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지신의 귀환, 영화가 현실이 되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5.1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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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약탈 문화재 돌려준 프랑스의 통 큰 선물은 경제적 계산 때문

‘세계 최고의 보물 사냥꾼 JC와 그의 파트너 사이먼은 위안밍위안(圓明園)의 12지신 청동상 중 행적이 묘연한 6개를 찾도록 의뢰받는다. 프랑스·호주·바누아투·중국·홍콩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사라졌던 청동상을 하나하나 발견해 회수한다. JC는 돈벌이를 위해 유물 찾기에 나섰지만, 갈수록 유물의 역사성과 의의를 깨닫고 회수한 유물을 중국 정부에 무상 반환한다.’

지난 2월 개봉한 청룽(成龍) 감독·주연의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十二生肖)>의 줄거리다. 전형적인 청룽표 액션 오락영화였던 <차이니즈 조디악>은 한국에서 상영될 당시 영화 배경과 내용보다는 권상우가 조연을 맡고, 스티브 유(유승준)가 카메오로 출연해서 더 주목받았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지난해 12월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연일 매진 행진을 기록했다. 개봉 18일 만에 누적 매출액이 1억 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4월26일 영화 내용은 현실이 됐다. 12지신 중 쥐와 토끼 머리 청동상이 중국 정부로 돌아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방중한 프랑수아 앙리 피노 프렝탕레두트 그룹(PPR) 회장이 소장 중인 이 유물을 9~10월경 중국 정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12지신 청동상은 위안밍위안 내 해안당 시계분수에 장식됐던 유물이다. 위안밍위안은 1707년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가 자금성에서 서북쪽으로 10여 ㎞ 떨어진 곳에 조성한 별장으로, 넷째 아들 윤진을 위해 지었다. 훗날 윤진이 5대 황제 옹정제로 즉위하면서 황실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위안밍위안은 중국 강남 지방의 이름난 정원과 역대 왕조의 특색 있는 정원을 모방해 설계됐다. 규모가 가장 큰 위안밍에는 호수 위에 9개의 인공 섬을 만들고 황궁 기능의 건축물도 세웠다. 이런 위안밍위안을 중국인들은 ‘만개 정원 중의 최고 정원(萬園之園)’이라 불렀고, 이허위안과 더불어 중국 정원 예술의 최고봉으로 꼽았다.

4월26일 청나라 유물인 쥐와 토끼 머리상이 중국으로 돌아왔다. ⓒ EPA 연합
위안밍위안에서 약탈된 유물만 수만 점

150년간 황제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19세기 중엽부터는 치욕의 역사가 시작됐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는 청나라가 불평등조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톈진(天津)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공략했다.

베이징에 입성한 두 나라 연합군은 청 황제가 피신했다고 알려진 위안밍위안에 침입해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했다. 당시 위안밍위안은 청 황실의 금은보화, 골동품, 서화, 서적 등을 모아놓은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었다. 연합군은 나흘 동안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귀중품을 탈취했다. 파괴와 약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까지 질러 위안밍위안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는 항의 서한을 발표해 “두 강도가 위안밍위안에 들어가 약탈을 자행했고, 모든 것을 불태웠다. 서로 낄낄대며 가방에 한 가득 보물을 담아 나왔다. 역사의 심판 앞에서 두 강도는 영국과 프랑스라 불릴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수난은 20세기에도 그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서태후 주도로 위안밍위안의 일부를 복원했다. 그러나 1900년 의화단의 난을 빌미로 중국을 침략한 영국·프랑스·미국·일본 등 8개국 연합군은 위안밍위안을 또다시 약탈하고 방화했다. 이런 능욕의 역사 속에 유출된 위안밍위안 유물은 수만 점에 달한다. 1860년 약탈을 주도했던 프랑스에 진귀하고 화려한 유물이 몰려 있다. 퐁텐블로 궁전박물관, 프랑스 군사박물관, 프랑스 국가도서관 등에 소장된 위안밍위안 유물은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퐁텐블로의 중국관 유물 대부분은 위안밍위안에서 약탈해간 것이다.

이처럼 위안밍위안과 그 유물은 중국인에게 서구 열강에 의한 침탈과 수난을 상징한다. 이런 역사적 오욕을 씻기 위해 중국은 유물 반환에 온 힘을 기울였다. 12지신상 중 5개는 이미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돼지와 말 머리상은 금세기 들어서야 반환됐다. 마카오 도박왕인 스탠리 호(何鴻桑)가 2003년과 2007년에 각각 700만 홍콩달러(약 98억원)와 880만 홍콩달러(약 123억원)를 들여 구입해 중국 정부에 헌납했다. 말 머리상의 매매가는 청대 조각품 매매가로는 사상 최고액으로 경매 추정가의 6배를 기록했다. 스탠리 호는 “거액을 쓸 만한 가치가 있다. 나라를 위해 그 정도도 못 쓰겠느냐”고 말해 중국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에 피노 회장이 반환하기로 한 쥐와 토끼 머리 청동상은 한때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 외교적인 논쟁을 일으켰다. 두 청동상은 오랫동안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소장했는데, 2008년 그의 유족이 경매에 내놓아 중국을 격분시켰다. 중국 정부는 “전쟁 중 약탈품이니 조건 없이 반환해야 한다”며 “이를 경매에 붙이는 것은 중국의 주권과 중화민족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라고 항의했다.

프랑스 파리의 경매장 밖에서는 수십 명의 중국인이 시위를 벌였다. 차이밍차오라는 중국인은 공매수를 내 경매를 무산시켰다. 그러나 2009년 2월 경매가 다시 실시돼 각각 1400만 유로(약 200억원)에 낙찰됐다. 피노 회장은 그 낙찰자로부터 쥐와 토끼 머리상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프랑스 정부는 청동상 반환 요구를 줄곧 사유 재산 문제라며 완강히 거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태도를 바꾼 것은 경제적인 계산에서 비롯됐다. 이번 올랑드 대통령의 방중 기간인 4월25일 중국 항공기재집단은 프랑스에 본사를 둔 에어버스와 항공기 60대(A320 42대와 A330 18대)에 관한 구매 의향서를 체결했다. 공식 판매가만 80억 달러(약 8조7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비즈니스였다. 계약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올랑드 대통령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명품 회사의 이미지 상승과 바꾼 청동상

피노 회장의 PPR 그룹은 구찌·보테가베네타·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에게 중국인은 아시아 최대 고객으로, 그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시 주석의 사정 드라이브 이후 명품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약탈 문화재를 소유한 PPR 그룹 상품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있었다. 중국 언론은 이번 기증을 “PPR 그룹 차원에서의 이미지 제고와 국면 전환을 위한 쇼”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로 빼돌려진 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문물학회는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이후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대략 1000만건으로 추산했는데 이 중 100여 만건은 국가 1~2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1970년 유네스코는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을 제정해 불법 유출된 문화재를 원소유자에게 되돌려주도록 했다. 하지만 서구와 일본은 힘의 논리를 앞세워 중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한국 역시 중국만큼이나 문화재를 서구 제국과 일본에게 많이 약탈당한 나라다. 프랑스는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영구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 2011년 되돌려줬다. 우리와 다른 중국 문화재 반환 방식, 우리가 청동상 반환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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