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상이 뚫는 ‘현해탄 무역로’를 가다
  • 일본 오사카·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을 오가는 개인 수입업자, 일명 보따리상들이 50~60대에서 30~40대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되고 있다. 이들은 같은 물건도 스마트폰을 통해 가격을 비교해 10엔이라도 더 싸게 사서 수입한다. 외국 물건을 들여와 팔던 형태에서 ‘무형의 품(品)’, 즉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 트렌드다. 1980년대 코끼리표 전기밥통을 들여와 팔던 보따리상에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시사저널>은 일본으로 향하는 보따리상을 6일 동안 동행 취재했다.


한국인 보따리 상인들이 4월19일 일본 오사카의 한 쇼핑가를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노진섭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페리가 취항하면서 일본 제품을 국내 시장에 들여와 파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보따리를 이고 지며 일본 제품을 국내로 실어날라 보따리 상인(개인 무역업자)이라고 불렸다. 국내에 변변한 공산품이 없던 당시는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 찍힌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놋쇠 밥그릇에 이불을 덮어 아랫목에 두어야 미약한 온기나마 남아 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그때, 일본 코끼리표 전기밥통은 요술 램프와 같았다. 웬만한 책상 크기의 전축(오디오 기기)이 안방의 절반을 차지하던 그 시절, 손바닥만 한 소니 워크맨은 별천지였다. 코끼리표 전기밥통과 소니 워크맨으로 대변되던 ‘일제’는 전국의 ‘도깨비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950~60년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은 그 돈으로 아들 학비를 댔고 딸을 시집보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1990년대 이후 국내 시장에 품질 좋은 국산품과 저렴한 중국 제품이 쏟아졌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소비자는 굳이 비싼 일본 제품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보따리상의 중심이던 50~60대 아주머니들이 고령화되면서 보따리상은 명맥이 끊어질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보따리상이 다시 나타났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가 얼마 들지 않는 중국과 일본이 보따리상의 주 무대였다. 중국 제품은 가격이 싼 대신 품질이 좋지 않아 점차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대신 일본 제품을 찾는 소비층은 여전했다. 품질이 나쁘지 않은 데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품질 우선주의를 주창하던 일본인이 최근 저렴한 제품을 찾으면서 현지에는 ‘유니클로 경제’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중저가대의 제품이 대세를 이뤘다. 이런 이유로 일본 제품을 수입해서 파는 보따리상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8년 한 해 동안 부산세관을 거친 일본 보따리상만 줄잡아 1만6000명에 이른다. 이은렬 부산세관 홍보담당관은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향하는 보따리상은 지금도 그 규모가 줄지도 늘지도 않은 채 꾸준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상인이 일본의 대형 도매상에서 수입할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 시사저널 노진섭
창고까지 뒤지며 원하는 제품 찾아내

오락실이 붐을 이루던 1990년대 수입된 일본산 개인 게임기는 10만원대의 고가품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할 당시, 먼저 그 제품을 사기 위해 긴 행렬이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한국인 보따리상이거나 그들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국내 자동차가 양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에 일본 닛산의 큐브(소형차)를 국내에 들여온 이들도 보따리상이었다. 오른쪽에 운전대가 있는 데다 소형이어서 불편했지만 한 상인이 한 달에 30대 이상 팔아치웠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 없거나 같은 브랜드라도 디자인이 독특한 상품을 찾는 수요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보따리상은 발품을 판다. 일본의 한두 업체와 거래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도매업체를 전전하고 창고 같은 곳에서 원하는 제품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수고를 감내한다. 보통 한두 달에 한 번씩 일본을 찾기 때문에 보따리상은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매장이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하고, 같은 매장이라도 파는 물건이 바뀌므로 꼼꼼하게 제품을 살피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이 매장에서 저 점포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여러 소매점에 들러 최신 소비 흐름을 확인한다. 이런 까닭에 보따리상은 양어깨에 커다란 물건 가방을 메고 하루에 10km 이상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

식사 시간을 놓치기 일쑤고, 이따금 고용량 카페인 음료를 마셔 기력을 찾는다. 늦은 저녁 시간에 숙소에 도착해서는 영수증과 물건을 정리하고 종아리와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서야 잠자리에 든다. 그다음 날도 새벽같이 도매상으로 향한다. 물건이 동나기 전에 확보하려면 되도록 일찍 매장에 도착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곧바로 구매하지 않는다. 다른 점포를 들러 가격을 비교한 후 100원이라도 싼 곳에서 주문한다. 요즘 젊은 보따리상은 가격 비교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국내에 판매되는 유사한 제품 가격을 보고 일본 현지에서 팔리는 가격도 살핀다. 제품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지인에게 보내 선호도를 알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인쇄해온 할인 쿠폰을 사용해 5~10%의 추가 할인을 받기도 한다.

이런 노력 덕에 일본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한국에서 10만원 하는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보따리상은 5만~6만원에 산다. 관세·물류비·인건비·이윤 등을 붙여 약 9만원에 국내 시장에서 판다. 국내에 없는 디자인이라면 일본 현지 가격의 2~3배를 받을 수 있다.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7000원짜리 일본산 핸드크림은 국내에서 2만4000원에 팔 수 있다. 연 수익 1억원을 올리는 보따리상이 있는 이유다.

