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군사 훈련 때 중국 국경수비대 배치 했다
  • 중국 선양·단둥│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4.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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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 지역 단둥·선양 현지 취재 핵실험 직후 차량 통행 줄었으나 곧 정상화

한반도가 짙은 전운에 휩싸였다.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3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서 촉발한 위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8일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미국은 F-22 전투기를 비롯한 최신예 무기들을 한반도 하늘과 바다로 속속 출격시켰다. 북한 역시 남북 불가침조약, 정전협정 등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며 개성공단 문도 걸어 잠갔다. 북한의 전쟁 위협과 무력시위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곳곳에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불안을 넘어 전쟁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미와 북한이 서로 삿대질하며 비난전을 벌이고 무력시위를 통해 상대방의 기세를 꺾으려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3차 핵실험 이후 새롭게 떠오른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다. 2006년과 2009년 북한이 1, 2차 핵실험을 했을 때만 해도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던 중국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던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도 찬성하고 나선 것이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전원이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중국의 영향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그러자 “북·중 혈맹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분석까지 나왔다.

마오쩌뚱(모택동)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론’을 내세우며 한국전쟁에 뛰어들었다. 그의 큰아들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우방과 동맹 단계를 넘어 혈맹이었던 북·중 양국이 김정은-시진핑 체제로 바뀌면서 연대의 고리가 느슨해진 것일까.

<시사저널>은 4월1일부터 5일까지 5일 동안 중국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 성)의 요충지인 선양(瀋陽)과 압록강을 경계로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마주하고 있는 단둥(丹東) 지역을 취재했다. 이곳은 남북한에서 온 여행객뿐 아니라 무역업자, 주재원, 외교관, 정보요원 등이 한데 뒤섞여 있는 지역이다. 특히 한반도 정세에 따라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빠르게 교차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한랭전선이 드리워졌는데 핵실험과 유엔 결의안 채택 이후 더 강해졌다. 남북한 사람이든 조선족이든 서로 만나게 되면 현 정세에 대해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핵실험’ ‘김정은’ 등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어다. 취재진은 호텔 커피숍에서, 거리에서, 식당에서 북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목소리를 낮춰야 했고 그들 역시 취재진이 남한 사람인 것을 곁눈질하며 의식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중조우의교(끊어진 압록강 철교 옆)를 통과하는 차량에 대한 검색이 강화됐다. ⓒ 시사저널 박은숙
북한 식당에서 팔던 비아그라·담배 단속

취재진이 선양에 도착한 4월1일 눈과 비가 오락가락했다. 한국으로 치면 한 달 전쯤인 3월 초에 해당하는 날씨였다. 이날 취재진은 북한이 운영하는 칠보산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기자는 2010년 6월에도 이 호텔에 묵었던 적이 있다. 당시는 회색빛 무채색이 호텔 로비와 객실을 가득 채웠는데 이번엔 밝고 산뜻한 분위기로 확 바뀌어 있었다.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해 4월 재개장했다고 한다. 이 호텔에서 한반도의 긴박한 군사적 긴장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여느 호텔과 다름없이 평범한 풍경이었다. 취재진을 남조선에서 온 여행객으로 알고 있는 직원들의 반응은 다른 중국 투숙객을 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인공기 배지를 단 미모의 여성 복무원(직원)은 밝은 미소로 ‘남조선 손님’을 맞이했다.

칠보산호텔 객실에서는 조선중앙텔레비전 방송을 ‘통째로’ 시청할 수 있었다. 이날 뉴스에서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주도했다며 미국 정부와 한국의 보수 언론을 강하게 질타했다. 금방이라도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뉴스 바로 다음 프로그램에서는 모내기를 언제 해야 적당한지, 옥수수는 언제 파종해야 작황이 좋은지 등을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전했다. “전쟁 불사”를 절절한 목소리로 외치면서도 농사법을 잔잔하게 계몽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중조우의교를 걸어가는 중국인 관광객들. ⓒ 시사저널 박은숙
유엔 제재 결의안 채택 후 북 차량 검색 강화

이번 취재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의 혈맹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여러 정황과 증언을 접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예전에는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 북한산 비아그라·담배 등을 손님에게 은밀히 판매하는 것을 눈감아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중국 공안이 이를 단속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선양에 체류 중인 한 한국인 사업가는 “중국 정부가 그동안 북한에서 밀수해온 물건을 북한 식당에서 파는 걸 용인해줬다. 그렇게라도 해서 외화벌이를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속이 심해져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한동안 싸늘했다고 한다. 당장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쌀 등 물동량이 확 줄었고, 북한으로 가는 차량 검색도 상당히 강화됐다는 전언이다. 단둥에서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통해 북한 신의주로 물자를 실은 트럭이 평상시에는 하루 평균 60~140대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반대로 북한에서 중국으로는 트럭 20~30대 정도가 물자를 싣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동참하기로 한 직후 3일 정도는 물자를 실은 트럭이 하루 10대도 북한으로 넘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 국경수비대와 해관(세관) 등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차량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단둥 지역 무역업자들은 “(유엔 제재 결의 이후) 단둥 세관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차량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예전에는 대충대충 했는데 밀수품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전했다.

