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려도 상투 꼭지 날아갈라
  • 노진섭·이석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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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마다 정보망 총동원해 대책 마련 부심 삼성그룹, 세종시 전담반 가동 소문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검찰 등 사정 당국의 기업 옥죄기가 가시화되면서 재계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불안감과 불쾌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새 정부와 각을 세울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거래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도 아닌데도 계열사 거래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 본부장은 3월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주최로 열린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공청회’에 참석해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SI(시스템 통합)나 광고, 건설, 물류 사업은 보안성이나 효율성이 관건인 만큼 계열사 간 거래가 불가피하다”며 “개정된 증여세법이나 상법을 통해 제재할 수 있음에도 기업들을 압박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사정기관이 새 정부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해 기업 사정을 몰라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재계는 내·외부 정보망을 풀가동해 정보 수집과 함께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공정위의 부당 내부 거래 조사는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1999년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관련 조사가 적지 않았다. 이를 기초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 초 10대 그룹이 발표한 자율 협약 내용을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전직 청와대 인사들까지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권 교체기 전후로 청와대 인사들이 기업 대관팀이나 정보팀으로 넘어갔다. 몇몇 기업에서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활용해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삼성그룹과 SK그룹이다. 내부 거래 물량이 많은 곳으로 조사된 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는 눈치다. 삼성의 경우 내부 거래 물량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대응 파트를 구성했다. 공정위는 올 초 4대 그룹 내부 공시 이행 여부를 조사했다. 이때도 삼성전자가 창구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정부 청사가 몰려 있는 세종시에 상주하는 전담반을 미래전략실 내에 꾸렸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 시사저널 이종현·임준선·박은숙
일부 기업, 청와대 출신 인사 영입에 심혈

SK그룹은 계열사별로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과거의 경우 지주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 법정구속 이후 ‘따로 또 같이 3.0’ 체제가 출범했다. 기본적으로 각 사가 대응하고, 동반성장위원회나 커뮤니케이션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그룹 관계자는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이 올해 SK C&C와의 거래 규모를 최대 14% 줄였다”고 밝혔다.

재계는 검찰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초부터 일부 그룹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기업집단은 모두 네 곳이다. 효성, CJ, LG, 한진그룹 등이다. 검찰은 검사 한 명당 조사할 기업 한 곳씩을 배당해 조사를 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관련 직원을 통해 검찰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아직까지 어떤 기업을 수사할지는 정해지지 않아 유심히 지켜보는 단계”라고 전했다.

롯데그룹의 경우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 승인 과정에서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새 정권이 출범하면 ‘사정 1호’ 기업이 될 것으로 재계에서는 내다봤다. 롯데그룹이 2월25일 롯데시네마 내 매점 사업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화관 내 매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졌다. 수익성이 좋은 까닭인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가족이 운영해왔다. 롯데는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직영 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박 대통령 취임식 날짜에 맞췄다. 3월 초 단행된 정기 인사에서는 고졸 판매사원 출신 임원의 탄생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지금도 롯데는 임원 승진을 조건으로 부장급 여성들을 대거 스카우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기관의 파상 공세를 피하기 위해 여성이 대통령인 현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른 유통업체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어떤 식으로 불똥이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신세계도 그렇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최근 계열사(신세계 SVN) 등에 부당 지원한 것이 문제가 돼 검찰에 고발당했다.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국정감사 불출석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는 수모를 겪었다. 신세계의 한 간부는 “이마트의 마이너스(적자)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부당 지원 문제까지 겹쳐 곤란한 상황”이라며 “사정 정국에서 또 어떤 뇌관이 터질지 모르겠다”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신세계가 최근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화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유통기업 임원은 “어떤 기업은 이미 (대통령 정책과) 코드 맞추기에 들어간 것 같다”며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따라 유통업계는 소비자를 위한 각종 행사에 돌입한 모습”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롯데·신세계 등 새 정부 ‘코드 맞추기’ 나섰나

보조금 과다 지급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이동통신업계는 납작 엎드렸다. KT의 한 간부는 “오너가 없는 기업인 만큼 다른 곳과 성격이 다르다”면서도 “청와대에서 얼마 전 얘기가 나온 휴대전화 보조금이 공정위 조사에서 이슈가 될 것으로 보고 숨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정지에도 아랑곳 않고 지급하던 보조금 배짱 관행도 최근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3월25일 서울 용산 부근의 휴대전화 대리점에는 소비자의 발길이 뚝 끊겼다. SK텔레콤은 3월21일 가입자 간 통화나 문자에 대한 전면 무료화를 선언했다. 영업 일수 기준으로 출시 3일 만에 누적 가입자 20만명을 돌파하는 등 반응이 좋다. 정부 정책에 알아서 맞춘 모습이다. SK텔레콤 간부는 “매출이 정체 상태여서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20% 감소하는 등 위기의식이 높다”면서도 “정부가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펴는 만큼 기업도 뭔가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여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가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이동통신업계의 저승사자로 떠올랐다. 이동통신사들의 대관 업무 부서는 관련 부처의 정보 입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자진해서 사퇴한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후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사정의 성격이 달라질 것 같다”며 “겉으로는 이동통신 사업 진흥을 위한 부서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기관이 늘어난 셈이다.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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