일본 오사카 최대 쇼핑거리인 시사이바시. 의류부터 그릇까지 거의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모여 있는 곳이다. ⓒ 시사저널 노진섭
VIP 소비자 겨냥한 고가 제품으로 승부

최근 보따리상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무엇보다 연령층이 30~40대로 젊어졌다. 물론 일부 60대 이상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일본을 왕래하면서 물건을 떼다 팔기도 하지만, 30~40대가 보따리상 업계의 주력으로 등장했다. 특히 여성이 나이와 상관없이 육아나 퇴직 후에 활동할 수 있는 점도 보따리상의 매력이다. 보따리상 경력 10년 차인 김영미씨(가명·43)는 “10년 정도 회사 생활을 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해서 개인 사업으로 보따리상을 시작했다”며 “수입이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결혼하고도 여전히 활동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개인이 들여오는 물량은 한두 보따리 정도였지만, 지금은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치고 선박과 트럭으로 운송해야 할 정도로 수입량이 증가했다. 정식 수화물 통관을 거치는 만큼 관련 서류를 세관에 제출한다. 이런 이유로 보따리상은 최근 소호(SOHO, small office home office) 무역업자 또는 개인 무역업자로 불린다. 부산 해운대에서 일본산 여성 속옷 점포를 운영하는 이혜경 사장(39)은 “일본에 두 번 가는 것보다 한 번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사야 수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체력이 좋은 30~40대 보따리상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 트렌드를 읽고 대응하는 면에서도 젊은 층이 유리하다. 과거 부산에서 가까운 일본 시모노세키나 후쿠오카로 향하던 보따리상이 2000년대부터 오사카로 발길을 돌린 이유다. 서울 인구와 엇비슷한 규모로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는 수백 년 전부터 교역이 발달한 상업 도시다. “오사카에서 구하지 못하는 제품은 일본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인들의 거래가 활발하다. 보따리 무역 창업을 지원하는 임동근 일본창업연구소 소장은 “취업난이 심해진 탓도 있지만 소비자의 입맛을 맞출 필요성이 생겼다. 과거에는 일본 제품을 들여오기만 하면 팔렸지만, 점차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들여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뱃길로 18시간 걸리지만 부산과 오사카 사이를 큰 배가 정기적(2일에 1회)으로 운항한다. 부피나 무게가 있는 물건을 운송해야 하므로 보따리상은 비행기보다 배를 선호한다. 왕복 뱃삯에 숙소(민박 4일)까지 묶음 판매 상품을 이용하면 20만~30만원에 가능하다. 일본을 왕래하느라 몸은 피곤하지만 중간 거래상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과거 일본 골프채는 세관에서 압수하는 단골 품목이었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치품이라는 이유로 30~40%의 특별소비세가 붙었다. 2000년대 들어 골프채는 사치품이 아니라 스포츠용품이 됐다. 그만큼 수입 제품을 소비하는 층도 부유층에서 일반인으로 확대됐다. 수입 제품의 수요가 꾸준한 만큼 너도나도 보따리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가격만으로는 차별화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심해졌다. 또 인터넷 등으로 현지 제품 가격이 고스란히 노출돼 이윤을 많이 붙일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보따리상들은 최근 저가 경쟁을 피하려고 고가 제품 수요층을 뚫기 시작했다.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이나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으로 부유층을 겨냥한 것이다. 백화점이나 은행 등이 VIP 고객에게 나눠주는 선물 세트를 공급하는 홍윤주 사장(45)은 “고급 포장까지 돼 있는 가방이나 타월 등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납품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보따리상은 주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물건을 팔았다. 높은 임대료까지 내면서 매장을 운영해서는 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외국 물품 구매대행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판매도 신통치 않다. 일부 보따리상은 오프라인 매장으로 판로를 넓히는 추세다. 일본산 여성 속옷 전문 쇼핑몰을 운영하는 손현창 사장(41)은 “판매 경쟁이 심해져 온라인 매출은 월 1000만원이 한계인 것 같다”면서 “내가 직접 매장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숍인숍이나 단독 매장을 거래처로 삼아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외국 제품이라도 물건만 수입해서 파는 시대는 지나갔다. 요즘 보따리상은 유형의 제품뿐만 아니라 무형 상품, 즉 서비스를 들여오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체인점 사업을 벤치마킹하려는 보따리상이 2~3년 사이에 부쩍 늘어났다. 기자가 만난 일본 보따리상 9명 중 4명은 무형 상품을 도입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서비스 도입으로 경쟁력 확보

국내에는 커피숍이 체인점 일색인 반면 일본에는 도시락을 가져와서 먹을 수 있는 개인 커피숍이 있다. 인터넷 주문에 서툰 노인들을 직접 방문해 메뉴판을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주문을 받고 식사하는 동안 말벗이 돼주는 도시락 전문점도 있다. 15년 동안 식당을 운영해온 정태영 사장(46)은 “일본은 도시락 천국이라고 할 만큼 도시락 문화가 발달했다”면서 “도시락 체인 사업의 신기술을 배워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 일본 도시락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숍 등 다양한 사업 아이템으로 50~60대 저소득층의 창업을 돕는 이교승 기장지역자활센터장은 “일본의 한 술집은 손님을 맞을 때 ‘주인님, 다녀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하고 손님이 나갈 때는 ‘주인님, 외출하실 시간입니다’라며 배웅한다”며 “고객이 마치 집에 온 것 같이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매출을 올리는 방식인데 이런 발상의 전환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제품을 수입하는 차원을 벗어나 아예 제조할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기업에 주방용품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박준표 사장(40)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라며 “정보통신 관련 제품을 제조하거나 도입할 생각으로 일본 시장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보따리상은 단순 개인 무역업을 넘어 새로운 틈새 산업을 형성해가는 모양새다. 과거 사치품을 들여오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몰래 제품을 들여오다가 적발되는 보따리상이 있었다. 최근에도 신종 마약을 들여와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 보따리상은 밀수업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개인 사업가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