 최근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안철수의 대선 출마 선언문을 듣는데, 소설가로서 기대가 생겼다. 윌리엄 깁슨을 인용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니.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말할 때였다. 이 겸손은 지금까지 그 어떤 대통령 후보도 가지지 못한 자질이다. 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줄의 문장도 쉽게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처지와 비슷하다. 결국 그는 타자를 위해서 노력할 텐데, 이 노력이 그를 (좋은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간으로 만들 것이다. 정치를 정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 그게 바로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김작가가 글을 쓰면서 알게 되는 것이란, ‘타자를 위해 노력하는 일’인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웃을 생각하는 일은 우리들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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