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한계를 재조명할‘여성 대통령론’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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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 앞에 놓인 걸림돌은?

대선 전인 11월26일 김지하 시인이 논쟁거리를 던졌다. “박근혜 후보가 이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이상한가? 이제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도리어 남자들이 이전의 나처럼 산으로 가서 초미(初眉)를 찾아야 할 때이다.”

1970년 5월 <사상계>에 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7년간 독방에 살아야 했던 이 원로 시인의 발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자신을 가두고 고통을 주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을 지지했다는 점,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한 ‘여성 대통령론’이 논란을 부추겼다. 그의 주장이 알려지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신문 기고를 통해 “여성이기 때문에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고 김지하가 말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반대한다”라고 밝히는 등 여기저기서 ‘김지하 유감론’이 터져나왔다.  

그로부터 불과 20여 일 뒤, 우리는 여성 대통령을 현실로 맞게 되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박당선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태생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반(反)지지층의 불편한 시선처럼, ‘아버지 박정희와 유신’의 유산은 늘 그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비록 여성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치열했던 대선 관문을 통과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역으로 박당선인의 최대 핸디캡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퍼스트레이디 시절의 박근혜 당선인과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 ⓒ 박근혜 제공

문후보보다 여성표 3.2%포인트 많아

과연 ‘대통령 박근혜’를 여성으로 보아야 할까? ‘여성 박근혜’는 역설적으로 ‘여성 대통령론’에 관한 끊임없는 논쟁을 만들어온 당사자이다. 김지하 시인 이전에도 그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10여 년 전인 2001년, 진보 언론인인 최보은 당시 <프리미어> 편집장은 “(여성 후보)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를 찍겠다”라는 발언으로 여성계를 논쟁에 휩싸이게 했다.

이번 선거에서 박당선인은 ‘여성’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에 나섰다. 그런데 그가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운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 나왔을 때도 내세운 것이 ‘여성’이었다. 당시 롤 모델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였다. 여자라서 위기에 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이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강한 여성상’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에서 패한 2007년을 뒤로 한 채 다시 맞은 2012년, 박당선인이 내세운 여성의 모습은 5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앞장세웠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와 같은 나눔과 배려가 화두가 된 이번 선거에서 박당선인은 유독 ‘어머니와 같은~’이라는 여성성을 강조한 형용사를 많이 사용했다.

정치인이 선거에 나서면 자신이 가진 모든 부분, 심지어는 약점조차 강점으로 바꾸어 마케팅을 해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여성’이 약점이라고 생각된다면 ‘강점’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면 된다. 이번에는 그게 먹혔다. 여론조사 지표로도 나타난다. 선거 기간에 만난 박근혜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여성 대통령론이라는 화두가 넓은 층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콘셉트이더라. 박근혜는 싫어도 여성 대통령은 긍정적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대선에서도 여성의 표심을 얻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박당선인은 남성 득표율에서 49.1%를 얻어 문재인 후보의 49.8%에 약간 뒤졌다. 반면 여성으로부터는 박당선인이 51.1%를 얻어 문후보(47.9%)를 3.2%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여성이 내세운 ‘여성 대통령론’에도 딜레마가 있었다. 여성 단체들이 바로 그 딜레마에 빠졌다.

보통 여성 단체들은 대선에서 어느 한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여성’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후보로 선출되면서 오히려 고민이 깊어졌는데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단체 관계자는 “여성이 대통령이 된 것은 환영하지만 주인공이 박당선인이라는 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선거가 진행될 때에도 그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는데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여성 운동의 뿌리가 민주화운동인데 그렇다고 독재자의 딸을 ‘여성’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지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함께 봐야 될 문제라서 결론을 내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여성 단체, ‘여성 대통령론’ 놓고 딜레마

물론 과거사와 여성은 떼어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측도 있다. 딸에게 계속 책임을 묻는 것보다 ‘여성 정치인’으로만 보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면 박당선인의 과거사 문제와 여성을 쉽게 분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당선인의 실제 정치 인생은 1974년 육영수 여사의 암살 이후 시작된 22세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퍼스트레이디는 여성과 정치 활동이 결합된 역할인데 박당선인은 한 발짝 더 나섰다. 본격적으로 여성을 규합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1977년 12월8일 박당선인은 사단법인 구국여성봉사단 총재에 취임했다. 일종의 조직화 작업이었는데 자선 모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청와대 내 야당’이라고 불리던 자신의 어머니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알려진 바처럼 구국여성봉사단은 가부장적인 유신 체제를 위해 여성을 동원하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는 좌우로 줄을 맞춰 선 여학생들로부터 군대식 사열을 받는 대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정치에서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담당했던, 그리고 유신 체제의 존속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선 여성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사와 여성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비판은 선거 기간 동안 주로 야권 여성 정치인들이 제기했다. 예를 들어 민주당 중앙선대위 여성위원회는 11월1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성 대통령의 덕목인 평등, 평화 지향성, 반부패, 탈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하며 박당선인의 여성 대통령론을 비판했다. 그런 야권의 비판은 이번 대선의 성별 득표율을 놓고 보면 국민의 공감을 얻는 데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 대표성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여성 정치인의 표상이다”(정미애 박사·한국정치학회 여성분과위원장), “주요 지지층이 나이 든 연령대와 여성·서민층, 즉 정치적으로 소외받고 권력 구조에서 배제된 집단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박당선인을 정치인으로 보는 우선적인 요소는 여성 후보라는 점이고, 그 점에서는 지지 의사에 관계없이 환호한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이진옥 박사·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라는 지적은 야권의 입장에서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치인 박근혜’는 여자이다. 여성임을 줄곧 강조했고, 그래서 여성의 표를 얻었으며 남성들의 세계인 정치판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생물학적 여성을 박당선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비판도 공존한다. 유신의 퍼스트레이디였고 기득권의 중심이었으며,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뛰어든 일이 없다는 주장이다.

박당선인 삶의 궤적에는 여성을 정치에 동원해 성공을 거둔 일과 여성 정치인으로서 성공한 자신이 공존한다. 사회적 약자였고 성차별에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경우, ‘여성 대통령론’이 허구라는 주장은 해명되지 않은 과거사와 함께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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