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잃은 집값 바닥은 어디?
  • 김진령 기자ㆍ유호 인턴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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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집값 추락세에 더는 토를 달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청담동 앨리스>)에서도 하우스푸어의 존재가 묘사될 정도로 ‘집 가진 가난뱅이(하우스푸어)’는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문제는 집값 추락의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불안을 가중시키고 공포를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바닥은 과연 어디일까. <시사저널>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집값의 바닥과 시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불안의 실체를 확인한다면 적어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닥은 어디인가? 바닥 밑에 지하실이 또 있을까? 날개 없이 추락하는 부동산 시장을 두고 이런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래서 서민이건 중산층이건 요즘 가장 궁금한 것은 집값의 미래이다.

퇴직한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 김성희씨(58)는 궁금증을 넘어서 집값 때문에 초조와 불안을 겪고 있다. 결혼 후 계속 전세살이를 하며 다섯 번 이상 이사한 김씨의 소원은 더는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내 집 마련’이었다. 그는 남편의 퇴직 직전인 2010년 서울 개봉동에 45평형 아파트를 샀다. 생애 첫 내 집. 1억6천만원의 융자를 끼고 5억5천만원에 샀다. 몇 년 살다가 자녀 혼사가 다 끝나면 세를 주고 그 차액으로 노후 자금을 쓸 요량이었다. 문제는 사고 나서 보니 상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시세는 5억원 선. 요즘 그는 수시로 부동산중개소에 들려 가격을 체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서울 등 대도시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걱정은 김씨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재테크의 표본은 대부분 은행 대출을 지렛대 삼아 몇 번의 아파트 갈아타기를 통해 평형과 종잣돈을 불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부동산 가격 추세를 보면 이런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더는 오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이런 ‘부동산 비관론’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이다. 그가 ‘부동산 폭락론’의 최종 버전을 꺼내들었다.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동산 바닥’의 폭과 시점에 대한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계속 ‘터널 속’

그에 따르면 부동산 바닥 시점은 2016년이나 2018년, 하락 폭은 2012년 9월 기준으로 26.4~39.8%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선례’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자국의 소비자 물가 추세에 수렴하는 수준까지 주택 가격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과 소비자 물가 추이를 비교해보면 1996~97년에 아파트 가격이 소비자 물가 수준에 수렴하다가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아파트 가격의 바닥이 깨졌다. 이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아파트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해 2008년 무렵 최고점을 찍었다. 최근에는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서 물가 추세선과의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선소장은 ‘아파트 가격이 소비자 물가 수준에 수렴하는 것이 정상적인 수준의 가격에 돌아가는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최근의 아파트 가격 추세선과 소비자 물가의 추세선을 추정해본 결과, 2016년 2월께 소비자 물가 추세선에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표 참조). 그 시점에서 2012년 9월을 기준으로 26.4%가 추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 5월의 가격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2003년 5월 서울에 집을 산 사람은 2016년 2월에 보유 기간 13년 동안 오른 물가를 감안할 때 집값이 하나도 안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빚을 안고 집을 샀다면 ‘집값 대출액+이자’만큼 손해를 본다는 의미이다.

그는 현재의 집값 바닥을 예측하기 위해 물가지수가 아닌 ‘가계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라는 계산법도 썼다. 가계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얼마나 과도한지 따져보고 이를 근거로 향후 적정 주택 가격 수준을 추론해낸 것이다.

그는 2000년을 기준으로, 서울과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가계 실질 소득에서 시간이 갈수록 크게 벗어나 오르다가 최근 들어 다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한때 아파트 가격과 실질 소득과의 격차가 서울 기준으로 한때 1백50을 넘다가 2012년 9월 기준으로 1백4.6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계 실질 소득 추세선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 그는 가계 소득 추세선과 최근의 서울 아파트 가격 추세선이 하락하는 것을 감안할 때 2016년 3분기에 두 선이 만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시점에서 아파트 가격은 2012년 3분기 기준으로 39.8%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략 2002년 2분기의 서울 아파트 가격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2002년에 아파트를 산 사람은 2016년 9월에 계산해보면 아파트 매입으로 아무런 재산 증식 효과도 보지 못하고, 빚을 지고 산 사람은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의미이다. 재개발 이슈가 붙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한때 평당 6천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3천만원대 초반으로 이미 2002년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박덕배 전문연구위원도 부동산 하락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최근 펴낸 ‘2013년 주택시장의 4가지 특징’이라는 보고서에서 “수도권 집값 하락세 지속, 비수도권도 침체, 규모별 차별화 심화, 전세 시장의 강세가 2013년의 특징으로 올해가 연착륙과 경착륙의 갈림길이다. 부동산 폭락도 우리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부동산 시장이 살려면 어느 정도 가격이 희생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거품 제거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얘기 

선소장은 “나는 새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통해 여러 사람이 덜 다치는 연착륙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가계 부채 문제가 폭발하면서 주택 투매 현상이 일어나고 일순간 주택 가격이 폭락한 뒤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 폭이 완만해지는 형태로 가는 게 좀 더 일반적인 부동산 거품 붕괴 사례라는 것이다.

