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 내 탓이로소이다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3.01.08 16: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프랑스, 정치적 리더십도 실종

올해 세계 경제 동향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유로존의 경기 회복 여부이다. 보통 그 위기의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국가는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재정 위기 문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복병이 있으니, 바로 프랑스이다. 프랑스가 위기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독일에 이은 유로존의 두 번째 경제 대국이 무슨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까.

프랑스는 유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는 유로존의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통일 독일의 잠재력을 우려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늘리는 방법으로 독일이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선택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과거에 그랬던 프랑스가 유로 위기 해결 과정에서 EU 내 주도권을 독일에 빼앗긴 지 오래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을 -0.9~0.3% 사이로 전망하고 있다. 유로존과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국가가 다름 아닌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0%,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상되고 있다. 프랑스 실업자 수는 3백13만명을 넘어서면서 1997년 이후 최고 수치를 기록했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25%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유로 위기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비대해진 정부, 약화된 기업 경쟁력

프랑스 경제의 약점은 유로 위기를 통해서 노출되고 있다. 특히 독일과 비교하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독일은 비용 절감과 개혁을 시도해왔지만, 프랑스는 화폐 평가 절하 없이 공공 부문 지출과 국가 채무에 의존해왔다. 1999년 유럽 단일 통화가 도입되었을 때, 프랑스의 임금은 독일보다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독일보다 훨씬 높은 임금에 국가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

다른 EU 국가들이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작은 정부를 택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공공 부문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57%로 유로존 가운데 가장 많다. 이 문제는 1981년 이후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실패한 원인이 되었고, 국가 채무를 당시 GDP의 22%에서 현재의 90% 이상으로 증가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노동 시장과 연금, 사회 보장과 복지 제도를 개혁하는 데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도 수동적이고 느리게 반응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풍토 때문에 프랑스는 1980~90년대 네덜란드나 스칸디나비아, 영국 그리고 2000년대 독일이 겪은 급진적인 개혁을 거치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프랑스는 이제 이탈리아와 스페인보다 개혁 측면에서 뒤처지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기업 환경 또한 점차 악화되고 있다. 프랑스 기업들은 지나치게 경직된 노동 시장과 높은 세금 그리고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기업의 사회 부담금을 짐으로 여긴다. 이런 장벽들로 인해 신생 기업의 출현은 드물어지고,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인 중소기업 수도 독일이나 이탈리아, 영국보다 적다. 1987년 이후 프랑스 증권시장인 CAC-40에 새롭게 상장된 기업이 없다.

지난 10년간 벌어진 독일과의 경쟁력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프랑스 정부는 푸조시트로엥(PSA)이 계획 중인 6천명 감원, 파리 근처의 공장 폐쇄를 재검토하는 조건으로 구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푸조시트로엥 구제를 위해서 약 70억 유로 상당의 신용 개런티를 해주는 형태이다. 반면 독일의 BMW·폭스바겐·벤츠 등은 이머징 마켓의 판매 호조로 여전히 흑자를 내고 있다.

프랑스 경제가 꼭 약점투성이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강점들이 남아 있다. 프랑스는 2012년 상반기 해외 직접 투자(FDI)가 네 번째로 많은 국가이다. 세계 5백대 기업 순위에서도 프랑스 기업이 영국 기업보다 많다. 프랑스는 최고급 소비재부터 서비스 산업에 이르기까지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특히 교통과 에너지 인프라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비록 신용평가사인 S&P가 세계 5대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국가 신용도를 AA등급으로 하향 조정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높은 노동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고 가계 부채도 양호한 편이다. 게다가 높은 출산율은 장기적으로 프랑스에 강점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출산율 추세라면 향후 25년 뒤에는 프랑스 인구가 독일을 앞지를 전망이다.

한 남자가 프랑스 파리 서북쪽 외곽에 위치한 최대의 상업 지구 라데팡스 거리를 걷고 있다. 현재 프랑스 경제는 높은 실업률, 약화된 기업 경쟁력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 EPA연합
부유세 내걸었지만 나약한 대통령 될까 걱정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958년 프랑스 제5 공화국이 시작한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두 번째 사회당 정치인이다. 올랑드가 중도 우파인 사르코지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1981년 미테랑 대통령 이후 31년 만의 일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1988년 재선되었지만, 미테랑 집권 14년 동안 사회당은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데 두 번이나 실패했다.

이론적으로는 올랑드 대통령이 미테랑 대통령보다 강하다. 왜냐하면 사회당이 의회뿐만 아니라 프랑스 지방자치단체의 다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100만 유로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75% 최고 세율 부과 구간을 신설하는 ‘부유세’ 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지만, 다른 형태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부자들이 국가 재정을 회복하는 데 더욱 많이 기여해야 한다”라며 부유세 법안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배경에는, 만약 자신의 대선 공약인 부유세 법안을 포기할 경우 결국 ‘나약한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부유세 법안에는 프랑스 국민 60%가 찬성하고 있지만 과세 대상자가 2천~3천명에 불과해 정부 재정 확충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프랑스 내에서는 올랑드 대통령과 장 마르크 아이로 총리의 경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각료직을 수행해본 경험도, 사업가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세금 인상 문제에서 기업인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임기를 만 1년도 채우지 못한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도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임 첫해인 2007년보다 더욱 빠르게 하락해 30%에 그치며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2가 올랑드 대통령의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2012년 11월17일자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경제에 대한 스페셜 리포트 제목을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적고’로 뽑았다. 비록 5년 임기 중에 올랑드 대통령은 불과 7개월만 지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결코 프랑스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유로의 운명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에 의해 결정 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의 만성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