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 넘어 ‘인술’ 펴는 의사 삼총사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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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보다 치유 권하는 의사들

감기 환자가 있다. 이 환자가 여러 의사를 만나더라도 똑같은 처방이 나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병인데도 나라마다, 의사마다 치료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암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자신이 그 암에 걸리면 바로 수술을 받을까? 의사는 수술을 받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의사는 질병, 치료법, 후유증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환자에게는 권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강력한 항암제를 주사한다고 하자.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지만 주변의 건강한 세포까지 몰살시킨다. 암세포를 없앴지만 삶의 질은 예전보다 확연히 떨어진다. 의사가 암에 걸리면 어떻게 할까? 암세포는 수술로 도려내고 항암제 대신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으로 남아 있는 암을 스스로 이기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삶의 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치료보다는 치유를 선택하는 셈이다.

치료를 잘하는 의사를 명의라고 한다면, 치유를 돕는 의사는 인의(仁醫)라고 부를 만하다. 환자 스스로 병을 이겨내도록 도와주거나, 적어도 환자를 단순히 환자로 보지 않고 가족으로 보는 의사들이다.

 

최일봉 원장 ⓒ 시사저널 전영기
소극적 치료하는 의사,

최일봉 인천성모병원 전이재발암병원 원장

고장 난 자동차 엔진을 고치는 것이나 단순히 범퍼를 교체하는 값이 같다면 정비사는 범퍼 교체를 반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차의 범퍼를 교체하는 편이 돈벌이가 좋기 때문이다. 범퍼에 이상이 생긴 사람은 조기암 환자와 같고, 자동차 엔진에 이상이 생긴 사람은 암이 전이되었거나 재발한 환자와 같다. 아무리 치료해도 별 차도가 없는 전이 암 또는 재발 암 환자보다는 짧은 기간에 수술로 조기 암을 치료하는 편이 병원 입장에서는 이롭다. 수익도 늘어나고 암을 잘 고치는 병원이라는 평판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말기 암 환자를 반기지 않는 병원들이 더러 있다. 최일봉 인천성모병원 전이재발암병원 원장은 이런 병원의 행태에 염증을 느꼈다. 그는 “말기 암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형 병원들을 자주 보아왔다. 그런 환자가 1년에 3만~5만명쯤 된다”라고 지적했다.

암이 전이되거나 재발한 환자는 최원장을 찾는다. 6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유방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김숙미씨(70·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암세포가 뼈와 주요 장기에 퍼진 상태였지만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최원장이 김씨에게 한 치료는 ‘소극적인 치료’였다. 

최원장은 “조기 암은 적극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전이되었거나 재발한 암은 소극적으로 치료하는 편이 옳다. 관리를 잘하면 오래 살 수 있다. 환자들은 이미 큰 병원에서 강력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런 사람에게 또 센 치료를 하면 견뎌내지 못한다. 김할머니를 치료할 때도 그랬다. 예컨대, 통증이 심하면 의사는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데, 나는 한의사와 협진해서 침이나 뜸으로 통증을 다스린다. 효과도 좋고, 가격도 싸다. 가능한 한 일상생활을 하도록 유도하고, 정말 위급할 때만 치료하면 자연 수명까지 살 수 있다. 돈벌이보다는 환자를 관리하는 데에 신경을 쓰는 의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천근아 교수 ⓒ 시사저널 전영기
치료 의지 전달하는 의사,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청소년정신과 교수

자신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별히 아픈 데도 없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정신질환=정신병’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탓에 병원을 찾기가 꺼려진다. 정신과 의사와 마주 앉아서도 자신에게는 이상이 없다며 주변 환경 탓을 한다.

이런 반응은 특히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폭력적으로 변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온 부모는 아이에게 특효 처방을 바란다. 이때 많은 의사는 부모를 지목한다. 직접적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부모에게 문제가 있으니 아이가 그 모양이라는 식으로 부모를 몰아세운다.

그러면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사가 아픈 감정을 후벼팔수록 후련함을 느끼며 반성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의사의 말에 저항하는 부류도 있다. 아이의 문제를 부모 탓으로 돌리니 감정이 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상 치료가 어려워진다. 부모가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을 치료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청소년정신과 교수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건드리는 의사이다. 천교수는 “자녀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전해보라. 폭력적인 청소년에게는 품행장애라는 정신과적 질환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나무라기만 하면 점점 회복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정신과 치료에서는 환자 자신이 병을 고치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치료 의지를 북돋워주는 역할을 의사가 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끌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 이를 위해서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건드리는 편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조태준 교수 ⓒ 시사저널 전영기
‘갑’ 대신 ‘을’을 자처한 의사,

조태준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

흔히 의사는 ‘갑’이라고 한다. 환자의 회복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달렸다.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것도 의사의 몫이다. 그러니 제약사나 의료기기 회사는 의사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의사의 심기를 건드리면 제아무리 좋은 약이나 의료기기라도 사용하지 않는다.

조태준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을’을 자처하는 의사이다. 뼈가 유난히 잘 부러지는 희귀 질환에 걸린 아이들이 있다. 뼈가 부러지지 않도록 인공 고정물을 넣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예컨대, 정강이뼈 속에 길고 가는 쇠막대기를 넣어 골절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므로 뼈가 금세 자란다. 금속 고정물이 없는 부위에서 골절이 생기는 일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뼈가 자라는 만큼 길이가 늘어나는 쇠막대기이다. 금속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고, 커튼 봉처럼 늘어나고 줄어들게 한 것이다. 하지만 희귀 질환이다 보니 그 의료기기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다. 의료기기 회사로서는 이 금속 막대기를 만들어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이 금속 막대기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골절이 잘되기 때문에 일상생활도 어려운 아이들이 생길 위기에 처했다.

조교수는 그 의료기기 회사를 찾아갔다. 의료기기 생산 중단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의사가 찾아와 사정하니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사실 생산을 중단했다. 아이들의 수술이 막막하던 차에 한 중소기업이 그 의료기기를 생산하기로 했다. 의사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가 의료기기를 개선하면 특허권이 생기는데, 그러면 제조업체는 특허료 부담 때문에 의료기기를 생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특허도 포기할 테니 생산 중단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의료기기를 겨우 받아 어린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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