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국제전화 의혹 제보했다가 해고”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5: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의인상 받은 KT 내부고발자 이해관씨

“(처음 의혹을 접했을 때) 한마디로 머리가 ‘띵’했죠. 우리 회사가 어쩌다가 이토록 국민을 속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하게 되었는지 암담했어요. 또 내가 이 의혹을 밝혀낼 수 있을지가 두려웠어요. 주위에서도 ‘의혹을 밝혀내려 해봐야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죠. 의혹을 폭로한 후 겪어야 하는 어려움보다는 ‘나만 바보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1월3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시사저널> 사무실을 방문한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49)은 애써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회사의 부당한 처사를 떠올리는 대목에서는 다소 흥분한 듯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지난해 세칭 ‘짝퉁 국제전화 논란’을 야기한 ‘제주도 세계 7대 경관 선정 투표’ 과정의 의혹과 부당성을 주장한 공익신고자, 즉 내부고발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호루라기재단과 한국투명성기구, 참여연대가 공익신고자에게 주는 ‘호루라기상’과 ‘투명사회상’ ‘의인상’을 각각 받았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그는 회사의 ‘은밀한 비밀’을 드러낸 이후, 회사로부터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임 처분을 받았다. 이위원장은 ‘공익신고자’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를 얻었지만, 동시에 해고 노동자라는 ‘검은 딱지’까지 붙이고 가야 할 운명을 맞은 것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감사원도 “KT가 위반” 과태료 부과 요구

이해관 위원장의 폭로는 지난해 1월 KBS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에 출연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당시 이위원장은 방송에 출연해 “KT가 지난 2011년 4월부터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전화 투표를 홍보하면서 “실제 국내 전화임에도 국제전화인 것처럼 해 부당한 이득을 챙겼을 가능성”을 폭로했다. 이후 그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이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지난해 4월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폭로를 하기도 했다. 이위원장과 시민단체의 주장을 종합하면, KT는 2011년 4월부터 12월까지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주도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일반인의 투표용 전화가 ‘국외로 착신되는 전화(국제전화)’가 아닌데도 국제전화인 ‘001’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당시 제주도는 공신력이 의심되는 이 외국 재단의 행사에 무려 2백12억여 원의 행정전화 요금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실제 이 전화는 국제전화가 아닌 국내 전화라는 것이 이위원장측의 주장이다.

이위원장의 폭로는 이후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말 감사원은 ‘KT의 불법 부당행위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묵인 관련 감사 청구 사항 감사 결과’를 감사 신청자인 참여연대에 보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감사원은 이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KT의 부당 이득’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면서도, KT가 국외에 실제 착신 번호가 없는데도 국제전화 식별번호를 사용해 “전기통신 번호 관리 세칙을 위반했다”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KT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방통위에 통보했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방통위원장에게는 주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KT는 “원래는 국제전화 투표가 맞았으나, 국민적 관심사인 투표 과정에서 이용자들에게 저렴한 요금을 제공하기 위해 2011년 4월부터 영국의 착신지를 없앴다. 하지만 일본에 투표 집계 내용을 저장했기 때문에 일종의 국제전화 방식이 맞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이위원장은 “결국 전화요금은 착신지가 어디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실체 착신지가 국외가 아닌데도 국제 요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1월3일 광화문 KT 앞에서 공익신고자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이 부당 해고 철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폭로 이후 잇달아 전보·징계 받아

KT는 지난해 12월28일 이해관 위원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무단결근’과 ‘무단조퇴’ 등을 이유로 해임 처분을 내렸다. KT는 이위원장에 대한 징계의결서에서 “(이위원장의) 소속 팀장이 결근 기간 중 10여 차례 이상 (결근이) 불가하다고 통보를 했었다”라면서 “(상급자가) 업무 복귀를 명령했지만 (이위원장이) 고의적으로 따르지 않고 무시해 조직 질서를 문란케 했다”고 해임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위원장은 회사측이 거론하는 해임 사유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척추협착증을 앓아왔고, 지난해 10월 갑자기 병세가 심해져 회사에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회사측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병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해임 사유 중 하나로 회사가 꼽고 있는 ‘무단조퇴’와 관련해서도 “지난해 12월 공익신고자에게 주는 상을 받기 위해 시상식 일주일 전부터 조퇴를 신청했지만 회사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평소보다 1시간가량 일찍 퇴근을 했는데 이를 두고 무단조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위원장과 시민단체들은 그에 대한 해임 처분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전형적인 보복성 징계’라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그는 추가 폭로 직후인 지난해 5월 서울 중구 을지로 지사에서 경기 가평군 지사로 전보 조치되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해 8월 “공익신고를 이유로 (이위원장이) 불이익 처분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라면서 이위원장의 거주지를 고려해 전보 조치하도록 KT에 권고했다. 하지만 KT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이해관 위원장이 회사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1995년 노조원의 무더기 해고 사태를 겪었던 ‘한국통신(KT의 전신) 사태’ 당시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다 12년간 해고자 신분으로 산 적도 있었다. 한국통신 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고 2007년 결국 회사로 돌아왔다. 이미 해고 노동자로 긴 시간을 보냈던 경험 덕분인지 지금 현실이 그리 암담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도 일찌감치 해고를 각오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을 생각하면 울분을 참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는 “(해고 통보를 받고) 화가 났었다. 무엇보다 회사의 잘못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고를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둘이 있는데 아직 학생 신분이고 한창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회사가 작심을 하고 해고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참담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 집안이, 독재 시대에는 민주화운동가 집안이 그랬다면, 지금 시대에는 공익신고자의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위원장의 폭로는 ‘공익신고자의 운명을 선택하는 순간, 해고에 직면해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디선가 나타날 제2, 제3의 공익신고자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는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