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 파괴’ 브로커 활개 친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2.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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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결혼에서 이혼까지 각본에 따라 연출

외국인 여성들과 결혼해서 눈물 흘리는 한국인 남편들이 있다. 이들에게 ‘국제결혼’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다. 다문화 가정의 이혼율을 보면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결혼 커플의 약 10%가 다문화 가정이다. 그런데 다문화 부부 10쌍 중 한 쌍이 이혼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도 있었다.

왜 이렇게 이혼율이 높은 것일까. 그동안에는 막연하게 ‘문화적 차이’와 ‘성격 차이’만 부각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차이가 이혼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을 파괴하는 주범은 ‘위장 결혼’이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공통점은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는 점이다. 중국·중앙아시아·동남아 국가에서 온 여성들의 사정이 비슷하다. 이들에게 ‘한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이다. 일자리도 많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돈을 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한국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외국인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결혼이다. 결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다.

물론 모든 이주 여성이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가난한 친정을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 악덕 브로커들이 문제이다. 이들은 혼기를 놓친 한국 노총각들과 외국 여성들 사이에서 잇속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에게 ‘위장 결혼’은 새로운 황금 어장이다. 한국행을 원하는 이주 여성이나 결혼하려는 농촌 총각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돈이다. 자신들이 중개한 결혼이 가짜이건 진짜이건 상관이 없다. 오직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 보니 너도나도 결혼 중개 브로커로 나선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위장 결혼’한 이주 여성들은 한국에 입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출한다. 보통 한 달에서 1년 사이를 ‘D-day’로 정한다. 외국인 배우자가 한국에 입국해서 90일 이내에 해피스타트 프로그램을 받으면 결혼 비자(F-6)를 받아 2년간 체류할 수 있다. 외국인 등록증도 나오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내는 데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주권이나 귀화 신청을 하려면 2년 이상 혼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국내 입국 후 한 달~1년 사이 가출

위장 결혼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이주 여성들은 이런 점을 노린다. 외국인 등록증과 ‘2년짜리’ 비자가 나온 후에 가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다. 자신이 위장 결혼 대상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한국인 남편들은 전후 사정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아내가 왜 집을 나갔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니거나 마냥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도 기약이 없을 때는 ‘이혼’ 절차를 밟는다.

이러한 위장 결혼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애먼 한국인 남편과 그 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 신혼의 단꿈이 깨진 것에 그치지 않고, 결혼하는 데 든 비용까지 합치면 수천만 원의 금전적인 손해까지 감당해야 한다. 여기에 정신적인 충격까지 감안하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위장 결혼은 다문화 사회에서 반드시 척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다.

그런데 더욱 놀랄 만한 일이 있었다. 다문화 가정의 이혼율이 높은 이면에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었다. 이른바 ‘기획 이혼’이다. 여기에도 국제결혼 브로커들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 각본과 연출은 브로커들이 맡고, 주연 배우는 ‘이주 여성’이다. 이럴 경우 한국인 남편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기획 이혼’의 수법은 아주 치밀하다. 크게는 두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첫째, 결혼부터 이혼까지 계획적으로 진행한다. 브로커들은 외국인 여성에게 결혼한 후 언제쯤 가출하고 이혼해야 하는지 그 시기를 정해준다.

이혼하는 방법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혼할 때 남편과 시댁에서 어떻게 위자료를 받아내야 하는지 행동 지침까지 전달한다. 기존에는 한국에 입국한 후 ‘가출’하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기획 이혼은 다르다. 남편에게 귀책 사유를 만들어 향후 진행될 이혼 소송 등에서 유리하게 끌어가는 치밀함도 보인다. 이렇게 결혼에서 이혼까지 ‘포트폴리오’처럼 짜여 있다. 브로커들의 새로운 이윤 창출 방안으로 나온 것이 ‘기획 이혼’인 것이다.

위장 결혼을 생각한 이주 여성들에게 ‘가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주 여성들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악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순진하고 어린 외국인 아내’이자 ‘며느리’이다. 남편이나 시부모에게도 살갑게 애정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선물을 사달라고 하거나,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당한 한국인 남성들이 피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국제결혼피해센터 제공
남편에게 선물과 돈을 수시로 요구

그러면 남편은 어린 아내를 가엽게 여겨 휴대전화도 개설해주고, 신용카드도 만들어주고, 원하는 대로 충족시켜준다. 그렇게 한 달에서 1년 정도가 지나면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다. 한국인 남편과 시어머니는 “우리 아내는 처음부터 안 그랬다” “착한 며느리가 변했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모두 각본에 있는 내용이다.

실제 브로커가 개입한 사례를 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아내가 가출했다며 찾아 헤맨 한 한국인 남편(33)은 인터넷에 아내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그동안 자신이 당한 사연을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그는 ‘베트남 결혼 전문 브로커로 활동하는 귀화 베트남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아내가 지난해 12월에 입국해 올해 1월에 결혼했다. 아내는 외국인 등록증을 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되는 지난 4월에 집에 있는 현금과 귀중품 약 3백70여 만원을 훔쳐서 가출했다. 이후 백방으로 찾아본 결과 가출 계획을 세우고, 결혼할 의사가 없이 한국에 입국해 돈을 벌어가기 위해 악의적으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며 기막혀 했다.

