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승천기 숨기고 ‘경제 정벌’ 나서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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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유통·외식·금융 등 한국 시장 무차별 침투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버블 붕괴와 금융 위기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이 최근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부산에서 서울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까지. 유통산업발전법 등 규제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일본계 기업의 확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일본계 기업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한국 시장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동종 업계 관계자와 일부 시민단체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까지 벌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저기서 외국 기업 또한 법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은 유통·외식·의류·항공·금융 등 전 방위적이다. 특히 유통산업발전법으로 국내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막힌 유통·외식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일본에 수백여 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유통업체인 ‘바로마트’와 ‘트라이얼’이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마트는 모두 16곳으로 이 가운데 15곳이 부산·경남 지역에 밀집해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 본사를 둔 ‘트라이얼컴퍼니’는 2004년 한국 진출을 위해 ‘트라이얼코리아’를 설립했다. 트라이얼 계열의 마트는 중소 편의점형 슈퍼마켓인 ‘트라박스’와 기업형 슈퍼마켓인 ‘트라이얼마트’ ‘트라이얼슈퍼센터’로 나뉜다. 일본 트라이얼 계열 마트는 부산에 다섯 곳, 경남에는 김해 한 곳, 함안 두 곳, 밀양 두 곳, 창원 두 곳이 있으며, 경북에는 영천에 한 곳이 진출해 있다.

일본 기후에 본사를 두고 있는 또 다른 유통기업 ‘바로’도 한국 공략에 나섰다. 바로마트는 2009년 ‘바로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진출을 준비한 후 현재 부산에 한 곳, 경남 김해에 두 곳의 마트를 냈다.

트라이얼은 일본 내에 131개 매장을 두고 연 매출 3조3000억원을 올리고 있다. 바로마트도 일본 내 492개 매장에서 연 매출 5조3000억원을 올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유통업체다. 트라이얼코리아의 국내 매출액은 2011년 510억원에서 지난해 700억원대로 훌쩍 뛰었다. 바로마트는 아직 매출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바로마트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점포가 문을 열어 막 시작한 단계라 현재는 이윤이 남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다이소, 일본계 마트인 트라이얼 슈퍼센터 매장, 서울 중구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 ⓒ 시사저널 이상민·트라이얼코리아 홈페이지 제공
규제 사각지대 파고드는 전략

‘천원샵’의 원조 격인 일본계 잡화점 ‘다이소’ 또한 무서운 속도로 국내에 퍼져 나가고 있다. 현재 국내 매장 수가 880곳에 달하며 매달 10여 개의 신규 매장이 문을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시에 연면적 10만㎡의 물류센터를 지은 것 또한 주목된다. 다이소는 올해 연 매출 1조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의류업계에서도 일본 기업이 강세다. 일본 중·저가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2005년 국내에 처음 진출한 이후 현재 전국에서 9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 침체에도 매출액 5550억원을 올리면서 전년보다 69%나 성장해, 국내 SPA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일본 외식 브랜드도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국내 대형 외식업계의 진출이 막힌 틈새를 공략해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개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도시락 브랜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호토모토와 햄버거 브랜드 1위 기업인 모스버거가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본 외식업체 ‘토리돌’이 운영하는 우동 전문 체인인 마루가메제면, 일본 최대 스파게티 전문점 고에몬, 일본 라멘 잇푸도 등도 지난해 말 한국에 매장을 냈다. 앞서 2011년 12월 서울 종로에 1호 매장을 낸 ‘스시로’는 일본 회전초밥업계 1위 브랜드다. 스시로는 오는 2020년까지 전국에 80개 직영점을 내는 것을 목표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금융권에도 일본계 자본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일본의 초저금리 자금을 활용해 일본 자본이 국내 저축은행과 대부업 시장 장악에 나선 것이다. 일본계 대부금융회사인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브랜드명 러시앤캐시)와 산와대부주식회사(브랜드명 산와머니)는 이미 국내 대부 시장 1, 2위를 차지하며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수익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저축은행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일본 최대 투자금융그룹인 일본 SBI금융그룹은 지난 2월 중순 국내 1위 저축은행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일본 오릭스그룹은 푸른저축은행 계열사인 푸른2저축은행을 인수해 오릭스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지난해엔 일본 카드·대부업체인 J트러스트가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의료와 항공 분야에서도 일본 바람이 불고 있다. 가정용 혈압기 시장 세계 1위인 일본계 의료기기 제조회사인 오므론헬스케어는 지난 1월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일본의 저비용 항공사인 ‘피치’ ‘스타플라이어’ ‘에어아시아재팬’ 등도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에 진출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 기업의 진출 러시가 유통산업발전법 등으로 한국 기업의 진출이 막힌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라이얼’이나 ‘바로마트’와 같은 일본계 유통업체만 해도 그렇다. 이들 업체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매장 면적 3000㎡ 이내의 규모로만 마트를 출점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유통업체의 진출이 막힌 곳을 역으로 파고드는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엔저 장기화에 따른 대책 마련해야

외식 분야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2월 외식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국내 외식업체들의 점포 출점을 제한한 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일본계 외식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매장 확보에 나섰다. 아베 정권의 엔저(低) 유도 정책으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앞으로 공세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업계 관계자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관련법에 관한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을 비롯한 150여 시민단체는 3월15일 부산·경남 지역에 진출한 일본계 마트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의 엄태기 실장은 “일본계 마트는 24시간 연중무휴 개장하며 주변 골목 상점들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며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골목상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장기화될 일본의 엔저 정책에 대해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중관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엔저(정책)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시장 원리가 아닌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 나온 현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일본 경제가 경직돼 있어 한국에서 일본의 자금을 운용하려고 하다 보니 앞으로 금융권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분야는 최후의 보루”라며 “이마저도 개방된 참이라 금융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법·제도의 완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브랜드가 일본 브랜드에 맞설 수 있게 경쟁력을 갖추는 등 본질적인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엔저로 인해 한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 면에서 일본과 더 치열하게 겨루게 됐다”면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켜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15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 있는 일본계 트라이얼마트 앞에서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경남 지역에 대거 진출해 있는 일본계 슈퍼마켓이 ‘한국 기업’으로 위장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실제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일본계 중소 편의점형 슈퍼마켓 ‘트라박스’는 매장 입구에 ‘한국 기업’임을 강조하는 문구를 표시하고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직능경제인단체 총연합회,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등 자영업 단체 및 시민사회 단체는 3월15일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트라이얼마트 앞에서 일본계 슈퍼마켓의 골목상권 침범 규탄대회를 열고 일본계 슈퍼마켓임을 알리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의 엄태기 실장은 “일본계 마트는 한적한 골목에 소형 편의점으로 진출하는데, 이것이 일본계 마트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는 ‘한국 기업’인 것처럼 위장하기까지 한다. 현재 회원들을 상대로 이들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을 확산시키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본계 기업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자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선 곳도 있다. 일본계 잡화점 ‘다이소’ 관계자는 “한국 다이소는 일본 다이소와 브랜드만 공유하는 것”이라며 “한국 다이소는 토종 기업”이라고 말했다. ‘다이소’를 운영하고 있는 다이소 아성산업은 일본 기업 다이소와 브랜드 이름만 같을 뿐 별개로 운영되는 한국 회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엄 실장은 “다이소는 100% 한국 자본으로 이뤄진 기업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론을 폈다. 엄 실장은 이어 “최근 다이소는 판매 품목을 식품에서 문구류까지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며 “조만간 SSM 형태로 부풀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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