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범죄’ 왜 발생하나
  •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
  • 승인 2013.01.2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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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에서 방화 후 6명을 살해한 범인 정 아무개씨가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다. ⓒ 연합뉴스
‘묻지 마 범죄’는 정식 학술적 개념이나 법률 용어가 아니다. 사람이 많은 길거리나 지하철역 등에서 ‘아무에게나’ 흉기를 휘두르는 흉악 범죄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이 현상을 이해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명칭이 필요해지자 우리 사회는 ‘묻지 마 범죄’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묻지 마 범죄는 ‘납득할 수 있는 동기나 이유 없이 불특정인이나 대상을 향해 공격하는 범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은 ‘개인의 성격 결함’ ‘사회적 스트레스’ ‘촉발 요인’ 등 3가지 요소의 결합에 있다. 묻지 마 범죄가 폭탄이라면, 성장 과정상의 문제 등으로 분노와 공격성, 욕구 불만, 대인 관계 문제 등의 성격적 결함을 형성하게 된 사람들은 ‘화약’이 잔뜩 장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밀어닥치는 실직이나 취직 실패, 채무나 생계 곤란 등 경제적 문제, 이혼이나 불화 등 가정 문제 등은 ‘뇌관’ 구실을 한다. 이렇게 화약이 장전되고 뇌관이 꽂힌 사람들에게 불을 댕기는 ‘점화’ 역할을 하는 사건들을 ‘촉발 요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대다수 ‘촉발 요인’은 화약과 뇌관이 장착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만한 일이거나 오해, 혹은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의정부 묻지 마 사건 범인은 지하철에서 침을 뱉은 데 대해 항의하는 다른 승객의 반응을 촉발 요인으로 삼았고,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역시 인화물질을 들고 라이터를 켰다 껐다 하는 위험한 행위를 지적하는 다른 승객의 당연한 행동이 촉발 요인이었다. 신정동 묻지 마 살인 사건은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촉발 요인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사람이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빠서’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일주일간 6건이 발생하는 등 과거에 비해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던 묻지 마 사건 발생의 3요소인 ‘인격 장애’ ‘사회적 스트레스’ ‘촉발 요인’ 모두가 그동안 증가해왔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대로라면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격장애 발생의 원천인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 잘못된 훈육이 발생하는 고장 난 가정의 증가와 가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치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기만 하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심화되는 경제 양극화와 상처와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비공식적 사회 장치의 붕괴, 경쟁적·적대적 사회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무심하고 적대적인 접촉의 증가, 사람보다는 전자통신 시스템과 더 친숙해져 점점 냉혈이 되어가는 우리 삶의 모습 등이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확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찾아 시행해나가야 한다.

우선, 지금 당장 세상이 싫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으며, 희망도 기대도 없어 더는 살고 싶지 않은데 그냥 혼자 죽기에는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가 상담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공공 정신 보건 및 상담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호흡하고 협력하며 미리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촘촘한 방범 체계를 마련하는 치안의 선진화도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학대와 폭력이 벌어지는 위기 가정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원하며 강제해 피해 아동을 구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경쟁과 성취에만 사로잡힌 비뚤어진 교육 시스템이 바로잡혀 상처받은 아이들, 적응 곤란과 대인 관계 문제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발견해 보듬어주고 살펴야 한다. 이웃과 동료,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우호적인 배려가 생활화하는 사회공동체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불우한 환경이나 재능 부족 등의 문제로 경쟁에서 밀리고 설 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는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역시 중요하다.

묻지 마 범죄는 국가와 사회의 기능에 고장이 나 발생하는 범죄인데도 대한민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상 체계와 치료·상담 등의 지원 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좀 더 깊은 관심과 신중한 태도로,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피해자 지원 방안에 대해 고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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