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팀장’ 연락 오면 넘어가지 마세요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05.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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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대출회사 중 ‘진짜’ 고르는 법

‘이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은 최저 이율로 3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십니다. 30분 이내 입금 완료.’(불법 대출 모집인)

‘밥은 드시고 다니나요?’(대출 문자를 받은 사람)

‘네. 대출을 받으실 건가요?’

‘아뇨. 필요 없어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나이는 왜 물으시죠?’

‘20세 넘었으면 대출받으시라고요. 3000만원까지 된다니까요.’

 

ⓒ 일러스트 윤세호
실제 대출 모집인과 일반인 사이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오간 대화다. ‘이미영 팀장’은 물론 가명이다. 대출 문자를 보내는 ‘김미영 팀장’ ‘이은미 팀장’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출 광고 문자를 단순히 귀찮은 스팸 정도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출도 못 받고 돈만 뜯기거나 법정 한도를 넘어서는 고금리 등 피해 사례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전화로 대출을 권유할 경우 일단 의심부터 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경기 김포에 거주하는 황 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 말 ‘○○캐피탈’이란 곳에서 전화를 받고 대출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신분증과 3개월치 통장 거래 내역, 사업자등록증 사본 등 대출 관련 서류를 팩스로 보냈다. 하지만 대출 상담원은 황씨의 신용등급이 나쁘다며 서울보증보험의 보증보험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황씨는 보증보험료 등 대출 진행 비용 201만원을 6차례에 걸쳐 송금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대출금이 들어오지 않아 상담자에게 전화하니 ‘수신 거부 중’이라는 안내가 들려왔다. 서울보증보험이 전화나 팩스로 대출 보증 상품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때다.

1577·1588 등 활용하는 신종 수법도

서울에 사는 서 아무개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접하게 된 ‘○○금융’ 여신관리팀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직원은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씨의 신분증과 재직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씨는 상담 과정에서 “원래 4800만원 대출이 가능하지만 불법 신용조회 피해자로 등록돼 부적격 판정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신고 및 허가를 받아야 수정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대출을 실행할 때 미리 반환 조건으로 대출액의 5%를 공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씨는 240만원을 송금했지만, 대출금 입금은 계속 미뤄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금융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에야 자신이 통화했던 사람이 ‘유령 직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감원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를 받은 결과 8만7237건이나 접수됐다. 이 중 대출 사기가 2만1334건으로 24.5%를 차지했다. 

대출 사기에서는 접촉·물색 단계→교섭 단계→잠적 단계의 3단 구조가 기본이다. 불법 모집인은 우선 대포폰을 이용해 저금리 전환 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 개설 등 대출 신청을 유인하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무차별 발송한다. ‘대출’ 등 특정 단어에 대한 수신 거부를 방지하기 위해 글자 사이에 특수 문자 한두 개를 삽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출’ ‘햇살/론’ 등이다. 그런 다음 은행·캐피털회사 등 제도권 금융회사를 사칭한 모집인이 대출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피해자가 주민등록증 사본과 통장 사본 등 개인정보 서류를 제공하면 1차 작업은 끝난 셈이다.

다음은 교섭 단계다. 불법 모집인은 고객에게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한 전산 작업 비용, 저금리 전환을 위한 보증금 또는 예치금, 담보 설정 비용, 보증보험료, 공증비 등을 순차적으로 대포통장에 입금할 것을 요구한다. 처음엔 적은 돈을 얘기하다 점차 다른 명목으로 큰 금액을 넣으라고 독촉한다. 소비자는 이미 입금한 돈(매몰 비용)이 아까워 따르는 게 보통이다. 대출 비용을 입금한 다음 대출 실행이 늦어지면 모집인은 연락을 피하거나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피해자가 대출 해지를 요구하면 오히려 해지 수수료를 요구한다. 

요즘엔 신종 사기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회사의 유사 전화번호를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577·1588·1688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주로 사용하는 4자리 번호를 이용하는 식이다. 서울보증보험에서 발행한 보험증권인 것처럼 문서를 위조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보증보험 계약서 작성과 함께 보증보험료 납입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출 서류로 받은 고객의 신분증 및 통장 사본을 이용해 제2금융권 등에서 대출을 신청한 다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송된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수법도 있다. 인증번호를 말해주면 자신도 모른 채 대출이 실행되거나 게임머니 등 휴대전화 소액 결제에 악용될 수 있다. 신용이 낮거나 담보가 부족한 사람은 언제든 ‘이미영 팀장’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대부업체 돈이라도 끌어다 써야 할 형편이라면 반드시 해당 금융업협회(대부업체라면 대부업협회)에서 기업의 등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대부업체의 경우 국내에만 1만2000여 곳이 난립해 있고, 협회에 등록된 곳은 절반에 불과하다. 미등록 업체는 불법 사채업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대캐피탈·아주캐피탈·우리파이낸셜·신한캐피탈 등 제도권 캐피털회사와 러시앤캐시·리드코프·산와머니 등 대형 대부업체라면 믿을 만하다. 대출 모집인 역시 마찬가지다. 모집인 등록번호를 체크할 필요가 있다.

전화로 대출 권유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대출 사기를 당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요령은 대출 알선, 광고 등 문자메시지로 전달된 번호로 전화하지 않는 것이다. 문자에 찍힌 금융회사로 전화를 걸고 싶다면, 해당 금융회사의 대표 전화번호를 찾아 담당 직원 연결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출 실행 때 먼저 돈(수수료)을 요구할 경우 99% 사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출 실행을 앞두고 전산 비용이나 보증료, 보증보험료, 저금리 전환 예치금 등 어떤 명목으로든 비용을 요구하면 의심해야 한다. 3~4개월 이후 저금리 전환 대출이 가능할 것처럼 구두로 약속한다면 이 역시 사기성이 짙다.

자신의 신분증이나 카드 번호, 문자메시지 인증번호, 통장 사본 등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를 팩스로 보내선 안 된다. 특히 휴대전화 인증번호의 경우 대출 거래 승인 및 자금 이체와 직결된다. 통장과 현금카드를 제공하면 대포통장으로 활용돼 특정 범죄에 연루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

만약 개인정보 관련 서류를 불법 모집인에게 이미 팩스로 보냈다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명의 도용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금감원 또는 각 은행에서 ‘개인정보 노출자 사고 예방 시스템’에 등록하고 엠세이퍼(www.msafer.or.kr)에도 가입하는 것이 좋다. 엠세이퍼는 휴대전화 가입 현황 조회 및 무단 개통 방지, 휴대전화 가입 제한 등이 가능한 서비스다. 주민등록번호 클린센터(http://deam.kisa.or.kr)에선 자신의 주민번호가 이용된 내역을 확인하고 일괄 회원 탈퇴를 할 수 있다.

사금융 피해를 입었다면 ‘새희망 힐링론’을 신청할 수 있다. 연소득 4000만원 이하 및 신용등급 6등급 이하에 해당하는 사금융 피해자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새희망 힐링론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연 3%의 낮은 금리로 5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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