지난 2003년 무렵 가계 부채가 지금의 절반일 때, “부동산 거품을 빼자. 그렇지 않으면 일본식 경착륙이 온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하지만 관가와 건설사, 언론에서 ‘연착륙을 위해 부동산 부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으면서 가계 부채와 공공 부채만 커지고 오히려 부동산 거품이 더 커졌다. ‘연착륙 대책’이라는 것이 나올 때마다 사실상 가계의 빚이 더 늘어나고 그 돈은 건설사의 신규 분양 실적으로 옮아갔다. 문제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한 사람의 80%가 이자만 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주택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이후 만기가 도래한 대출자의 90% 정도가 계속 만기 연장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줄곧 연장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2001년 1분기에 2백22조원이던 가계 부채가 2012년 3분기에 9백38조원으로 늘어났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 때 개인 부채 비율이 1백31%에서 지금은 1백10%로 내려왔지만, 우리는 같은 기간에 1백45%에서 1백63%로 되레 늘어났다.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다. 9백38조원의 가계 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이 3백99조원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주택담보대출 중 일시 상환 대출의 만기 연장률이 최근 1년간 90%가 넘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갚는 대신 계속 만기 연장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집을 팔지 않고서는 원리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일시 상환 대출 금액은 56조원, 여기에 일시 상환 대출의 평균 만기 연장률 90%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2015년에 도래하는 일시 상환 대출액은 95조5천억원으로 2012년의 두 배 가까이가 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가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후폭풍이 더 무서운 거품 붕괴

부실화된 가계는 금융권을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금융 전문가들 중 상당수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때 대출 주택 담보 인정 비율(LTV) 60% 이하 대출이 2백56조원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이 작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LTV 60% 초과 대출액은 51조원 정도이다.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LTV는 2012년 6월 기준으로 48% 선이다. 즉, 주택 가치의 절반이 안 되는 금액을 대출해 일단 유사시에 경매 등을 거쳐도 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기에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로 타격받을 가능성이 작다는 뜻이다.

선대인 소장은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했다. 집값 10% 하락 때와 20% 하락 때의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LTV가 60% 이상에서 대출해준 구간에서는 집값이 10~20%만 빠져도 LTV가 최고 95% 이상으로 치솟아 담보 부동산을 경매로 처분한다고 해도 대출 원금을 회수할 수 없는 경우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LTV 산정 기준인 국민은행 주택 가격은 실거래가가 아닌 호가 위주의 가격으로 조사된 것이라 실제 주택 거래 가격을 반영할 경우 실제 LTV가 통계치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부동산 거품 하락이 집 담보 대출자들만 희생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권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부동산 폭락론 주시 중

한 대형 은행의 일선 지점장 안호근씨는 “대출 현장에서 보면 매매에 따른 신규 담보 대출이 현격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기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꾸 언론에서 위험하다고 하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집값이 추가로 10% 정도 떨어져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방에 30% 이상 집값이 떨어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사태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가 되면 은행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예를 보고 우리가 미리 준비를 했기 때문에 일본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다

선소장은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우리 부동산 시장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고 거품을 빼겠다는 것은 공상과학소설이다. 거품 빼는 것을 늦출수록 거품이 더 커지고 빚이 더 늘어난다. 어떤 이들은 조금만 지나면 부동산 가격이 반등할 것처럼 말하는데, 근본적으로 인구 구조가 변했고 우리의 부동산 거품이 너무 커졌다. 지금은 부동산 침체기나 조정기가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거품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 처리하는 게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대세는 하락’이라고 말해도 주부 김성희씨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부동산 가게에 들를 때마다 시세를 확인했지만, 거래는 거의 없고 가격을 후려친 급매물만 간혹 거래된다고 한다. 지난해 추석 무렵 김씨는 눈물이 핑 돌 만큼 서운했다. 결혼한 아들이 “빨리 집을 팔라”고 성화를 한 것이다. “내게 이 집이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 30대 중반인 그의 아들은 금융회사에 다닌다. 2006년 결혼한 아들 내외는 결혼 무렵 작은 오피스텔을 사더니 2010년 이를 팔아 1억원 정도의 시세 차익을 남긴 뒤 부동산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전세 생활만 하고 있다. 김씨도 최근 5.3%에서 4.2% 융자로 갈아탔지만 한 달에 원금을 포함해 1백10만원의 ‘생돈’을 계속 갚아나가고 있는 현실이 착잡하기만 하다. 게다가 남편이 정년퇴직해 현금 유입원이 크게 줄어든 상태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금 팔면 손해’라는 생각이 부동산 처분이라는 결단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집을 사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은 안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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