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요새는 만나기 힘든 거물이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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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한류 전도사 3인에게 듣는 비화

한류 3.0이 가속화하고 있다. K팝, 드라마, 게임에 이어 소설, 뮤지컬까지 한류 대열에 합류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양장본 소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뮤지컬인 <광화문연가>는 한류 스타를 투입해 일본에서 K팝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박순태 문화체육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과 김현승 재단법인 서울예술단 이사장, 서희덕 한국음악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은 한류 태동기 때 ‘한류 붐’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한류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1990년대 말이다. 국내 가수가 중국 등에 진출하고, 한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다. 이들은 1999년 10월 국내 가수 12명의 노래를 중국어로 제작했다. 유진박·엄정화·안재욱·베이비복스 등 인기 절정의 가수가 대거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병역 회피 논란으로 10년째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가수 유승준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당시 발매한 앨범의 제목이 <韓流(한류)>였다. 박순태 실장은 “공신력을 위해 중국 최고의 음반 프로듀서인 장아동 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한 달간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 음반이 중국 방송의 전파를 타면서 한류라는 용어가 현지 언론에 언급됐다. 한류가 국내 언론에도 본격적으로 오르내리자 김한길 장관은 박순태 실장을 호출했다. 박 실장은 “김 장관이 ‘한류가 뭐냐’고 물어서 한참 동안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희덕 한국음악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은 “홍콩 스타TV를 통해 여러 차례 K팝이 방송됐다. 친숙한 멜로디를 중국어로 부르니 빠르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2000년 2월에는 그룹 H.O.T의 베이징 공연이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드라마까지 중국에 진출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류’로 인식됐다. 2001년에는 중국어·영어·일본어 등 3개 버전으로 제작된 <한류2>를 발매했다. 서 이사장은 “중국어를 가장 어려워했다. 가수의 발음을 현지어로 일일이 교정하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예산 없어 교통비만 받고 앨범 제작 참여

이들이 생각하는 한류는 단순히 한국 문화를 알린다거나, 콘텐츠를 수출하는 것 이상이다. 한류의 확산은 한국 상품 구매와 한국에 대한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문화적 가치가 1조원 이상일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박순태 실장은 “한류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최소 5조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한류가 형성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수출 규모가 최대 10배 가까이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형 자산의 가치는 90조원에 육박한다. 박 실장은 “우리가 해외에서 무시당하지 않는 것도 문화 때문”이라면서 “우리 문화가 정치나 경제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일본은 국제 영화제에 마련된 자체 홍보관을 통해 자국 문화를 전파했다. 쇼케이스에서 공연하는 일본 가수와 관중을 보면서 김현승 이사장은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 박지원 장관 시절 문화예술 예산이 처음으로 1%를 돌파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문화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타내기 위해 기획재정부에서 밤을 샜던 적이 많다. 당시만 해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중국어로 제작해 초창기 ‘한류 붐’을 이끌었던 앨범 . ⓒ 시사저널 전영기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가수는 사실상 교통비만 받고 일을 해야 했다. 이수만·박진영 등 유명 제작자가 적극적으로 협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이사장은 “요즘 만나기가 쉽지 않은 거물이다. 당시만 해도 이들과 수시로 만나 소속 가수의 해외 진출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수만씨는 중국 진출에 대한 의지가 컸다. 김 이사장은 “H.O.T가 전성기일 때 자주 만났다. 중국뿐 아니라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있다. 특히 한류를 영리적으로 악용하는 방송사에 대한 우려가 컸다. 박순태 실장은 “방송사가 돌아가면서 한류 가수의 공연을 하고 있다. 현지에서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승 이사장과 서희덕 회장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한류가 계속 확산되기 위해서는 민·관이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효진 PD ⓒ정덕현 제공
<런닝맨>이 어떤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

뭐 대단한 걸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하던 걸 하는 건데, 다만 가끔씩 한 번 정도 특별한 것을 해본다는 그런 느낌이다. 해외 반응을 보면서 더 키우거나 판을 넓히겠다는 욕심은 없다. 예능 한류라고 해서 굳이 뭘 찾아다니면서 인기를 확인하고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열심히 하던 걸 하다 보면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일 게다. 오히려 이처럼 좀 큰 프로젝트 다음에는 사실 소소한 프로젝트를 일부러 하기도 한다.

온 가족이 시청하는 <런닝맨>은 조금 어려운 게임을 하면 채널이 돌아가고 너무 쉬우면 시시해질 텐데.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는 않다. 벌써 3년째가 됐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다. 늘 참신한 아이디어를 살려야 <런닝맨>이 산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렵기도 하고, 너무 아이디어를 강조하다 보면 시청 세대 폭이 줄어드는 단점도 있다. 적절한 선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어려웠지만 늘 잘 넘어왔다.

이번에 보니 이광수에 대한 해외 팬의 반응이 대단한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유재석은 말할 것도 없고 김종국, 하하, 개리, 송지효, 지석진까지 플래카드는 다 비슷비슷한 숫자로 들어 있다. 다만 이광수를 연호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이광수를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김주형 PD는 자막에 이렇게 달았더라. ‘이광수라는 이름이 베트남어로 다른 뜻이 있는 거 아

닌가’라고.(웃음) 함께 갔던 이광수와 같은 소속사의 이동욱은 이광수 인기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결국 이광수 에스코트까지 자청해서 했다.

<런닝맨>의 해외 팬덤에서는 유재석의 존재감이 절대적인데.

유재석의 해외 팬덤은 막강하다. 거리를 가면서도 외국인이 “메뚜기!”라고 부를 정도다. <무한도전> <X맨>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팬에게 쌓인 인기가 상당하다. 유재석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멤버를 챙겨주는 배려심이 깊다. 제작자로서도 잘 통한다. 선수다. 동료들에게도 평판이 좋다. 그래서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유재석은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의미를 두는데, 그런 면이 때론 제작자와 부딪치기도 한다.

예능 한류의 가능성은?

<런닝맨>을 두고 예능 한류를 거론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면서도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 늘 하던 대로 할 것이고, 우리가 잘하는 것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해외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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