중조우의교 인근에서 대북 무역을 하는 한 조선족은 “단둥 세관에서 조선(북한)으로 들어가는 트럭 숫자를 보면 교역 규모를 알 수 있다. (유엔 제재 결의안 통과 직후)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현재는 예전처럼 교역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단둥에 머무른 4월2일부터 4일까지 3일 동안 매일 오전 10시쯤부터 단둥에서 중조우의교를 건너 신의주로 타이어 등을 실은 트럭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열차와 ‘묘향산 려행사’ 버스 등도 국경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중국의 압록강 국경수비대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단둥 주민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지 보름 정도 경과한 3월25일 오후 압록강 건너 신의주시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날 북한 신의주시에서 3~4시간 동안 집합훈련이 있었다. 북한 상공에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기도 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자 중국측 국경수비대가 무장한 채 압록강변에 무려 10㎞ 정도 길게 배치됐다. 압록강변에서 대북 무역을 하는 한 조선족 상인은 “단둥에 산 지 7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다. 압록강 상류 지역부터 단둥을 거쳐 황금평까지 길게 군인들이 깔렸다. 아무래도 (북·중 간) 정세가 긴장되다 보니까 조선에서 그런 훈련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선양과 단둥에서 만난 사람들은 “북·중 관계가 지금은 다소 소원하다 해도 일시적일 것”이라며 “중국의 대북 제재가 과장되고 왜곡되게 알려졌다”고 전했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북·중 관계가 단절되려면 무엇보다 중국이 식량과 원유 등에 대한 대북 지원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며 “북·중 관계가 과거만큼 혈맹 관계는 아니더라도 60년 이상 된 동맹의 고리는 여전히 단단하다”고 분석했다.

당장 중국과 북한이 단둥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동 사업도 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단둥 시 외곽 신도시에서 신의주시로 연결되는 ‘신압록강대교’ 공사도 한창이었다. 2011년 2월 착공해 2014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압록강대교 완공과 함께 문을 열게 될 수십만 평에 달하는 보세창고(물류센터) 공사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신압록강대교와 보세창고가 완공되면 이곳이 북·중 교역의 1차 관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유엔 결의안 이후 이 신압록강대교 사업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사 현장 관계자는 “날씨가 궂은 날을 빼놓고는 공사가 중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한 외교 당국자는 “일부 언론에서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일부만 보고 마치 전부 그런 것인 양 보도하면 우리 외교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국내 언론의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다.

그런데 북·중이 2011년 6월8일 착공식을 가진 ‘황금평(黃金坪) 경제 지대 공동 개발’ 사업은 답보 상태였다. 북·중은 신의주시 인근에 있는 곡창지대 황금평에 정보, 관광·문화, 현대 시설의 농업, 경공업 등 4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착공 당시 우리 정부는 ‘전시용 행사’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착공식이 열린 지 거의 2년 만인 4월2일 취재진이 황금평을 찾았다. 개발 사업을 진행한 흔적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농사를 지을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단둥 주민들은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북·중 관계 큰 흐름 변하지 않을 것”

단둥 지역의 한 언론인은 2010년 6월 기자와 압록강변을 거닐며 북한과 중국의 떼려야 뗄 수 없는 함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이 망하면 미군이 압록강까지 오게 된다. 그러면 중국은 이 국경선에 군대를 배치해야 한다. 그 군사 비용도 천문학적이지만, 그보다 미국이 중국의 안방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현재의 북남 체제 유지를 바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아무리 중국 정부의 말을 안 듣는다 해도 식량 등을 지원해주면서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북한도 이를 알기 때문에 중국에 원유와 식량 등을 지원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취재진이 5일 동안 선양과 단둥 지역을 취재한 결과,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 자세가 다소 강경해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의 큰 틀이 바뀐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중국 한족과 조선족 등은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북한이 진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면 조용히 공격해야지 저렇게 떠드는 것은 전쟁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북한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에 대해 “북한 인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전술이다” “김정은이 군부를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다”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의 전쟁 위협이 미국이나 한국 등을 겨냥한 ‘대외용’이 아닌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내용’이라는 분석이다.

선양과 단둥에서 만난 중국 조선족과 한족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도 감지됐다. 선양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한 사업가는 “중국 사람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는 혈맹 관계인 북한에 대해 각별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도 어린데 무얼 하겠어’라며 얕잡아 보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중국 단둥 시내에 있는 북한 광선은행(점선 표시). ⓒ 시사저널 박은숙
따라서 은행 위치도 대북 무역업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물론 일반인은 이 은행에 출입할 수도 없다. 단둥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사업가는 4월2일 기자와 만나 “한국 언론에서 광선은행 등이 폐쇄됐다고 보도했는데 오보다. 다 소설이다. 지금 정상 영업하고 있으며 어제도 은행에서 거래하고 왔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4월4일 오전 이 은행을 방문했을 때도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다만 취재진과 동행했던 조선족 대북 무역업자는 “기자들이 은행에 들어가려고 하면 은행에서 중국 공안에 신고할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더 위험하다”며 취재진이 은행에 들어가는 것을 만류했다. 이에 취재진은 은행 관계자를 직접 접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 언론이 광선은행이 잠시 문 닫은 것을 두고 중국이 폐쇄했다고 왜곡 보도했다”고 말했다. 광선은행에 대해 잘 아는 또 다른 인사도 “광선은행 직원이 무슨 일이 있어서 잠시 북한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후 문을 열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중국 당국이 환치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지금은 상당히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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