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컬렉터들이 서미의 단골손님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3.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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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100억대 거래…서경배 아모레 회장도 고객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는 누구를 상대로, 어떤 그림을 거래했을까. <시사저널>은 서미갤러리의 ‘그림 거래 내역’이 담긴 상당 분량의 자료를 입수했다. 이들 자료에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부터 몇백만 원 단위의 신예 작가 작품까지 수백 점의 거래 내역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리온그룹과의 거래다. 2011년 5월 검찰은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회사 돈으로 산 미술품 10점이 담 회장 자택에 설치된 사실을 확인하고 횡령죄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이때 밝혀진 작품 내역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프란츠 클라인의 <페인팅 11>과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꽁초 장식장>,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독일 표현주의 화가 안젤름 키퍼의 작품 등 10여 점이다. 총 가격은 140억원에 달했다.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 는 국내에서 20억원에 거래될 만큼 인기가 높다. 사진은 2009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展’. ⓒ 연합뉴스
작품 담보로 대출받아 다시 작품 매입

본지가 입수한 ‘서미-오리온 조 사장’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이보다 고가인 작품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abstracts bild>(26억원), 앤디 워홀의 <웃는 재키>(20억원), 톰 와셀만의 <선셋 누드>(16억원), 데미언 허스트의 <dots>(2억5000만원), 로버트 만골드의 <빨간 타원과 초록 타원을 위한 연구> 등 외국 작가 작품과 남관·김환기·이우환·조성묵 등 국내 작가의 작품 41점이 나와 있다. 이 자료에 표시된 작품값만 100억원대에 육박한다. 이에 대해 오리온그룹 관계자는 “오리온 법인이 서미갤러리와 거래한 것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정식 거래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미-조 사장’ 자료에 대해 “그 파일에 담긴 것은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의 개인적인 거래인 것 같아서 특별히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홍송원 대표는 다양한 방법으로 미술품 거래를 성사시켰다.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사모펀드에도 관여했고, 저축은행과 일종의 사모펀드를 만들어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이디어도 냈다.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과의 거래는 2011년에 이뤄졌던 것으로 나온다. 홍 대표는 2011년 9월 알베르토 쟈코메티의 브론즈 작품과 박수근의 <두 여인과 아이> <노상의 여인들>, 김환기의 <무제>, 싸이 톰블리의 <Bolsena> 등 6점의 작품을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에게 담보로 제공했다. 서미갤러리는 2012년 2월에서 4월 사이에 김 대표에게 67억원을 갚았다.

톰블리의 작품은 가로 200.7X240.5cm의 대작으로 시가 160억원으로 평가된다. ‘담보 제공 계약서’에 따르면 이 작품이 팔릴 경우 ‘선적일로부터 2주 이내에 규정된 입금 계좌로 300만 달러를 입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서미는 이 작품을 미국의 경매회사에 약 624만 달러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서미의 다른 자료를 보면 이 그림은 2010년 8월 50억원을 주고 확보한 것으로 돼 있다.

서미갤러리의 거래 내역을 보면 유독 제2 금융권과 거래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술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시 미술품을 매입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말 서미는 공평저축은행과 부산솔로몬저축은행을 상대로 미술품 매매 계약서를 썼다. 작품을 담보로 서미에 대출을 한 두 저축은행이 서울옥션에 보관돼 있는 작품 9점에 대해 담보권을 행사해 서미에 이 작품을 81억원을 받고 처분한 것. 작품 중에는 루이스 부르조아의 <the rectory>(19억여 원), 필립 구스통의 <인사이드>(14억여 원), 피카소의 <le peintre>(29억여 원) 등 유명 작품이 들어 있다.

서미는 2010년을 전후해 붐이 일었던 아트펀드에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투자신탁과 116억원의 펀드를 결성했고, 하이자산운용과 236억원, 미래상호신용금고와 225억원, 동양생명과 7억원, 서울옥션과 35억원, 신라저축은행과 60억원짜리 펀드를 조성했다.

한투자산운용과 결성했던 펀드에서 매입한 작품 중 필립 구스통의 <cigar>라는 작품은 미술관을 준비 중인 컬렉터 박 아무개씨에게 20억원에 팔렸다. 담보로 잡혀 있던 작품 중 평가액 30억원인 데미언 허스트의 <after stubbs>는 오리온에 넘겼다. 폴 스미스의 줄무늬를 연상시키는 모리스 루이스의 물감 흘리기 작업 <no.1-37>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2억원에, 장 뒤뷔페의 <figureⅡ>도 서 회장이 6억원에 가져간 것으로 나와 있다. 서 회장은 댄 플래빈의 <untitle>도 2억원에 구입해 미니멀 아트에 관심이 많음을 드러냈다. SPC그룹의 안주인 이미향씨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대화>를 25억원에 사갔다. 이 펀드는 지난해 3월 청산됐고, 11%의 수익률을 올렸다.

아트펀드 지렛대 삼아 현금 확보

하이자산운용의 아트펀드에 담보로 제공됐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은, 독일의 신표현주의 거장 안젤름 키퍼의 ‘양치식물의 비밀(geheimnis der farne)’ 연작이다. 모두 20점에 달하는 이 작품에는 지난 2008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던 키퍼의 개인전에 출품됐던 작품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작품에는 정가 5억원의 가격이 붙어 있다. 그 밖에도 2010년 신세계백화점(신세계갤러리)이 국내에서 대규모 전시를 주최한 장 뒤뷔페의 ‘우를루프’ 시리즈 작품 두 점(각 19억5000만원)과 인기 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안젤름 키퍼의 ‘양치 식물의 비밀’ 연작 일부. ⓒ AP포토
<stripteaser>(110억원), 윌렘 데 쿠닝의 <우먼>(23억원) 등이 들어 있다.

이 펀드가 매입한 루이스 부르조아의 <스파이더>는 해외로 팔려나갔고, 알렉산더 리버만의 <캐슬>은 아직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펀드도 지난해 6월 청산되면서 8.5%의 수익률을 올렸다. 아트펀드에 관여했던 증권사 관계자는 “사모펀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작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수익이 날 경우 초과 수익분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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