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어서 매달고, 전기봉으로 지지고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4.24 11: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꾸로 가는 중국 인권 시계…노동교화소의 고문 참상 폭로

중국 월간지 <렌즈 시각(視角)> 4월호에 실린 한 편의 기사가 중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날 중국 주요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기사의 제목은 이른바 ‘마싼자(馬三家) 탈출’이다. 랴오닝(遼寧) 성 선양(瀋陽) 시 외곽 마싼자쯔(馬三家子) 진에 위치한 노동교화소의 실상을 폭로한 내용이다. 2만자 분량에 달하는 기사는 수용소에 구금됐던 수감자의 기억과 신체에 남은 상처, 각종 방식의 물증을 토대로 작성됐다. 여기에 소송 과정에서의 문서, 변호사의 공판 녹취, 전후 사정을 아는 사람의 증언 등도 더해져 노동교화소의 전모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기사를 쓴 <렌즈 시각> 주필 위안링(袁凌)은 반(反)관영 통신사 ‘중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 초부터 3개월간 20여 명의 수감자와 수많은 관련 인사를 만나 취재했는데 그 분량이 엄청났다”고 밝혔다. 특히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왕구이란(王桂蘭·여) 씨가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숨겨 가지고 나온 ‘노동교화일기’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같은 방에 수용됐던 류화(劉華·여) 씨가 쓴 이 일기에는 수감인들에게 가해졌던 체벌과 고문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기둥에 박힌 수평 의자에 수감자를 90도로 앉힌 뒤, 등을 끈으로 묶어 기둥에 세우고 발아래 벽돌을 받쳐 다리가 굽어지게 하는 ‘호랑이 의자(老虎?)’, 양팔과 양다리를 침대에 묶은 채 음식물을 강제 주입하고 정신적인 학대를 가하는 ‘시체 침대(死人床)’ 등. 소문으로만 나돌던 각종 고문과 전기 쇼크가 마싼자에서는 일상처럼 행해졌다.

노동교화소에서 온갖 종류의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는 풍문은 오래전부터 무성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교화소의 역사는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 정부는 반(反)우파 계급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주·부자·반동 등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해 정신을 개조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문화혁명 말기 잠시 폐지됐던 노동교화소는 1982년 다시 등장했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치안이 불안정하자, 중국 정부는 반혁명·반당·반사회 분자를 재판 없이 3년 이하 노동교화형에 처하도록 했다.

흥미로운 점은 노동교화소로의 수감 여부가 법률이 아닌 공안 당국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공안은 어떤 피의자를 형사 기소할지 아니면 노동교화소에 보낼지 결정한다. 이런 노동교화소의 역할에 대해 멍훙웨이(孟宏偉) 공안부 부부장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젊은 범법자에게 효율적인 재활 교육을 시키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노동교화소에서 재소자들의 재범을 막도록 철저히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 정부의 설명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노동교화소의 수감자 중 마약 중독자, 매춘부, 좀도둑, 소매치기 등 잡범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범과 종교인,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등 중국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인사들을 재판 절차나 판결 없이 신속히 잡아들여 집어넣는다.

중국 쥐롱 시 노동교화소. 최근 이곳에서 벌어진 고문 참상이 언론을 통해 폭로돼 여론이 들끓고 있다. ⓒ Imagine China 연합
인신매매범 처벌 요구한 여성도 교화소로

충칭(重慶) 시 펑수이(彭水) 현에서 2년간 촌관(村官)으로 일했던 런젠위(任建宇) 씨도 그중 하나다. 촌관은 대학 졸업생을 선발해 농촌의 촌 간부로 내려 보내 3년간 일하게 한 뒤, 취업과 진학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런 씨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 시 당서기의 권력 남용을 비판한 글을 올렸다가 화를 당했다. 2011년 8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고 해서 국가 전복 선동 혐의로 런 씨는 붙잡혔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다른 의도가 없는 단순한 비판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노동교화형 2년에 처해졌다. 런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11월 법원이 노동교화형 취소 처분 소송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출소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정부 관리의 부패나 불법적인 토지 횡령 등에 항의하는 청원자들까지 강제로 수감하고 있다. 딸의 성매매 피해를 호소했다가 사회 혼란을 조장했다는 죄목으로 노동교화형에 처해졌던 탕후이(唐慧·여) 씨가 대표적이다. 2006년 11세였던 딸 러러(樂樂) 양이 인신매매 일당에게 납치돼 성매매업소에 팔려나가자 탕씨는 만사를 제치고 딸을 찾아나서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곧바로 공안국을 찾아가 관련자 처벌을 요청했으나 수사는 아주 더뎠다. 검찰과 법원도 기소와 재판에 미온적이었다. 2006년 벌어진 사건이 무려 6년이 지난 2012년 6월에서야 종료되었고, 핵심 연루자는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탕 씨는 공안·검찰·법원 청사 앞에서 연일 청원 시위를 벌였다. 후난(湖南) 성 융저우(永州) 시 당국은 탕 씨를 잡아 18개월의 노동교화형을 내렸는데, 이 소식이 외부로 알려져 중국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자 융저우 시는 10일 만에 탕 씨를 석방했다.

이번에 마싼자에서 벌어지는 만행을 고발한 왕구이란 씨도 선양에 지방 정부 관리의 비리를 청원하려고 왔다가 변을 당했다. 위안링 주필은 “인터뷰한 수감자 중에는 무고한 청원자가 적지 않았다”며 노동교화소의 초법적인 인신 구속을 비판했다. 노동교화소에 구금된 수감자들에게는 혹독한 강제 노동뿐만 아니라 무자비한 폭행이 자행된다. 마싼자의 사례처럼 각종 고문도 다반사다. 류화 씨의 일기에는 ‘교화소측이 정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자 며칠간 폭행을 당했다. 벌로 밤 10시까지 잔업을 하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동맥을 끊고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밤 10시 이후의 잔업까지 추가로 받았다’고 적혀 있다. ‘다른 동료는 시체 침대 위에서 6시간가량 고문당했다. 깨어났을 때 팔은 빠져 있고 입안에서는 고약한 약 냄새가 났다’는 내용도 있다.

중국 전역에서 26만명 수용

‘마싼자 탈출’이 중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랴오닝 성 당국은 즉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 파악에 나섰다. 사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해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성명도 내놓았다. 하지만 각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마싼자 탈출’ 기사는 삭제됐고 관련 보도에 관해 통제가 내려진 상태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전국 각지에 흩어진 350개 노동교화소의 사정 역시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2009년 현재 26만명의 수감자가 노동교화소에 수용돼 있는데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 사건은 해마다 터져 나왔다. 이번 마싼자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올 초만 하더라도 중국 정부 일각에서는 노동교화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멍젠주(孟建柱) 정법위원회 서기는 전국정법공작회의에서 올해 내 노동교화제의 중단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는 노동교화제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노동교화제 폐지가 정부 정책과 제도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이전에 노동교화소에서 피해를 당한 수감자들이 배상을 요구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노동교화소를 운영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중국과 북한밖에 없다. 재판 절차나 판결 없이 공안 당국이 임의로 최대 4년까지 인신을 구속해 강제 노동을 시키는 노동교화제. 이 악명 높은 제도를 없애버리지 않는 한 중국은 인권 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버릴 수 없을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