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환자’가 내 보험금 빼 먹는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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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로 국민 1인당 보험료 7만원 더 부담

40대 회사원 이 아무개씨는 경·요추염좌와 어깨 통증으로 2008년 9월부터 103일 동안 병원 진료를 받았다. 2009년에는 126일, 2011년에는 37일, 2012년에는 69일 동안 모두 같은 병원에서 허리·무릎·어깨·팔 등의 통증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진료에 따라 이씨가 보험사에 청구한 금액은 총 2415만원. 이에 비해 그가 매달 납부한 보험료는 고작 12만원이다.

이씨가 같은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병명을 바꿔가며 진료를 받은 것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생명보험과 장기보험 등 다수의 보험에 가입한 후 평소 친분이 있던 병원장과 모의해 꾸준히 허위 진료 기록을 받았다. 하지만 이씨의 ‘가짜 환자’ 행각은 결국 보험사의 적발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현재 이씨는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병원과 환자가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벌인 경우도 있다. 지난 3월26일 광주경찰청 보험범죄수사대는 허위 서류를 통해 요양급여비를 가로챈 병원장과 보험사기 행각을 벌인 가짜 환자 80여 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당시 광주경찰청은 광주 북구 지역 의원 의사 오 아무개씨(50)와 원무과장 구 아무개씨(40)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가짜 입원 환자 8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와 구씨는 가짜 입원 환자를 유치해 진료기록부에 허위 진료 내용을 기재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자 84명에 대한 요양급여비 6800만원을 수령하고, 가짜 환자들이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허위 입원확인서를 발급했다. 가짜 환자 84명은 허위로 입원해 보험사로부터 1인당 많게는 1300만원씩 모두 4억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나이롱환자’ 피해액 1년 새 120억원 늘어

오랜 경기 불황의 여파로 보험금을 노리는 ‘가짜 환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병원 관계자와 보험 가입자가 공모해 허위 입원·진단 등으로 보험사기를 벌이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규모도 커지고 수법 또한 지능화되고 있어 금융 당국과 보험회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허위·과다 입원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이른바 ‘나이롱환자’로 인한 보험사기 액수가 443억원에 달한다. 2011년의 323억원에서 37%나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허위·과다 진단으로 인한 보험사기 적발 액수는 44억원이다. 2010년 32억원, 2011년 42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전체 보험사기 액수가 4533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보험사기 중 ‘가짜 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융 당국과 보험회사는 최근 가짜 환자 가운데 전문직 종사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가짜 환자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해보면 유독 교수나 의사 출신이 많다”며 “심지어 교통사고로 목을 삐끗했다며 무려 5년 동안 통원 치료를 한 ‘막장 의사’도 있었는데 본인의 유리한 위치를 활용하기 때문에 보험사기 혐의 자체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들을 직업별로 보면 전문직 종사자 가담 사례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병원 종사자의 경우 2011년 616명에서 2012년 1177명으로 증가율이 91.1%에 달한다. 교육 관련 종사자 역시 2011년 754명에서 2012년에는 1186명으로 늘어나 57.3%의 증가율을 보였다. 전체로 보면 무직·일용직이 1만6089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회사원(1만4084명), 일반 자영업자(7334명) 순이다.

대한민국이 ‘가짜 환자 천국’이 된 데는 진료보다 사기에 집중하는 일부 병원 탓이 크다. 금융 당국이 나서서 ‘보험사기 전문 병원’들에 대해 기획수사를 펼칠 정도이다. 금감원은 2011년 5월부터 보험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국 58개 병·의원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지난 1월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금감원은 의료기관 관계자 168명, 보험 가입자 3891명 등 총 4059명이 보험금 320억원을 타낸 사실을 적발했다. 금감원은 현재 52개 병원의 사기 혐의를 포착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 기획수사에 참여한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에 가담한 ‘문제 병원’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서울 외곽 지역 변두리에 위치했다면, 요즘은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 중심지에 문제의 병원이 몰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수사에 나섰을 때 보니 서울 논현동이나 청담동, 특히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 문제 병원이 많았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 강남 지역에서 성행하는 불법 자가용 택시, 속칭 ‘콜뛰기’ 차량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제 병원들이 강남 유흥 지역에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 보험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콜뛰기는 주로 강남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이용하는데 늦은 밤 총알 운전을 하다 보니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며 “사고로 보험금을 타내고 계속 업소 일을 나가는 여성이 많은데, 이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원도 생겼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후 허위 입원 환자로 인한 보험사기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팀 자료
처벌 수위 높이는 것이 최상의 예방책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보험 가입자에게 피해를 준다. 금감원은 보험사기로 인한 연간 누수액이 3조4000억원(2010년 기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보험회사의 연간 보험금 지급액(27조4000억원)의 12.4%에 해당한다. 금감원은 이로 인해 가구당 20만원, 국민 1인당 7만원의 보험료를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보험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금감원은 보험조사국을 운용하고 있고, 보험사들도 자체 SIU(보험사기조사팀)를 구축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경찰도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교통사고로 인한 보험사기를 특별 단속하기 위해 교통범죄수사팀을 신설했다. 현재 서울청 소속 4개 경찰서가 교통범죄팀을 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피해 과장, 지연 신고, 차량 바꿔치기, 운전자 바꿔치기와 같은 교통사고가 선행된 보험사기 적발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험사기는 특별 처벌 조항이 없어 경미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최근 5년간(2008~12년) 전국 각급 법원의 보험 범죄 판례 총 1017건(피의자 총 1719명)을 분석한 결과를 4월16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보험 범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806명)가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벌금형은 2002년 9.3%에서 2007년 28.4%, 2013년 51.1%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형법에 기존 사기죄 외에 별도의 보험사기죄를 신설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학용 새누리당 의원은 4월15일 현행 사기죄와 별도로 보험사기죄를 규정하고 보험사기를 예비 단계에서부터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법원의 관대한 처벌이 보험사기와 관련된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형법상 보험사기죄 신설 또는 특별법을 제정하면 보험사기 예방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추돌사고에서 발생하는 부상 가운데 가장 흔한 유형이 목 상해다. 그런데 추돌사고로 목을 다친 운전자 5명 가운데 1명은 ‘엄살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험개발원은 최근 2011 회계연도 자동차 보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추돌사고로 인한 부상자 가운데 40.6%가 목을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간 추돌사고로 인한 목 상해 치료비로 총 2847억원이 지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대다수 추돌사고에서 목을 다친 정도가 자연 치유가 될 정도로 경미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보험개발원은 가벼운 추돌사고로 목을 다쳐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례 중 420건을 목 상해 위험도 예측 프로그램인 ‘윗킷(WITkit) 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결과 19%가량은 목 상해 발생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교통사고 후 뒷목을 잡는 환자 5명 중 1명꼴로 엄살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보험개발원은 앞으로 ‘윗킷 시스템’을 보급해 교통사고가 난 후 뒷목을 잡고 눕는 ‘엄살 환자’를 가려낼 계획이다. 개발원측은 모든 보험사가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연간 270억원의 보험금을 절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관희 보험개발원 선임연구원은 “목 상해는 객관적인 진단이 어려워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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