경기도 지역에 사는 윤 아무개씨(38)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윤씨는 지난 3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여성인 ㅌ씨(23)와 만나 결혼했다. 윤씨는 고향에 신접살림을 차렸고,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윤씨는 어린 아내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꼼꼼하게 챙겨주었다. ㅌ씨도 이런 남편을 잘 따라주었다. 시어머니에게도 꼬박 ‘어머니’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대했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웃으면서 싹싹하게 인사도 잘했다. 윤씨는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해 잠시나마 행복했다.

그런데 입국 후 석 달이 지날 때쯤 ㅌ씨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의 태도와는 1백80° 달랐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방 안에서는 잠만 자고, 깨어 있을 때는 컴퓨터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지냈다. 시어머니가 싫은 소리라도 하면 큰소리를 내며 대들었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가사도 손을 놓았다. 청소며 빨래며, 설거지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이 ㅌ씨와 시어머니 사이에 고부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결국 윤씨는 어머니와 따로 살기로 하고 분가했다. 하지만 ㅌ씨의 태도는 여전했다. 남편 윤씨는 ㅌ씨를 타일러도 보고, 잔소리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ㅌ씨는 ‘이혼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부부 관계도 거부했다.

화가 난 윤씨가 하루는 밥을 먹다가 그릇을 방바닥에 던졌는데, 그릇이 깨지면서 ㅌ의 발에 약간의 상처가 났다. ㅌ씨는 울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ㅌ씨는 112에 신고해서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남편을 폭행죄로 고소한 후 이혼 소송을 냈다. 귀책 사유가 남편에게 있다며 위자료도 청구했다. 윤씨는 나중에 ㅌ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살펴보고는 아내가 결혼 중개 브로커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윤씨는 “더는 가정을 지키기가 힘든 상태이다. 남아 있는 정(情)도 다 떨어졌다. 내가 피해자인데 폭행죄로 고소되는 등 불리한 상태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브로커 개입한 ‘기획 이혼’ 피해 속출 

윤씨와 비슷한 일을 당한 한국인 남편들의 사례는 많다. 국제결혼피해센터 등에도 수시로 사연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일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남편들 중에는 브로커가 개입해 ‘기획 이혼’을 당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워낙 은밀하고 조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브로커와 이주 여성들도 ‘비밀’로 하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안재성 국제결혼피해센터 대표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들어온다. 남편에게 매월 돈을 요구하다가 돈을 안 주면 가출한다. 그리고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취업한다. 남편에게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면 계속해서 항소한다.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수법이다. 이런 모든 것들의 뒤에는 브로커가 있다”라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도 접근한다. 이들은 시장, 쇼핑센터, 문화센터 등에서 이주 여성을 만나면 “어려울 때 연락해라” “남편과의 사이가 안 좋으면 도움을 청해라” 등의 말을 하며 접근한 후 명함이나 연락처를 건넨다. 그런 후 연락이 오면 위와 같은 방법을 알려주며 이혼을 조장한다.

이주 여성이 가출하거나 이혼한 후에는 결혼 알선 브로커들과 더욱 결탁한다. 브로커들은 결혼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출이나 이혼한 이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매달 돈을 챙긴다.

심지어는 여성의 이름을 바꾸거나 신분을 위장해서 과거를 세탁한 후 또 다른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알선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즉, 이주 여성이나 한국인 남편들 모두 브로커들에게는 ‘맛있는 먹잇감’일 뿐이다. 브로커들은 이주 여성들의 ‘위장 결혼-기획 이혼-취업’까지 관리하며 단물을 빨아먹고 있다. 부인이 가출했을 경우 피해 남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가정불화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경찰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악덕 브로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들의 실체를 찾아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원찬희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은 “선량한 피해자들을 막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혼 중개 브로커들을 상시 감시하고 있다. 첩보와 정보도 수집하고 있다. 그런데 ‘결혼 가정’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실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 연합뉴스
결혼 중개업자들이 판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국제결혼을 중개하면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 금액은 적게는 5백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이다. 수수료가 각각 1천만원이라고 한다면 브로커는 총 2천만원을 가져간다. 100명을 알선하면 10억원을 챙긴다는 계산이 된다. 만약 중간에 ‘뚜쟁이’ 같은 소개자가 있다면 100만~2백만원을 소개비로 떼 준다. 현지에는 브로커와 연결된 ‘전문 소개꾼’들도 상당하다. 물론 결혼이 성사되었을 때에 지급한다. 

결혼 중개 브로커들도 현지화 전략을 쓴다. 이를 테면 베트남 결혼을 전문으로 알선한다면 현지에 사무실 겸 합숙소를 차린다. 한국측에서 남성들을 알선하면 베트남 현지에서 맞선을 보게 하고 결혼이 성사되면 돈을 받는 형식이다.

마음에 맞는 짝을 찾았다고 해서 곧바로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서 결혼 절차를 밟아야 하고, 입국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약 4~6개월이 걸리는데, 이때 합숙소 경비와 생활비 등은 모두 남성이 부담해야 한다. 한국 남성들의 경우 결혼 알선료 외에 신부가 될 여성에게 주는 선물, 처갓집 부모에게 주는 돈, 한국행 경비 등까지 부담해 이를 합치면 꽤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된다.

브로커들은 이주 여성들이 가출이나 이혼을 하게 되면 취업 알선에 나선다. 이때 ‘알선료’로 이주 여성 수입의 20~50%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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