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에 일감 몰아주기 여전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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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회사 인수를 통해 오너 일가 지분 취득... 밀어주기 내부 거래로 회사 덩치 20배 키우기도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녀가 내부 거래를 통해 지난 6년간 회사 규모를 20배 이상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는 ㈜농심의 건물이나 시설을 관리하는 외부 용역업체를 인수해 2005년 설립되었다. 농심그룹은 관련 회사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오너 일가에게 지분을 양도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매출 밀어주기와 함께 배임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의 회사는 쓰리에스포유라는 시설 관리회사이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일가가 현재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에서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실적은 알 수 없지만, 2011년 말을 기준으로 1백2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금(5억원) 대비 24배 정도 증가한 수치이다. 회사의 주요 매출은 ㈜농심의 사옥이나 공장의 시설 관리를 통해 나왔다. 공시 내용을 분석한 결과 율촌화학이나 메가마트 등 나머지 계열사 매출도 15억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심그룹이 2세에게 건물 및 시설관리 용역을 몰아주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 시사저널 자료사진
2005년 6월 회사 설립 직후부터 계열사 매출을 집중시켰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농심은 2005년 서울 대방동 사옥과 안양공장, 안산공장, 아산공장의 건물 및 시설 관리 용역 계약을 쓰리에스포유와 체결했다. 설립 첫해에만 내부 거래를 통해 자본금보다 4배나 많은 매출을 올렸다. 계열사 매출 의존도는 해마다 증가했다. 2006년 25억6천만원, 2007년 47억5천만원, 2008년 68억1천만원, 2009년 100억원, 2010년 1백6억1천만원, 2011년 1백20억원대를 기록했다. 농심그룹측은 “회사가 커지면서 보안이나 시설 관리를 전문화할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제기되었다. 관련 업무를 하는 용역회사를 인수해 계열사에 편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부 사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회사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쓰리에스포유의 설립일은 6월3일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실체는 이전에 설립된 ㅂ사였다. ㈜농심의 사옥이나 시설을 관리하는 용역회사였다. 농심그룹은 관련 회사를 모두 인수한 뒤 합병해 ㅂ사를 설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너 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쓰리에스포유로 사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신부회장(50%)과 두 딸인 박혜성(30%)·박혜정(20%) 씨가 지분을 취득했다. 지난해에는 ㈜농심의 임원까지 감사에 취임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향후 예상되는 회사의 이익을 오너 일가에게 넘겼다는 점에서 배임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2008년 농심그룹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점을 문제로 꼽고 있다.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의 경우 매년 5월 말에 내부 거래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2012년부터는 분기별로 공시하도록 관련법이 개정되었다. 지켜보는 눈이 많은 만큼 거래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농심 역시 2008년까지 대기업집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계열사인 쓰리에스포유도 경영에 필요한 중요 사항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했다. 하지만 농심은 2008년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매출 2조원에서 5조원으로 확대한 탓이다. 공시 의무에서 자유로워진 농심은 쓰리에스포유는 물론이고, 율촌화학·메가마트·연양농림개발 등에 매출을 몰아주었다. 모두 오너 일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었다.

신동건 공정위 카르텔 조사국장이 주요 증권사의 수익률 담합 사건을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세 지분 높을수록 내부 거래 비중도 증가

이와 관련해 농심측은 “내부 거래를 숨길 의도는 없었다”라고 강조한다. 농심 관계자는 “법적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공시하지 않았다. 투명한 경영을 위해 향후 매출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감사 역시 올해 주주총회에서 외부 인사로 교체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경제 민주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업을 철수하는 것이 최근 재계의 분위기이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의 오너 일가들은 제빵 사업 등 중소기업 업종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나 재계에서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논란이 적지 않지만, 농심은 이런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내부 거래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나머지 중견 그룹 역시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재계는 최근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전후로 경제 민주화 논의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삼성·LG·현대차·SK 등 10대 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자제와 경쟁 입찰 확대를 골자로 하는 자율 선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기업 내부에 설립하는 내부거래위원회도 19개에서 42개로 확대되었다. 공정위 시장감시국 관계자는 “광고나 물류, SI(시스템 통합) 분야의 수의 계약 비중이 여전히 70~90%에 달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다만, 자율 선언 이후 독립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 발주 규모가 소폭 확대된 것은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 이런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2월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이다. 취임식 준비를 중소기업에 맡길 정도이다. 박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중소기업을 좌절하게 하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향후 대기업 불공정 행위에 대한 관련 당국의 제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주요 그룹의 대관(對官)팀이나 정보팀에도 비상이 걸렸다. 모 그룹의 비리가 사정 당국이나 세무 당국의 안테나에 포착되었다는 식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관이나 정보 관련 인력이 사정 당국이나 금융 당국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다수 그룹이 현재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롯데그룹이 2월25일 롯데시네마 내 매점 사업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된다. 영화관 내 매점 사업은 그동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어왔다. 전체 매출액의 70% 정도를 매점 사업이 차지했다. 롯데그룹은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등 총수 일가 회사에 이 사업을 맡겼다. 유원실업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막내딸인 신유씨와 어머니 서미경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시네마통상은 신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일가와 신회장의 동생 신경애씨가 최대 주주이다.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난을 받아왔다.

롯데그룹은 논란이 되고 있는 매점 사업을 직영 체제로 과감히 전환했다. 롯데그룹측은 “경영 효율화를 위한 결정이었다”라고 강조한다. 그룹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영 효율화를 위해 매장 사업 직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정권 초기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박대통령 취임식 날짜에 맞춰 일감 몰아주기 청산을 발표했다. 정권 초 개혁 의지가 강한 점을 감안할 때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대제철도 3월 주주총회에서 정호열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은 최근 현대·기아차에 핵심 강판을 제공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사돈 기업인 삼표그룹에 철광석 정제 부산물인 슬래그를 독점적으로 공급해 공정위에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삼표그룹은 내부적으로 처리하고 남은 슬래그를 마진을 붙여 시멘트업계에 재판매하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부인이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이다. 참다못한 시멘트업계가 최근 공정위에 민원을 제기했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공정위 출신 고위 인사를 영입한 것은 결국 대기업집단을 겨냥한 경제 민주화 정책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 아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특히 대통령 임기 초반에 바짝 엎드렸다가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슬그머니 원위치시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대기업집단 내부 거래 현황 분석 결과’ 자료에서도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46개 기업집단의 내부 거래 금액은 13.24%로 전년에 비해 1.2%나 증가했다. 금액으로 치면 1백44조원 규모이다. 그룹 총수나 2세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 거래 비중이 높았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미만인 회사의 내부 거래 비중은 13.13%에 불과했다. 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내부 거래 비중이 급속하게 상승했다. 30% 이상인 기업은 19.19%, 50% 이상인 기업은 27.99%, 100%인 기업은 46.81%를 기록했다. 특히 2세의 지분율이 50% 이상인 계열사의 경우 내부 거래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은 “문제가 적발되어도 과징금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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