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지하경제지?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05.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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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류업을 하는 중소기업인 한 분과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그의 회사는 연 매출이 200억 원 정도 됩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요즘 세무조사 때문에 미치겠다는 겁니다. 언제 세무서에서 들이닥칠지 몰라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랍니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혹시 세무조사라도 나온 게 아닐까 해서. 경리직원에게 장부 관리를 잘하라고 했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투덜거리더군요. 사업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어느 사장이 세금 폭탄을 맞았다”며 같이 몸서리를 친다고 합니다.

국세청이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무섭게 옥죄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에 따른 것입니다.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복지 정책 이행을 위해 5년간 135조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합니다. 그래서 꺼내든 게 지하경제 양성화입니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까지 눈을 부릅뜨고 나섰습니다.

재벌과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 뉴스가 나올 때마다 국민은 허탈합니다. 유리 지갑인 봉급생활자는 부자의 탐욕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러려니 합니다.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고 짐작하는 거죠.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세금 탈루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는 국가를 유지하는 기본 질서입니다.

최근 돌아가는 판을 보면 앞뒤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먼저 씀씀이를 줄이고 알뜰하게 해야죠. 이명박 정부는 급하지도 않은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자치단체들은 대궐 같은 청사를 짓는 데 혈세를 탕진합니다. 공기업들은 빚이 500조원이나 되는데도 무사태평입니다. 이런 거품만 걷어내도 나라 살림살이가 훨씬 나아질 겁니다.

마구잡이로 뒤지다 보면 지하자금은 더욱 꽁꽁 숨습니다. 요즘 드릴로도 뚫리지 않는 특수 금고가 불티나게 팔리고 백화점에는 금괴를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고 합니다. 5만원권이 다 어디 갔나 했더니 부자들 금고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죠. 지하경제 양성화가 되레 지하경제를 활성화하는 꼴이니 어처구니없습니다. 국세청은 꾸준히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해왔습니다. 가짜 석유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 자료상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제 내성이 생겨 더 큰 몽둥이를 휘두른다고 걷는 세금

이 확 늘어나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국세청이 그동안 세금 걷는 일에 소홀했거나 떼먹는 사람을 눈감아줬다는 얘기가 됩니다.

실적에 매달려 조세권을 남용한다면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생산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한 금융 자료를 국세청이 활용하는 데도 신중해야 합니다. 탈세 혐의자들의 금융 거래는 이미 국세청이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모든 사람의 금융 정보를 보겠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전쟁에는 피가 따릅니다. 완력을 쓰기보다는 세금이 착착 걷힐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토끼몰이가 경제에 상처를 내는 건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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